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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듀퐁 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4)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 

극복하지 말고 즐겨라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진행 유부혁 기자
바다를 좋아하는 한 사내가 요트를 샀다. 그리곤 무기항 세계일주를 선언하곤 바다로 나갔다. 209일간 4만1900㎞를 항해하고 돌아온 그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돌아왔다. 모두가 걱정했지만 정작 “나는 바빴다. 그리고 즐겼다”고 말했다. 김승진 선장은 어떤 철학으로 바다를 건넜을까.

2001년 일본 후지tv계열 방송국에서 카메라 감독으로 일하던 김승진 씨는 우연히 떠난 뉴질랜드 여행에서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아! 이 아름다운 곳에서 바다를 즐기며 여유롭게 살고 싶다.” 결국 그는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온 뒤 3개월 만에 가족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처음엔 프로덕션 일을 하면서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전세계를 덮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그도 속절없이 당했다. 다 처분하고 그에게 남은 건 달랑 집 한 채.

“사람이란 게 허약해요. 많이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니 남은 것 보단 잃어버린 걸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한 때는 위험한 생각도 했다. 그러다 그는 무작정 그가 좋아하는 바다로 자꾸 나갔다. ”돔 낚시를 하고 있는데 내 옆으로 소리 없이 거대한 요트 한 대가 지나가더라고요. 연료도 없이 바람의 힘으로만 바다를 누비는 요트에 그 한 순간 매료됐습니다.“ 당장 집을 팔고 요트를 샀다. 2010년 9월 요트를 타고 무작정 떠난 그는 2011년 4월에야 한국에 돌아왔다. 요트 타고 세계 일주를 했다. 다 던졌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이었다. 6월 14일 만난 그의 명함에는 달랑 ‘해양모험가’라고 적혀있었다.

산보다 물이 좋은 ‘수평 탐험가’

송길영:(이하 송) 세계일주에만 초점이 맞춰진 게 부담스럽진 않나?

김승진:(이하 김) 내가 한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다. 나는 주로 강연을 통해서 내 체험담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교훈보단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꿈을 가져라’ 같은 말보다 내 지난 여정에 관심을 가져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송: 다시 세계일주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김: IMOCA Ocean Masters Championship에 출전하려고 한다. 전세계를 한 바퀴 돌아와야 하는 경기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선 60억원 대 가격의 요트가 필요하다. 해외는 요트 문화가 발달했고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받고 있어 기업들의 도움이 많지만 국내 사정은 많이 다르다. 요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 않아서 발로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데도 해양 문화가 많이 발달하지 않았다. 난 되도록 멀리, 오래 나가려고 한다. 지금도 1년의 절반은 바다에 머무른다.

송: 바다를 원래 좋아했나?

김: 대학시절엔 히말라야 등반도 했다. 등반 중 조난을 당했는데 당시 두려움이 생겼다. 산에 올라 내려다 보는 것보다 수평의 바다가 좋더라. 물이 좋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수평 탐험가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송: 위험하지 않나?

김: 항해 중 잠시 물에 들어갔다가 상어를 만났다. ‘이젠 죽겠구나!’란 생각도 했지만 ‘정신 차리면 1% 가능성은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니 상어와 싸우면서 동시에 촬영도 하고 있더라.

바다는 우리 삶과 비슷하다. 계속 몰아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잔잔한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데 우리가 그걸 외면하고 준비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당하는 거다. 게다가 요트 대회나 항해의 경우 인공위성이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바로 구조가 가능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다에서의 항해는 비행이나 산보다 안전하다.

송: 체력이 좋은가?

김: 체력보다 정신력이 중요하다. 항해에선 강함보단 부드러운 정신력이 중요하다. 모든 상황을 유연하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이 결과를 바꿀 수 있다. 늘 즐거운 생각을 해야 한다.

송: 240일간 혼자 바다에 머무는 게 쉽진 않았을텐데.

김: 해야 할 일을 혼자 하니 더 바빴고 외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 하루 8시간 정도를 자는데 한번에 길어야 3시간을 잔다. 나머지는 계속해서 항해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밥하고 기록했다.

떨어져 있어야 애틋해지더라

송: 육지가 그립지 않았단 말인가? 가족이나 지인들은?

김: 그리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상황을 즐기다 보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물리적 공간에 늘 가까이 있다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에 속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떨어져 있어야 오히려 가족이든 지인이든 애틋해진다.

송: 셔츠에 You own the sea라고 새겼는데…

김: 공기의 존재처럼 우리 모두가 함께 바다를 소유하고 있단 사실을 잊고 사는 것같다. 바다는 두렵거나 기피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예측불허가 아닌 우리가 디딘 땅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도전하고 즐겼으면 해서 셔츠에 새겼다.

송: 여행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 대학생들이 김 선장을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김: 가끔 ‘여행하면서 유명해지고 그걸 수단 삼아 돈 벌고 싶다’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다. 취미를 업으로 삼는 건 반대하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생각없이 섣부르게 계산하고 뛰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냥 즐기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하면 되는데…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그냥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 스스로를 위로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송: 수단이 되는 순간 재미와 전문성이 사라진다는 말인가?

김: 그렇다. 무언가에 열정을 가질 때 가졌던 순수성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진행 유부혁 기자

201607호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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