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가 선정한 기부영웅들은 단순히 엄청난 돈을 맡기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지혜롭게 돈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비놋 차드하리(Binod Chaudhary). 포브스아시아가 올해의 기부영웅 40인 중 가장 주목한 인물이다. 9월 호 표지 인물로 선정하며 영웅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인 네팔의 첫 억만장자’.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에 네팔인 차드하리가 이름을 올렸을 때 네팔인들은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네팔이 진도 7.8의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되자 그는 돈을 내려놓고 두 아들과 현장에서 삽을 쥐어 들었다. 자신의 공장에도 피해가 있었지만 오히려 공장을 피해자들을 위한 시설로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네팔 국민들과 세계인의 그에 대한 시선은 부자에 대한 부러움에서 인간애에 대한 존경으로 바꼈다. 라면 ‘와이와이’로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입맛을 사로잡아 부자가 된 차드하리는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존경 받는 부자가 된 것이다.포브스아시아가 선정한 기부영웅 40인 중에는 자수성가한 부자들도 눈에 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일궈낸 성공처럼 기부활동도 성공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세상이 다 아는 중국의 부자 마윈(Jack Ma), ‘소호 차이나’ 공동창업자인 판스이-장신 부부(Pan Shiyi, Zhang Xin), 중국의 농구스타 야오밍(Yao Ming), 필리핀의 복싱선수 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엄청난 돈을 자신 또는 배우자와 함께 설립한 재단에 기부하고 이 재단을 통해 사회복지 기구나 자신이 졸업한 학교, 병원, 장학재단 등을 돕도록 했다. 물론 주식을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에 대해 ‘재단을 ‘세금 회피’나 ‘부의 승계’ 통로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포브스아시아는 기부자들이 각자의 기부 철학을 가지고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점에 주목했다.포브스가 선정한 한국의 기부 영웅, 조창걸 한샘 명예 회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마찬가지 사례다.한샘을 창업해 한국 최대 가구기업으로 성장시킨 조창걸 회장은 올해 3월 그가 가진 한샘 지분 534만5180주 중 60만 주를 그가 설립한 ‘한샘드뷰 연구재단’에 기부했다. 당시 기준으로 4400억 원이나 된다. 조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총리나 대법관, 장관을 지낸 고급 인재가 갈 곳이 로펌이나 회계법인뿐”이라면서 “이들이 재충전하면서 국가 비전을 세우고 다시 봉사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고 재단을 설립한 이유를 밝혔다.
한샘 조창걸 회장 4400억원 기부한샘드뷰 연구재단은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이다. 미국 사업가 로버트 브루킹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위기에 대비하고 중장기 국가전략을 짤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숙련된 공무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사재를 출연해 1927년 현대적 싱크탱크의 모델인 브루킹스연구소를 설립했다.조 회장은 한샘드뷰가 동서의 가치를 융합한 새로운 문명창조,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사고의 전환, 디지털 기술의 활용과 생활혁명, 중국의 격변과 동아시아 생활 방식의 창조 등을 연구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역량을 발굴, 선점하는 데 기여하길 바라고 있다.정몽규 회장과 허창수 회장은 부친의 부를 이어 받은 만큼 자신들의 자산을 기부를 통한 사회적 기업활동으로 잇기 위해 재단을 설립해 육성하고 있다.
정몽규, 포니정재단 통해 베트남 지원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올해 4월, 개인이 소유한 현대산업개발 주식 20만 주를 포니정재단에 출연했다. 기부 당시 주식 가치는 123억원이다. 포니정재단은 그의 부친 고 정세영 명예회장 사망 이후 설립했다. 지금까지 한국 280명, 베트남 44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정몽규 회장은 베트남의 가능성을 여는 것은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베트남 현지 장학생을 선발해 국내로 초청, 국내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할 수 있도록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남촌재단에 GS건설 주식 13만7900주를 기부했다. 주식가치는 40억원이다. 남촌재단은 허창수 회장의 부친 허준구 명예회장의 호를 따 설립했다. 허 회장은 재단 규모를 500억원 이상으로 키워나가겠다고 약속했고, 현재 총 37만 주의 주식 360억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남촌재단은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지원과 장학사업, 학술연구, 문화예술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포브스아시아는 이 밖에 다양한 스마트한 기부 사례를 제시했다. 주거난이 심각한 홍콩에선 리샤우키(Lee Shau-Kee) 헨더슨랜드 회장이 땅을 기부해 유스호스텔을 건립했고, 초고령화에 접어든 일본에선 시노라하 요시코(Yoshiko Shinohara) 템프스태프 회장이 간병인, 베이비시터 등 복지노동자 육성에 나섰다.또 멸종동물 보호,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기업 2,3세들도 소개했다. 그러고 보면 포브스가 선정한 기부영웅들은 가장 지혜롭게 돈을 쓰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들이 진정한 비즈 자이언츠다.- 유부혁 포브스코리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