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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형 쿼터백투자자문 대표 

로봇이 운용하는 헤지펀드 

글 김영문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보수적인 투자로 유명한 KB국민은행이 올해 초 쿼터백투자자문과 손을 잡았다. ‘데이터’ 분석 시스템으로 무장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쿼터백’은 국내 최초를 넘어 아시아 최초 ‘로봇 펀드매니저’ 회사로 거듭날 기세다.

▎올해 초 쿼터백투자자문은 KB국민은행과 손잡고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인 ‘쿼터백 R-1’을 선보였다. 내친김에 양 대표는 올해 자문사에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운용사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주식 비중을 줄이고, 금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신호를 잡았죠. 시스템은 그대로 매매에 반영했습니다. 실제 ‘1월 효과’로 강세를 예상하던 시장 분위기와 달리 중국 증시 위기론이 불거지고 증시가 휘청거리자 우리도 놀랐습니다.”

지난 2월 초,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양신형(34) 쿼터백투자자문 대표는 회사 시스템을 설명하며 지난해 자신이 한 말을 기억했다. 지난 2월까지 쿼터백 시스템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0% 남짓, 지난해 3분기 40%에 비하면 대다수를 정리한 셈이다. 실제 연초부터 이어진 중국 증시 불안, 미국 금리 인상 연기설 등으로 증시는 급락장으로 변했다. 한껏 위축된 투자심리는 채권형 펀드와 금(金) 펀드 등 안전자산에 관심이 쏠렸다. 1000달러가 붕괴되느냐 마느냐 하던 국제 금 시세는 1200달러를 뛰어넘어버렸다.


‘증시가 급락할 또 다른 신호는 없었나?’는 물음에 양 대표는 “2008년 시장이 붕괴할 때와 같은 신호는 없다. 줄였던 주식 비중을 늘릴 수 있는 저점 신호를 찾고 있다. 특히 중국 증시와 유가에 주목하고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쿼터백 시스템이 거둔 올해 첫 성과인 셈이다. 중국 증시에서 연이어 나타난 서킷브레이커(주식매매 일시정지제도) 등 각종 돌발 변수에도 이들의 투자 알고리즘이 잘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양 대표는 “분기별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 하지만 우리 시스템은 매일 시장 상황을 기록하고 알고리즘에 맞춰 대응한다. 이상 신호나 같은 신호가 나타나면 자동으로 매매에 나선다”고 했다.

시스템이 주목하는 것은 중국 증시와 원유

쿼터백 시스템이 갖춘 능력의 비결은 역시 ‘데이터’다. “우리가 가진 데이터 경우의 수만 920조 개다. 전 세계 상장된 2500개 글로벌 ETF가 투자하는 30만 개의 기초자산을 모두 분석한 수치다. 특히 위험 시그널을 사람보다 더 빠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양 대표의 노력은 은행의 자산관리 시장 진출 욕구와 맞아떨어졌다. 지난 1월 11일부터 국내 대표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과 쿼터백투자자문의 자문형 신탁상품 ‘쿼터백 R-1’을 판매하기로 한 것.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이 적용된 신탁상품이 은행 지점에 팔리는 것은 국내 최초다. 이 상품은 국내 상장된 ETF 중 8~12개를 선별해 투자한다. 변동성이 높아지면 투자하는 ETF의 수익률을 상호보완할 수 있게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 그는 “국내 대표 지수형 ETF, 금·원유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채권형 ETF 등 상황에 따라 반대로 움직이는 ETF들을 조합해 하락장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계약 성과를 통해 양 대표의 행보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그는 데이터보다 사람의 직감을 믿던 보수주의자였다. 하지만 KTB자산운용에서 펀드매니저였던 양 대표는 시장에 불어 닥친 수차례의 위기를 목격하며 생각을 바꾸게 됐다. 그는 “주요 기업의 주가가 매달 뛰어오를 때였다. 수백·수천 퍼센트 수익을 올리는 펀드매니저의 ‘직감’이 최고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고, ‘저성장 늪’이 현실화되자 꿀맛 같던 고수익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양 대표는 미국에 로보어드바이저라는 게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그때 당시 떠오른 생각이 PB(자산관리 전문가·Private Banker)나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공학자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한데 모아서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면 어떨까라는 것이었다.” 양 대표는 곧바로 김승종 쿼터백테크놀로지스 대표부터 찾아갔다. 금융정보업체인 와이즈에프앤 창업에 관여한 김 대표가 합류하면서 쿼터백이 탄생했다. 우선 양 대표는 ‘사람 모으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의미한 데이터는 전문가의 정성적인 분석 능력이 있어야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 그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출신을 비롯해 인간행동의학, 항공우주공학, 전자공학,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학도까지 30명에 달하는 업계 최고 전문가를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모았다.

이들이 이끄는 쿼터백은 지금까지 순조롭다. 최근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본격 개화하면서 ETF 시장까지 활력을 얻고 있다. 쿼터백 같은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덕에 패시브 펀드(국내 금융투자업계 짜인 시스템대로 운용되는 펀드) 운용이 다시금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기존 ‘인간’ 펀드매니저와 자산관리 전문가인 PB들이 갈 곳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쿼터백 모의 최적화 포트폴리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5~2015년) 연 9.5%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시장수익률도 앞섰다.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연 6% 남짓, 코스피 지수는 연 7% 정도였다.

자문사를 넘어 운용사로 발돋움 눈앞에

양 대표는 앞서 보여준 구성원 이력 파일을 펼치며 대뜸 회사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기존 자산관리 전문가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도구로써 ‘로보어드바이저’를 본 거지 성과가 부진한 전문가를 퇴출시키려는 수단으로 기획한 것이 아니다.” 양 대표는 오히려 자산관리 시장을 좀 더 크게 보고 있었다. “기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투자 대중화에 앞섰다면 우리는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운용사와 연계한 공모펀드까지 내놓아 자산관리 시장의 벽을 허물고 싶다.”

내친김에 양 대표는 올해 운용사격인 ‘로봇 펀드 매니저’회사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국내 최초로 로봇이 운용하는 헤지펀드가 등장한다는 의미다. 실제 쿼터백은 올해 자문사에서 기존 일임상품을 펀드화해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사모펀드운용사 전환을 준비 중이다. 그는 “롱쇼트(주가 상승이 예상되는 종목 주식 매입,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 공매도) 전략 일변도인 헤지펀드 시장에서 상품의 벽을 허문 멀티에셋 헤지펀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사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도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을 이용해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도 로보어드바이저가 ‘만능요술방망이’로 비치는 것은 경계했다. “시장의 변화를 미리 맞췄다는 점보다 시스템이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사람이 놓치는 부분을 보완해 효율적인 자산 배분을 이뤄낸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양 대표의 손엔 미식 축구용 헬멧과 럭비공이 들려 있었다. 이유를 묻자 양 대표가 웃었다. “럭비공 생김새를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요. 미식축구는 ‘전쟁의 축소판’이라고들 하죠. 쿼터백은 적진 앞 관문에 정확히 공을 쏴야 하죠. 투자계의 쿼터백, 정말 멋지지 않나요?”

- 글 김영문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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