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경일의 경영리더십 

혁신은 밑바탕을 읽어내는 힘에서 나온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단지 어떤 계기가 필요할 뿐. 갑자기 나타난 변화를 읽어내려면 저변의 힘이 무엇인지부터 찾는 것이 순서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질 수는 없을까? 요즘엔 약간 생소한 말이나, ‘소지(素地)’ 또는 ‘소치(所致)’라는 개념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사전적 의미로, ‘소지’란 어떤 사람이나 대상(對象)이 본바탕에 깔려 있어 어떤 일을 일으키거나 이루게 될 가능성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뜻인 ‘소치(所致)’는 어떤 까닭으로 생긴 일을 뜻한다. 전자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원인에 따른 결과를 뜻한다.

어떤 변화든 그것을 낳는 근본 원인이 있다

두 개념어로 풀어보자. 즉 어떤 일이 벌어질 때를 유심히 살펴보면 극적인 전환기가 있는데, 이는 사람들의 인식에 갑자기 변화가 생겨나는 순간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도 당시에는 어떤 논리나 관념을 매개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 광풍이다.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열풍이 일어 한창일 때에는 한 뿌리에 집 한 채 값이나 호가했다. 하지만 하룻밤만에 이 투기 광풍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리고, 결국 네덜란드 정부가 개입해 매매가의 3.5%만 내는 식으로 채권, 채무 관계를 정리했다. 당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즉 어떤 ‘소지’가 이런 황당한 사태를 가져오게 한 것일까? 바로 ‘누군가에게 더 비싸게 팔면 된다는 투기 심리와 거품’이 열풍의 원인이었다.

사물이나 사건 또는 어떤 변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알 수 없는 심연에 아직 인지하지 못한 변화가 일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한순간에 확! 변한다. 그 결과, 과거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던 논법으로 어떤 사고나 일이 분출되고 심지어는 합리화되어 간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미셸 푸코는 이에 대한 열쇠를 제시한다. 그는 『권력, 지, 역사』에서 어떤 특정 시기에, 어떤 특정의 학문 영역에 급격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묻는다. 그는 18세기와 19세기 의학서를 꼼꼼하게 비교했는데, 1750년에 출판된 의학서는 거의 민속학 수준이었지만 70년이 지난 1820년이 되면 의학서는 크게 변해 현대와 같은 형태의 지식에 속한다. 푸코는 이 두가지 의학적 차이를 가져온 원인을 ‘단층’이라고 분석하였다. 지식이 어떤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이행하는 데에는 필요한 변환 작용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 단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 이전과 이후에 명백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건 어떤 ‘문제’에 대해 시대의 추이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나 지식형태가 바뀌며 그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 ‘와인 같지도 않은 술’ 누보와인(Nouveau·햇포도로 담근 포도주)은 ‘소지’와 ‘소치’ 마케팅의 적절한 예이다. 몇 해 전에 일본에서는 갑자기 누보와인 열풍이 불었다. 일본에서 포도주는 그저 밍밍한 술로 인식돼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포도주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포도주 성분 중 하나인 ‘폴리페놀(항산화 물질)이 몸에 좋다’고 방송에 나온 이후였다. 당시 일본인들의 건강 염려증까지 더해져 저변에 있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저변의 힘’을 활용하는 일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산업혁명 시기에도 있었다. 산업의 연료가 된 코크스 개발과 사용의 경우가 그렇다. 1709년 영국의 철공소 주인인 아브라함 다비는 처음으로 석탄을 코크스로 바꾸어 상당한 규모의 철을 녹이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공장은 물론 영국 곳곳으로 코크스는 활용도가 넓어졌고, 산업 혁명을 뒷받침하는 연료로도 급부상하게 됐다. 1815년에 이르자 가정용 수도의 목관(木管)까지 철관(鐵管)으로 바뀌며 철을 활용한 현대 산업화 일로에 들어서게 됐다. 오늘날 건물의 골조나 교량·학교시설·자동차 등 현대 문명을 가져온 주요 ‘소지’가 바로 철이고, 그 소지는 코크스 사용에서 비롯된 셈이다. 이처럼 ‘소지’와 ‘소치’를 안다면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대단한 발견을 할 수 있고 활용도 또한 높일 수 있다. 바닥을 읽어내는 것, 혁신은 밑바탕을 읽어내는 힘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사람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변하는 시점을 파악하는 능력은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는 주요 방법론이 된다. 이런 통찰의 힘은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마케팅은 이런 소지와 소치를 의도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하면 대중의 인식을 기업이 의도한 상품으로 환기하고, 은연중에 주입하기까지 한다. 결국 누가 고객의 잠재 수요를 읽어내고, 적절한 대응에 나서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이처럼 거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때, 그 사회도 새로운 변화가 맞는다. 어떤 변화든 변화는 그것을 낳는 근본 원인이 있는데, 그 심층의 힘을 정확히 알고 변절점(變節点)내지 원초적 동인(動因)을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본질을 해석하고 움직이는 주된 원리이다.

변화의 동인, 사업하는 경영자라면 현실 경영에도 적용해볼 만하다. 과거의 제품 개발 과정을 통해 지금 막 신상품 개발에 나서려는 ‘새롭고 급격한 변화’를 끌어 낼 방법은 무엇인가? 푸코의 말대로라면,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후발주자가 새로운 연구 영역에 참여하고, 신제품 개발에 참가하고, 신제품, 판매 전략의 본질을 찾는 데 매우 중요할 것이다. 시장의 요구와 이전 상품 간의 단절 요인을 어떻게 찾아 메꿀 것인가 등 ‘숨겨진 기회(hidden chance)’를 찾아내는 마법의 열쇠가 된다.

숨겨진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내는 마법의 열쇠

어떤 상품이나 관심이 발화되는 소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새로운 비즈니스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다. 경영 분야에서 ‘발견력’은 사업적으로 남다른 통찰력이 될 수 있다. 새롭게 생겨나는 상품·서비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전에 일어난 어떤 현상·행위·제품·사건 등 발생한 지점으로부터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논법으로 등장하곤 했다. 대부분 사람이 일상적으로 또는 무의식중에 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 가능성과 까닭을 찾아야 한다. 전체적으로 모든 사항을 포괄할 수 있는 지식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틀림없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이다. 물론 더욱 다양한 영역, 즉 마케팅이나 홍보·선거·캠페인 등과 같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대건, 아직 표면화되지 않았지만 분출하려는 의지로 가득한 ‘격렬한 욕구’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욕구들이 터져 나오기 전에 미리 알고 기회를 선점한다면 이보다 슬기로운 경영 묘책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소지’와 ‘소치’를 먼저 볼 수 있는 능력, 기업에는 새로운 경영의 창세기를 맞이하는 것에 버금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는 늘 새롭게 눈을 뜰 때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경영자가 새로운 지평을 향해 새로운 인식의 문을 활짝 열 때다.

전경일 - 인문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인문과 다른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통섭적 관점을 연구한다. 저서로『 조선남자1,2』와『 이끌림의 인문학』 등이 있다.

201510호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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