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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매장 1위’ 김형섭 델리스 대표이사 - “성공했다고요? 성공의 냄새만 살짝 맡았을 뿐이죠” 

중소기업 델리스는 미국에서 매장 수로는 카페베네와 파리바게뜨를 제쳤다. 뻥튀기 브랜드 ‘킴스 매직 팝’으로 아메리칸 잭팟을 터뜨린 김형섭 대표이사를 만났다. 

글 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김형섭 대표가 공개한 델리스 성공 레시피는 맛30%, 기계30%다. 나머지 40%를 구성하는 디자인(인테리어)과 운영방식에는 그만의 노하우가 녹아있다.
“인도네시아와 향후 3년간 총판계약을 맺는 협의를 맺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바이어가 3년간 준비해 입점한 두바이 몰에 응원차 다녀왔지요. 아랍에미리트 상공회의소 회장 아들도 관심을 보여 미팅을 하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도 가맹 문의가 들어와 총판상담을 했습니다.” 빠듯한 6박 7일 해외일정을 마친 다음 날인 5월 12일. 오전 10시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김형섭(55) 델리스 대표이사(이하 대표)가 숨가쁘게 며칠간의 근황을 풀어냈다. 경기도 성남시 델리스 본사 사무실에서 기자에게 직접 문을 활짝 열어 주던 그의 얼굴에서는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델리스라는 생소한 기업은 우리에게 ‘델리만쥬’라는 브랜드로 익숙하다. 1990년대 후반 지하철 역사 안에서 고소한 냄새를 솔솔 풍기며 등장한 델리만쥬는 간식거리로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대만·홍콩·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주로 동남아를 중심으로 델리만쥬를 수출했다. 2005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제조기술 특허를 낸 뒤 미국에는 직영점을 내거나 현지 유통업체와 제휴해 운영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기계와 재료를 수출하는데, 현지인들은 일종의 대리점 역할을 한다. 두바이나 몽골,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쇼핑몰 내 카페 형태로 운영된다.

지난해 한국본사와 미국법인 매출은 각각 100억원과 60억원이다. 신설 홍콩법인의 예상매출은 10억원을 바라본다. 즉석 제빵 프랜차이즈인 델리스는 델리만쥬, 호두과자, 앙플(견과류 토핑 제과) 등과 매직 팝(뻥튀기), 델리 팝(다이어트 간식)등 쌀을 이용한 제품의 기계를 개발해 프랜차이즈를 전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숍인숍(shop in shop) 점포’로 주로 휴게소, 지하철, 편의점에 입점해 있다.

‘기계-맛-이름-인테리어’ 패키지


델리스는 해외진출로는 한국외식업계 브랜드 1위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4년 국내 외식기업 해외진출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델리스 매장 수는 600개로 카페베네(572), 롯데리아(342), 파리크라상(172)보다 많다. 김 대표는 “1999년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에 델리스의 목표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이라며 “현장에서 제품을 만들거나 완제품을 공급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쇼핑몰 중심의 키오스크(공공장소에 설치한 무인단말기) 매장이 주력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델리스의 출발은 고속도로 호두과자가 한창 인기를 끌 무렵이었다. 직장인이던 서른 살의 김 대표는 작은 호두과자 상점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15년 전에는 가스식이었던 기계를 백화점에 들이려면 집 한 채 값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가스식 대신 전기로 만들 수 있는 즉석 식품을 고안해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좋은 아이템을 찾기 위해 관련 전시회만 50~60회를 다녔다. “집을 몇 채를 까먹었을 겁니다. 1년 넘는 기간 동안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기계를 만드는 개발자도 고생했지만 (완제품을 만들기까지는) 서너 번은 족히 실패했습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땅콩과자나 붕어빵보다는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빵을 원했다. 오븐에서 굽는 빵은 가능하지만, 몰드 안에서 굽는 빵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기계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기획, 설계,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정성끝에 4년 만에 카스텔라 기계를 완성했다. 모양은 어렸을 적 시골에서 구운 맛있는 옥수수를 본떴다.

다음은 앙금이었다. 호박 앙금은 인기는 있었지만 개성이 부족했다. 직접 빵집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한 제과기술자에게 ‘컨셉’을 상세히 설명한 끝에 새로운 앙금 ‘커스터드’를 개발했다. 원하는 기계도 개발했고, 기대한 맛을 내는데도 성공했는데 붙일만한 이름이 없었다. 맛있고 부드러운 카스텔라에 걸맞은 이국적 이름을 짓고 싶었다. 결국 ‘맛있다’는 뜻의 영어식 표현인 ‘딜리셔스(delicious)’를 이름 앞쪽에 넣기로 했다. 이름의 뒷부분은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한 김 대표 아내의 아이디어다. 만두의 중국식 발음은 어려우니 만두의 일본식 발음인 ‘만주’를 합성했다. 이렇게 해서 ‘델리 만쥬’가 탄생하게 됐다.

매대 인테리어를 만드는데도 1억 가까이 들어갔다. 유명 백화점 인테리어를 했다는 업체까지 동원해가며 시행 착오를 겪었다. 여기에 그가 몸으로 익힌 현장 오퍼레이션과 작업동선까지를 확정해 매뉴얼로 만들었다. “한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는 왼쪽으로 몇 보 오른쪽으로 몇 보만 차이가 나도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돼있습니다. 도구를 어디에 배치하는지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매대에서 기계, 반죽, 생산 및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브랜드 패키지가 6년 만에 완성되자 백화점 매출은 정확히 두 배가 뛰었다.

패키지로 묶은 브랜드를 해외로 수출


▎한국에서는 델리만쥬라는 단일 브랜드로 익숙한 델리스는 현재 킴스델리팝·도쿄타이야끼 등의 다양한 브랜드로 국내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첫 해외진출은 중국이었다. 국내에서는 백화점과 지하철 등에서 인기 있던 델리스는 동남아 진출을 위해 홍콩·필리핀 등의 전시회에 참가했다.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100m~200m 정도 줄을 섰죠.” 홍콩에서는 6개월 만에 파트너십으로 매장 수를 20여 개 늘렸다.

홍콩·필리핀·태국·중국 등에서 성공적이었지만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아시아 외식업계는 맥도날드, KFC 같은 미국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주름잡고 있던 시절이었다. 결국 글로벌 프랜차이즈에 걸맞은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 미국시장에 본격 진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2004년 현지법인을 세웠을 때만 해도 그는 ‘미국시장’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제가 전시회 가서도 바로 매장을 차린 사람이거든요. 아무리 어렵고 큰 시장이라도 3개월이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큰 착각이더라고요.”

미국은 음식의 성분에 대한 안정성 기준이 높았다. 특히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이 많아 신사업에 대한 투자결정이 빠르게 내려지지 않았다. 더욱이 단일품목을 납품하는 게 아니라 패키지를 팔아야 해서 미국시장의 진입 장벽은 더 높았다. 물건만 납품하는 것과 달리 매장 공간까지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중간 브로커를 쓰지 않고 직접 슈퍼마켓을 돌며 영업을 뛰었다. 한국적인 브랜드로 경쟁하겠다는 각오로 뻥튀기 종류인 ‘킴스 매직 팝’도 론칭했다. 건강식품에 관심이 높은 현지소비자를 고려해 매직팝이 ‘무(無) 콜레스테롤, 채식주의자용, 무지방무설탕, 저염분(Low Sodium), 저탄수화물’ 음식임을 강조했다. 맛도 시나몬, 체다치즈, 통밀, 오(五)곡, 블루베리 등 12가지로 구성했다.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코셔제품도 출시했다.

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미국진출 4~5년간을 꼬박 시장조사, 연구, 그리고 지속적인 상품개발에 투자했다. “미국시장을 개척할 때 삼성 이건희 한 쪽 주머니도 바닥날 정도로 큰 비용이 들었다”고 김 대표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맛과 향, 시각적 효과의 경쟁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전시회와 박람회에 꼬박 4년을 투자해 첫 해외판매 창구를 뚫었다.

성공 레시피에 필요한 건 바로 ‘사람

“처음 1~2년은 매니저를 만나는 데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백화점 부사장을 직접 만나 컨셉과 브랜드를 설득해야 했던 겁니다.” 현재 델리스는 미국 전역에 27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스토어 크로거(Kroger)에도 입점해 있다. 매장은 미국 전역에 600여 곳에 달하고, 델리스 완제품을 납품하는 슈퍼마켓은 1000여 곳에 이른다. 미 동부 스튜 레오나드(Stew Leonard’s) 3개점에서는 1년동안 140만 달러 어치의 킴스팝(한 봉지에 2달러50센트)을 판매했다. 숍 라이트(Shop Rite), 마켓 에이앤피(A&P)에서도 평균 베이커리 부서의 매출을 12% 단일 제품으로 달성해 주간매출 1위를 유지한다.

“미국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제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인데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거짓말 않고 3번이나 들었습니다”라며 그는 말을 이었다. “지금도 뭐 성공한 건 아닙니다. 성공의 냄새만 살짝 맡은 거죠.” 한국사업을 직원에게 ‘맡겨놓고’ 미국진출에 전담한 지 8년 반 만에 그는 한국본사로 돌아왔다. 델리스 미국사업은 지사장 체제로 돌렸다. 1년 반 전부터는 국내 사업과 아시아사업을 재정비하고 있다.

“성공할 가능성이 눈에 보이는데 안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보이니 해야지요.” 그는 도전하고 사업기회를 찾는 성공유전자를 보유한 것처럼 보였다. 일본 유원지, 편의점에서도 큰 가능성을 본다는 김 대표는 올해 홍콩 디즈니랜드에 올라프(겨울왕국의 눈사람 캐릭터) 모양의 델리만쥬로 입성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김 대표의 언론 인터뷰는 근 10년 만에 포브스 코리아가 처음이다. “사실은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김 대표가 답했다.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지금은 꿈꾸는 정도 수준인데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좀… 그렇죠.” 그는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꿈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저는 너무 몰라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저같은 젊은이가 있다면 제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그가 자리를 비웠던 한국의 공백기에서도 김 대표는 충분한 가능성을 본다. “다시 시작해야죠. 한국에서 다시 한 번 멋지게 성공하고, 전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 겁니다.”

- 글 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06호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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