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대한민국 ‘세탁왕’ 이범돈 크린토피아 대표 - “가맹점주가 돈 벌어야 본사도 지속성장” 

 

조득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크린토피아는 프랜차이즈업계에서 소문난 ‘동반성장 기업’이다. 가맹비나 인테리어 비용으로 가맹점주의 주머니를 노리지 않는다. 이범돈 대표는 “가맹점의 수익을 높이는 것이 본사가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범돈 대표는 동네 세탁소가 주류를 이뤘던 세탁시장에서 프랜차이즈라는 새로운 모델로 소비자 중심의 세탁 문화를 주도했다
1992년 설립한 크린토피아는 사업 초기 ‘와이셔츠 한 벌 세탁비 500원’을 내세우며 가격 파괴 마케팅을 펼쳤다. 당시 동네 세탁소의 와이셔츠 세탁비는 2000원.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40만원 남짓이었으니 서민들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래서 크린토피아는 내심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주부들 손엔 와이셔츠가 들려있지 않았다. 세간의 인식이 문제였다. 당시만 해도 전업주부들이 많아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와이셔츠를 세탁 맡기느냐’는 시선이 강했던 것이다.

소비자의 생각을 바꾸는 게 필요했다. 크린토피아는 전국 가맹점마다 매장 문 앞, 행인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와이셔츠를 걸도록 지시했다. ‘남들도 다 맡기는구나, 나도 맡기고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인식을 주려는 전략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부들이 와이셔츠를 가져오면서 덩달아 다른 세탁물도 맡겼다. 그 때로부터 23년이 지난 현재 크린토피아의 와이셔츠 한 벌 세탁과 다림질 가격은 990원이다.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이면서 고객 유치 효과가 크기 때문에 지금도 저가 전략을 쓰고 있다.

크린토피아는 국내 세탁 프랜차이즈 1위 기업이다. ‘세탁편의점’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서 지난 4월말 현재 가맹점 2297개, 직영점 136개 등 총 243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덩치만 키운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주최하는 ‘프랜차이즈 수준평가’에서 최근 4년 연속 우수프랜차이즈로 선정됐다. ‘가맹점에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우수한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범돈(55) 크린토피아 대표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가맹점과 동반성장을 모색한 것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그를 만나러 찾은 경기도 성남시 크린토피아 본사엔 대형 세탁기의 모터소리가 낮고 무겁게 들렸다. 세탁물을 싣고 내리는 차량도 바쁘게 드나들었다.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착안


▎세탁편의점과 코인숍을 결합한 세탁멀티숍 ‘크린토피아+ 코인워시’가 최근 200호점을 넘어서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방학점.
크린토피아는 이범택 크린토피아 회장이 1986년 세운 염색·섬유가공회사 ‘보고실업’에서 출발했다. 청바지 세척으로 돈을 번 이 회장은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2년 크린토피아 사업부를 신설했다. 하지만 세탁물의 종류, 소재, 형태가 너무 다양해 힘에 부쳤다. 예상보다 적자 규모가 커지자 그는 세탁사업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동생인 이범돈 대표가 나타났다.

1993년 한국전력에서 일하다 자리를 옮긴 이 대표는 크린토피아를 독립시키고 미국, 일본 등지를 돌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이 사장은 “미국에선 집안에 세탁기를 두지 않고 전문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가정이 상당히 많다”며 “국내에 1인 가구가 급격히 느는 것을 보고 선진 세탁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덩치 큰 가전제품이 소형화되고 1인용 소포장 식품이 늘어나는 것에 주목했어요. 가사노동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 대신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생활토털 서비스 산업이 발달할 것으로 예상한 거죠.” 대학에서 경영학 전공 후 신도리코에서의 원가분석, 한전에서 예산 편성 업무를 한 것도 그같은 자신감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크린토피아는 초기 7년 동안 수익을 내지 못했다. 세탁편의점 사업은 장치사업이라 버는 족족 시설투자에 쏟아 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외환위기까지 닥쳐 시장은 얼어붙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됐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특별한 기술 없이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창업아이템을 찾으면서 크린토피아에 몰려든 것. 2000년대 들어서도 기업의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가맹사업 희망자는 꾸준히 늘었다. 2011년 1588개, 2012년 1815개, 2013년 2097개, 2014년 2276개, 2015년 4월초 2433개로 매년 200개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 사업의 성공 원동력은 바로 가맹점주”라고 말했다. “점주들이 큰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노동에 따른 합당한 인건비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비스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서도 가맹점주에게 돌아가는 수익을 높이는 방법, 그건 본사의 원가 절감과 마케팅 활성화였습니다. 업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 정책을 펼쳤고, 남들이 하루 한번 배송할 때 우리는 3번 배송을 시행하는 등 차별화 전략을 썼습니다.”

이는 탁월한 물류시스템 덕분이다. 전국 135개 세탁공장 지사를 통해 하루 3번 수거와 배송을 병행한다. 오전 10시 이전에 맡기면 그날 저녁에 찾을 수 있는 특별서비스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별도의 인원투입 없이 세탁물의 분배가 가능하도록 자동화 및 전산화 시스템 설비를 갖추었다. ‘세탁물 이송 분류방법 및 장치’에 관한 특허도 출원했다. 이 대표는 “세탁업계는 물론이고 국내 모든 산업에서 하루 3번 배송은 우리가 유일할 것”이라며 “고객이 찾고자 하는 시점에 손에 쥐어주는 것이 서비스 만족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세탁비의 70%를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자 소비자 요금을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었다. “요금은 고객의 공감과 동의를 바탕으로 책정되어야 합니다.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 동의거든요. 서비스와 요금의 갭이 커지면 고객은 부담을 느끼고 떠나고 맙니다.”

이 대표는 세탁 기술력 향상에도 집중했다. 크린토피아에선 옷뿐만 아니라 침구류나 신발 어그부츠 턱시도 가방 안경까지 세탁하고 고급 명품 수선도 가능하다. 기업부설 연구소에서는 연구개발을 통해 황변제거, 발수가공, 명품 백 세탁, 기능성 아웃도어 세탁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이 사장은 “오는 7월부터는 크린토피아에서 빼내지 못한 얼룩 등 오염물을 다른 세탁소에서 빼오면 세탁비 5배를 보상해주는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맹점주 소득확대 모델 선보여


가정용 세탁업시장에서 크린토피아의 매출 점유율은 약 20% 정도로 추정된다. 세탁 물량으로는 25% 정도다. 이 때문에 세탁업계엔 ‘크린’으로 시작하는 유사 브랜드가 상당하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2위 브랜드’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크린토피아의 브랜드 가치는 높다. 이 대표는 이런 성과를 ‘정도경영’에서 찾았다. “사업 초기 한 달에도 몇 개씩 경쟁업체가 생겨났어요. 그들 대부분이 가맹점 확보에만 연연해 공장과 몇 시간씩 떨어진 지방까지 편의점을 개설해 주더군요. 당연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가 없었죠.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거리에만 가맹점을 개설했어요. 몸집을 키우는 것보다는 내실을 단단하게 다지는 데에 주력한 거죠.”

이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핵심으로 ‘가맹점과의 소통과 상생’을 꼽았다. 이를 위해 사업 초기부터 선진국 프랜차이즈 시스템인 ‘러닝 로열티’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본사 매출은 세탁 대행비와 로열티가 전부다.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해서만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그는 “상당수 프랜차이즈 본사가 인테리어 비용과 식자재 등을 판매하면서 추가 수익을 올리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단 한 푼도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며 “매출의 1.5%인 로열티는 본사와 가맹점이 장기적으로 함께 윈윈하고 롱런하기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또한 크린토피아는 업계에서 드물게 가맹점사업자들에게 카드수수료의 50%를 지원해주고 있다. 카드결제를 활성화해 고객도 늘리고 가맹점 부담도 줄여주자는 취지다. 모든 광고·홍보비용을 본사 또는 지사에서 부담한다. 가맹점은 영업과 매출관리만 신경 쓰면 되는 구조다.

최근엔 크린토피아의 세탁멀티숍 ‘크린토피아+코인워시’ 창업이 인기다. 기존 세탁편의점 기능에 24시간 무인 영업이 가능한 코인빨래방의 장점을 결합해 수익성을 높인 새로운 형태의 토털 세탁 전문공간이다. 단순히 셀프로 운영되는 코인빨래방과 달리 가정에서 세탁이 힘든 침구류나 커튼 등 다양한 세탁물의 드라이클리닝과 물세탁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 직원이 대신 세탁을 해주는 세탁대행 서비스도 진행한다. 이 대표는 “부업 성격이 강한 세탁편의점이 주부 창업에 적당하다면 세탁 멀티숍은 부부가 전업으로 나서도 충분한 소득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멀티숍은 20평(66㎡) 기준으로 약 9000만원(임차비용 제외)으로 창업이 가능해 중장년층 부부창업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자체 조사 결과 세탁멀티숍 가맹점 중 1년이 넘은 매장의 평균 월 순수익은 470만 원 정도. 200개 매장이 오픈하도록 폐업 매장이 단 3개에 그칠 정도로 리스크가 적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기존 세탁편의점에서 세탁멀티샵으로 전환한 가맹점주도 50명이 넘는다. “가맹점주 입장에서 보면 시즌을 타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환절기 옷장을 정리하며 대량 세탁을 맡기는 봄과 가을이 세탁편의점의 성수기라면, 여름과 겨울에는 장마철 잘 마르지 않는 세탁물의 건조나 겨울철 이불세탁 등으로 코인워시가 성수기죠. 점주가 영업하기에 따라 조기축구회 유니폼이나 카페 직원복 등 단체복 매출도 추가할 수 있어요.”

소통과 배려 통해 ‘갑질’ 없애기

이 대표는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맹점주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공한 프랜차이즈 기업을 보면 대부분 가맹점주와의 관계가 좋은 곳”이라며 “본사만 배불러서도, 그렇다고 가맹점만 돈을 벌어서도 지속적인 성장은 어렵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는 듯싶어요. 우리도 ‘갑질’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가맹점 중에 불만이 왜 없겠습니까? 핵심은 늘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지사장, 가맹점주들과 함께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는 이유도 기업경영의 가치를 공유하고 올바른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크린토피아는 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의 교복을 후배들에게 깨끗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무료로 세탁해 주는 ‘깨끗한 교복 물려주기’ 캠페인을 지난 2009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한 학교 중 선발된 학교의 교복들을 직접 수거해 세탁 후 학교에 다시 전달한다. 세탁 전문가들이 모인 크린토피아의 재능기부를 통해 학부모들의 교복 가격 부담을 줄이고 자원 절약에 기여하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러브 클리닝’도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이다. 지사와 가맹점이 지역의 요양시설과 협약을 맺고 전용 차량으로 세탁물을 수거하여 무료로 세탁을 해준다.

이 대표는 당분간은 세탁멀티숍 확장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탁 서비스만 해도 앞으로 개척할 분야가 무궁무진해 다른 업종을 쳐다볼 겨를이 전혀 없어요. 상류층과 외국인 주재원 중심으로 세탁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중국에 관심이 많지만 리스크 또한 큰 시장이라 아직은 탐색 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상장을 통해 자본을 모아 세탁 서비스 분야를 확장하는 게 목표입니다. 물론 가맹점주와의 동반 성장을 통해서죠.”

- 글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201506호 (2015.05.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