패션업계는 유통업 중에서 대기업의 영향이 크지 않은 분야다. 창업자 대부분이 지방 섬유회사나
서울 동대문 인근 작은 매장에서 시작해 탄탄한 기업을 일궜다. 최근 아웃도어시장이 팽창하면서 오너가
2·3세들의 경영 참여가 활발하다. 그들이 펼치는 경영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가 몰려있는 서울 원지동 청계산 입구 /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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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큰 한파 없이 따스했던 지난 겨울. 그러나 아웃도어업계는 근래 들어 가장 지독한 시련을 겪었다. 2011년 4조3500억원, 2013년 6조5500억원 등 몇 년 새 초고속 성장을 이어온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 제동이 걸린 것. 업계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아웃도어 시장 매출액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 결과 기본급의 1000% 보너스 지급(2012~2013년 블랙야크) 같은 화제는 자취를 감췄다. 아웃도어업체 대부분이 실적 악화로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거듭하던 아웃도어업계가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낸 데는 여러 요인이 겹쳤다. 상반기 세월호 참사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봄여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단체복 매출이 줄었다. 최대 성수기인 가을철에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면서 하반기 매출 역시 부진했다. 재고는 증가하고, 소비 심리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면서 브랜드마다 올해 매출 목표치를 낮게 잡고 있는 상황이다.업계에서는 시장 자체가 성숙기로 접어든 구조적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면서 브랜드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다른 의류 브랜드도 아웃도어 제품을 출시하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아웃도어 업체들은 레드오션을 돌파할 독창적인 영업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신소재 개발, 골프웨어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장, 면세점 단독 매장 오픈과 중국 등 글로벌시장 진출, 해외 브랜드 인수 등이다. 오너 일가 2·3세들이 선두에 서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창업자 애착 강해 가업승계 선호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주5일제 근무 등으로 레저 활동 인구가 늘면서 크게 성장했다. 또한 아웃도어업계 스스로 시장을 키운 면도 있다. 등산복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캐주얼 패션으로 확장했고, 성인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 아동 등 다양한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국내외 유명 연예인 모델 기용, 유명 산악인 후원 등의 마케팅도 주효했다. 업계에선 2000년대 들어 시장이 급팽창 한 데에는 아웃도어업계 2·3세들의 마케팅 전략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정영훈 K2코리아 대표, 한철호 밀레 대표, 구본걸 LF 회장 등은 성공한 2·3세 경영자로 꼽힌다. 정동남 K2코리아 창업자의 장남인 정영훈 대표는 2002년 부친이 서울 북한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갑자기 회사 경영을 맡았다. 그러나 특유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K2’와 ‘아이더’를 빠르게 안착시키며 업계 2위 규모로 성장했다.한철호 밀레 대표도 성공한 2세 경영인이다. 그는 밀레 전신인 한고상사를 이끌었던 고 한용기 회장과 어머니 고순이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 2004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밀레’는 지난해 42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업계 순위 5~6위로 뛰어 올랐다. 현재 밀레에서는 한 대표의 장남인 한승우 씨도 경영 수업 중이다. 밀레에델바이스홀딩스 대리로 입사해 관리부 과장을 거쳐 현재 회사의 해외 브랜드 개척과 신규 사업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구본걸 LF 회장도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는 LG그룹 창업자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로 고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의 장남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다. 그는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던 인터스포츠를 지난해 철수시키고 ‘라푸마’를 대표 아웃도어 브랜드로 육성하고 있다. <160쪽 기사 참조>젊은 2세들도 속속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다. 아웃도어 국내 1위 브랜드 ‘노스페이스’와 그 뒤를 추격하는 ‘블랙야크’에서 2세들의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이들은 기업 안팎에서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있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의 외아들 강준석 블랙야크 글로벌 사업본부 이사는 지난 1월 입사 6년 만에 대표 명함을 추가로 달았다. 그가 지난해 인수를 주도한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나우’의 경영을 맡은 것이다. 업계에서는 “블랙야크의 2세 경영이 본격화됐다”고 분석한다. <상자기사 참조>노스페이스 국내 판매를 맡고 있는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의 사업가 DNA는 딸들이 잇고 있다. 첫째는 영원무역홀딩스의 대주주인 와이엠에스에이의 성시은 사외이사다. 둘째 성래은 전무는 영원무역홀딩스의 기획, 영원무역의 영업을 맡고 있고 막내 성가은 상무는 영원아웃도어의 마케팅, 경영지원, 뉴비즈니스 업무를 보고 있다. 영원무역의 구체적인 기업 승계 계획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스트리트 패션브랜드 라이벌인 형지와 세정에서도 2세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노스케이프’ ‘와일드로즈’로 아웃도어시장에 진출한 형지에서는 최병오 회장의 딸 최혜원 씨가 경영기획실 이사로, 아들 최준오씨가 계열사인 우성I&C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센터폴’ ‘피버그린’을 론칭한 세정은 박순호 회장의 딸 박이라 씨가 계열사 세정과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남편 김경규 세정 상무와 함께 통합유통브랜드 ‘웰메이드’ 사업도 이끌고 있다. 아웃도어 신발 판매 아시아 1위인 ‘트렉스타’ 권동칠 대표의 딸 권근혜씨도 브랜드 매니저로서 트렉스타 인지도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빈폴아웃도어’를 운영하는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코오롱스포츠’를 운영하는 이웅렬 코오롱 회장도 아웃도어 업계 3세 경영인으로 꼽힌다.아웃도어 오너들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보다는 가업 승계를 선호한다. 자수성가한 탓에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전문 경영인보다는 자녀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 승계 방식은 과거와 달리 탄탄한 기본기와 실무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실무형 경영 수업’을 내세우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기획실 임원 발탁 등 처음부터 경영 전반에 나서기보다 영업·마케팅·수출 등 관련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실무경험에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신성장 동력이 절실한 아웃도어 시장에서 창업자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다각화·M&A로 순위 바꿔라
▎1월말 열린 코오롱스포츠의 2015 S/S 컬렉션에서 모델들이 아웃도어 라이플스타일을 강화한 제품을 선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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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업계 2·3세들은 아버지 세대와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해외유학파가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경영학·마케팅·디자인 등 관련 분야를 전공했다. 강준석 블랙야크 이사는 한양대학교 신소재 공학부를 다니다 중퇴하고 위스콘신 메디슨에서 유학했다. 이후 고려대학교 MBA과정을 수료했다.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전무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했고, 트렉스타의 권근혜 매니저도 미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최근 트렉스타 BI의 리뉴얼을 주도했다. 전문지식을 축적한 이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해외시장 진출, 새로운 영역 발굴 등 질적 성장을 위한 고민들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최근 이들은 세컨드 브랜드 발굴에 적극적이다. 올해 신규 브랜드 론칭과 함께 2~3년차에 들어가는 신생 브랜드에 투자를 집중해 국내점유율 방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블랙야크는 론칭 3년차를 맞는 아웃도어 ‘마모트’에 역량을 집중하고, 밀레는 2013년 론칭한 ‘엠리밋’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각각 300억원, 40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영원 아웃도어는 프랑스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 ‘프아블랑’을 곧 론칭한다. K2코리아도 아이더에 이어 내년 독일 아웃도어 ‘살레와’를 추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력 브랜드가 4000억원대 이상으로 성장했지만 향후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아 세컨드 브랜드 육성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갖추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최근 골프웨어로의 진출도 눈에 띈다. 아웃도어 시장과 다르게 골프 인구와 시장 규모가 증가 추세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내 골프 인구는 2010년 460만명에서 지난해 529만명으로 늘었다. 골프웨어 시장도 2010년 1조50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2조8000억원으로 커졌다. 올해는 3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골프를 즐기는 계층이 중장년에서 30·40대로 확산되고, 스크린 골프가 인기를 끈 것이 요인이다. 스타트는 K2코리아가 끊었다. 지난해 하반기 ‘와이드앵글’을 론칭했는데 벌써 월 매출이 2억원을 넘는 매장이 나오는 등 순항 중이다. 세정도 지난해 ‘헤리토리 골프’를 선보였고, 지난 3월엔 밀레가 푸조와 손잡고 만든 ‘밀레-푸조 골프라인’을, 형지가 ‘까스텔바쟉’을 론칭했다. 새로 등장하는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젊어진 디자인’과 ‘거품을 뺀 가격’으로 요약된다.아웃도어업계 경영자들의 장르 허물기는 스포츠, 이너웨어에도 확장되고 있다. 아이더는 올해 처음 이너웨어업체인 좋은사람들과 협업해 기능성 스포츠 이너웨어를 선보인다. 노스페이스는 아예 스포츠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포츠 의류 부문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며 2020년까지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스포츠의류와 용품을 제공키로 했다. 아이더 관계자는 “최근 아웃도어와 패션 브랜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아웃도어 매장에서 스포츠라인을 찾는 고객이 많이 늘었다”며 “매장에 들어선 고객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영원무역은 최근 스위스 자전거 제조·유통업체인 ‘스캇 코퍼레이션’을 인수했다. 스캇 코퍼레이션은 MTB·로드바이크·헬멧·자전거 의류·신발 등 자전거 관련용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영원무역은 그동안 OEM을 통해 성장했지만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한계로 지적됐다. 업계에선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사 브랜드가 있어야 하는데 국내 아웃도어기업이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해외 브랜드를 인수해 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이 더 안정적일 것”이라고 진단한다.블랙야크와 K2코리아도 해외 기업 인수를 진행했다. 블랙야크는 올해 초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나우 지분 100%를 1500만 달러(162억원)에 인수했다. K2코리아는 지난해 말 유럽 하이테크 아웃도어 브랜드인 ‘살레와’ 국내 라이선스를 인수했다. 코오롱, LF, 제일모직 등 대기업은 올해 한중 FTA 발효를 앞두고 중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아웃도어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만영 콜핑 회장은 “아웃도어 시장이 2013년을 정점으로 성장세가 둔화돼 성숙기를 준비하기도 전에 냉각기 돌입이 우려된다”면서 “국내 아웃도어 업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글로벌화 및 시장 맞춤형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업 체질개선으로 자생력 키워야업계에서는 2·3세들의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환영하면서도 국내 시장에서 우선적으로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가격 문제다. 비싼 가격으로 한때 ‘등골브레이커’ 논란이 일 만큼 일부 브랜드들의 비싼 가격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는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고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고가정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몽클레르 캐나다구스 등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해외 아웃도어 명품 브랜드들이 뛰어들며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하지만 시즌이 지나면 이들 상품은 30~40% 할인 판매하는 시즌오프에 돌입한다. 시즌 내에 물량이 모두 소화될 수 있도록 과도한 판매가격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기업의 체질개선을 통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아웃도어산업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사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운 좋아 커진 면이 강하다. 치열한 경쟁과 생존의 과정을 거쳐 자생한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레저 산업 성장에 편승한 면이 크다. 이 때문에 볼륨에 비해 체질이 허약하다. 제 아무리 잘 나가도 한 두 시즌 장사를 망치면 휘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는 “1세대들이 국내 시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2~3세들의 과제는 해외 시장 개척인 만큼 향후 경영능력을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장기간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그동안 내세웠던 고가정책부터 손보는 등 가격과 품질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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