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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 

지구상의 와인을 다 모아둔 듯 참으로 다채로운 스타일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
남아공은 “한 나라 속에 또 다른 세상”이다. 아프리카 속에 유럽이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유럽문명의 흔적이 깊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남아공 와인의 매력을 소개한다.

▎남아공 와인의 명소인 케이프타운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첫인상은 마치 남프랑스의 어느조용한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와인 애호가나 전문가들은 사전정보 없이 맛만 보여줬는데도 품종과 생산국, 심지어 재배 지역을 맞추고, 생산 년도(빈티지)까지 맞추기도 한다. 어느 정도 내공이 있는 전문가라면 동일한 포도 품종을 가지고 만든 와인만으로도 그 와인의 출신 성분을 어느 정도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와인만큼은 예외라고 말하고 싶다. 남아공의 와인 산지와 와인들을 직접 방문하여 체험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 홍콩을 경유하여 약 13시간 정도를 날아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이후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2시간 정도를 더 비행해야 만나게 되는 케이프타운은 직항으로 온다 해도 거의 하루가 소요되는 꽤 먼 곳이다. 거리만큼이나 남아공의 와인도 우리에겐 매우 생소하고 멀게 느껴진다. 남아공 와인의 명소인 케이프타운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첫인상은 마치 남프랑스의 어느 조용한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주민들도 대다수가 유럽계 백인들이었다. 미지의 검은 대륙이라는 선입견과는 동떨어진 독특한 분위기가 남아공에 대한 필자의 첫인상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와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아프리카 속의 유럽 문명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희망봉을 가까이 두고 있다. 넓은 평원이 나지막하게 펼쳐져 있고, 해발 1085m 높이에 동서로 3㎞, 남북으로 10㎞ 정도 되는 평편한 탁자모양의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이 케이프타운의 시내를 둘러싸고 있다. 바다로 둘러 싸여진 이 지역은 아마도 강한 해풍 때문인지 주변의 산들 모두가 산허리가 잘린 듯 납작하다. 남아공은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인데, 영상의 기온으로 너무 춥지 않은 겨울에도 가끔씩 산 꼭대기는 눈으로 뒤덮여 있다. 여름은 섭씨 33~34도로 우리와 비슷하지만 건조하기 때문에 태양빛을 바로 받는 지역이 아니라면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가정집에는 냉방시절이나 온방시설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남아공을 “한 나라 속에 또 다른 세상”이라고 말한다. 최남단 희망봉을 기점으로 인도와 교역을 했던 유럽의 상인들은 이곳을 음식과 물을 조달하는 중간 기착지로 사용했다. 16~17세기경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인들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고, 이들에 의해 개발된 지역이다. 마치 아프리카 속에 유럽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보다 12배 큰 면적에 인구가 5천만명이 넘는 남아공은 백인이 1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유색인이다. 약 20년 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집권으로 인종차별 타파 정책이 성공하면서 침체 속에 있었던 남아공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와인 산업도 그 중 하나였다. 남아공 정부가 제도적으로 유색인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직업을 창출하도록 지원하면서 경제 발전을 도모했다. 참고로 이들은 인종을 이야기 할 때 블랙이라 부르지 않고 칼라드 피플(Colored people)이라고 한다.


▎남아공 와인의 다양성은 1헥타르의 면적 안에서도 여러 토질의 토양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품종, 같은 와인메이커가 만들어도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나올 수 있다.
대표 품종 피노타지와 슈넹블랑

남아공의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 역사는 350년이나 되었다. 17세기 중반 유럽상인들이 이곳에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유럽의 주요 와인 산지인 프랑스나 스페인과 매우 흡사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아공의 와인 양조산업은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고 와인 사업이 국영화에서 자유로워진 1994년부터 본격적인 발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개인이 운영하는 와이너리가 600개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최고의 와인 산지로 알려진 케이프타운의 스텔렌보쉬 지역은 월드 헤리티지(World Heritage)로 지정되어 있는 플라워 킹덤으로도 유명하다. 무려 9000 가지가 넘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다이나믹한 기후와 다양한 토양은 지구상의 모든 포도품종들이 자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을 만큼 다채롭다.

이곳에서 남아공 전체 와인 중 90%가 생산된다. 남아공 속에 지구상의 와인들을 모두 모아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그 스타일도 다채롭다. 전통적인 프랑스 스타일이 그대로 느껴지는가 하면 미국이나 칠레와 같은 뉴월드 스타일의 마시기 편한 와인들도 있다. 그 같은 다양성은 1헥타르의 면적 안에서도 여러 토질의 토양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가능했다. 즉, 같은 품종, 같은 와인메이커가 만들어도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와인 메이커나 와이너리 오너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17세기에 처음 네덜란드인에 의해 포도나무가 심어지고 나서부터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독일 등과 같은 여러 유럽인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인도와 말레이지아 등과 같은 아시아와 그 외의 여러 국가에서도 남아공으로 흘러 들어와 포도를 재배하거나 와인을 만들었다.

가장 남아공스럽고 남아공에서만 유일하게 생산되는 독특한 포도품종이 있다. 1925년에 처음 개발된 남아공 고유의 품종인 피노타지(Pinotage)가 그것인데 프랑스의 피노누아(Pinot Noir)와 에르미타쥬로 알려진 생소(Cinsault) 품종을 교접하여 만들어졌다. 이 품종은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앞으로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는 품종이다. 베이어스 클루프(Beyerskloof)는 남아공의 대표 품종인 피노타쥬(Pinotage)와인을 전세계에 알린 명인이자 피노타쥬 협회의 회장인 베이어스 투루터(Beyers Truter)씨가 소유하고 있는 와이너리다. 처음 네델란드인 얀반 리비엑(Jan Van Riebeeck)씨가 포도나무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베이어 가문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꾸준한 인기, 니더버그 와인


▎니더버그 와인
남아공 와인 산지의 심장인 스텔렌보쉬에 위치하는 이 와이너리는 1925년에 설립하여 피노타지를 전문으로 하는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와이너리다. 베이어스 트루터씨에 따르면, 피노타지는 꽤 다양한 스타일로 변신이 가능하며, 과실적인 푸루티함과 약간의 스파이시한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더불어 카레와 같은 아시아 풍의 스파이시한 음식들과 즐기기 좋은 와인이기도 하다. 피노타지는 묵직한 느낌을 주는 와인을 만들기도 하고 여름에 차갑게 해서 마셔도 좋을 만큼 편한 느낌을 주는 가벼운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웬만한 우리의 한식과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와인이다.

슈넹블랑(Chenin Blanc)은 남아공 케이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이트 품종이다. 남아공에서는 스틴(Steen)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품종은 신선한 느낌과 함께 푸루티하다. 다른 품종과 달리, 남아공의 슈넹블랑은 와인메이커의 스타일에 따라 스파클링을 만들기도 하고 드라이 화이트나 달콤한 디저트 와인들을 만들기도 한다. WOSA(남아공 와인 협회)에 따르면, 남아공은 와인 산업에 대한 해외 투자는 늘 오픈 되어 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젊은 와인메이커들이 남아공으로 진출해 포도밭을 형성하고 있다. 아마도 다양한 토양과 기후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맞추어진 와인을 만들 수 있기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큰 발전을 이룬 남아공 와인 산업의 미래는 매우 전망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내에서도 200여종이 넘는 남아공 와인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 국내 와인 애호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와인이 버니니(Bernini)다. 이 와인은 특히 달콤하고 가벼운 스타일의 스파클링 와인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좋아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초기부터 국내에 선보이고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남아공의 대표 와인은 니더버그(Nederburg)다. 규모 면에서나 역사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와인의 품질에서도 매우 인정을 받고 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 경기에서도 공식 와인들 중 하나로 니더버그가 사용되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절묘한 조화가 이 와인 브랜드가 갖는 스타일이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에서 생산되는 남아공의 와인들이 갖는 개성이 여러 측면에서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유럽보다 더 클래식한(이른바 옛날식)스타일의 맛을 보여주는 와인들이 발견되기도 했고, 매우 젊고 혁신적이어서 미국이나 칠레의 와인을 마신다는 착각을 주기도 했다. 즉, 남아공 와인을 이야기할 때는 지역적 특성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생산자 혹은 와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구대륙과 신대륙이 공존하는 남아공 와인이 갖는 잠재력은 앞으로도 무궁무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

201602호 (201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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