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가 선보인 ‘캘리포니아 T’는 페라리 모델 치고는 운전이 편안하고,
가격이 저렴한 엔트리 모델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운전이 편해도 페라리는 페라리다.
직접 경험한 캘리포니아 T는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줬다.
모든 자동차의 진화는 ‘욕심’에서 출발한다. 더 높은 성능을 요구하면서도 연비까지 좋아야 하고, 넉넉한 수납 공간을 갖추되 아름다움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때론 공존이 어려워 보이는 가치들을 향해 자동차는 발전해왔다.수퍼카 브랜드 페라리가 선보인 ‘캘리포니아 T’는 욕심쟁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차다. 대중에게는 페라리 모델 치고는 운전이 편안하고, 가격이 저렴(?)한 엔트리 모델로 잘 알려졌다. 직접 경험한 캘리포니아 T는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줬다. 일단, 알려진 것처럼 운전이 편안하다. 누구나 일반 차를 몰듯이 가볍고 경쾌한 주행이 가능하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는 F1 듀얼 클러치 7단 변속기가 스마트하게 모든 것을 조율했다. 4.5m가 넘는 긴 차체는 어느 정도 속도가 붙은 상황에서도 집요하게 차선을 물고 몸을 틀었다. 차가 균형을 잃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순간에는 오히려 가속 페달에 더 힘을 쏟으며 운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운전이 편해도 페라리는 페라리다. 8기통 3855cc 가솔린 터보 엔진은 우렁차게 포효하며 앞으로 내달린다. 최고 560마력의 출력과 최대 77kg·m의 토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서킷이 아닌 국내 일반도로 어디를 달려도 부족할 수가 없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초에 불과하다. 자연흡기 방식 엔진에 비해서 작게 느껴지는 엔진음이 다소 서운할 수는 있지만 운전자의 질주본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단순히 크기가 아니라 운전자가 ‘매력’을 느낄만한 엔진 사운드 확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게 페라리 관계자의 설명이다.
제로백 3.6초 질주본능 자극
▎1. 페라리가 오랜 만에 선보이는 터보엔진으로 최대 560마력의 강력한 힘을 뿜어낸다. / 2. 우아함과 편리함이 잘 조화된 캘리포니아 T의 실내. 불편해 보이는 뒷좌석이 훌륭한 수납공간의 역활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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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욕심쟁이라면 달리기 실력은 기본으로 갖추고 품위까지 잃지 않아야 한다. 캘리포니아 T는 우아하면서도 근육질이 도드라진 몸매가 돋보이는 차다. 특히 A필러 앞쪽으로 늘씬하게 자리잡은 보닛이 인상적이다. 사이드미러를 기준으로 앞쪽이 특히 길어 퍼포먼스에는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다. 캘리포니아 T는 아름다운 곡선을 강조해 우아함을 살리는 대신 다양한 전자제어장치를 통해 운전자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보닛 앞으로 심플하게 꾸며낸 라디에이터 그릴, 그 가운데 말을 형상화한 페라리 특유의 로고가 포인트 역할을 한다.외형의 우아함은 실내까지 이어진다. 가장 먼저 스포티한 감성을 느낄 수 있고, 이어서 안락함에 빠져들다가 마지막에는 캘리포니아 T가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실내를 들여다보면 단단하게 몸을 감싸주는 시트와 멋스럽게 자리잡은 스티어링 휠이 이 차가 달리기 위해 태어난 차임을 알려준다. 시트에 앉아서는 다양한 조작이 가능한 버튼을 살피게 되는데 꽤나 직관적이다. 일반적인 차와 달리 수퍼카는 시동부터 기어 변속까지 브랜드 고유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캘리포니아 T만 하더라도 시동 버튼은 스티어링 휠의 왼손 엄지가 놓이는 부분에 위치했다. 기어 변속은 일반 차라면 방향 표시등과 와이퍼 조작 레버가 있는 핸들 좌우에 패들 방식으로 달려 있다. 보통 차의 기어박스가 장착되는 위치에는 후진 기어가 버튼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이 약간의 특수한 조작만 익히고 나면 나머지 버튼의 용도는 굳이 설명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운전석에 앉아서 편안한 조작이 가능하도록 거기 있어야 할 버튼이 역시 ‘그곳’에 있다. 버튼의 배열은 편리성과 함께 아름다움까지 고려했다. 버튼의 형태와 크기까지 디테일한 부분에서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수퍼카 치고는 제법 넉넉한 수납 공간을 갖춘 것도 이 차의 특징이다. 어린 아이조차 불편함을 호소할 정도로 좁긴 하지만 이 차에도 뒷좌석이 있다. 몇몇 수퍼카와 달리 엔진이 앞쪽에 위치해 얻을 수 있는 덤이다. 굳이 3명 이상이 타야겠다면 이 차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차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2인승 차로 접근한다면 뒷좌석은 꽤나 매력적인 수납공간이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앉도록 설계 됐으니 당연히 제법 큰 크기의 가방이나 개인 짐을 놓아 둘 수 있다. 엔진룸이 뒤쪽에 위치해 사람 2명이 겨우 앉을 수 있고 물병 하나 놓을 만한 공간도 없는 수퍼카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 T는 여기서 한 발을 더 나아갔다. 라면박스 2개 정도 크기의 트렁크가 있고, 실내 칸막이가 개폐식으로 되어 있다. 가운데 통로를 열면 트렁크과 뒷좌석과 연결이 되는데, 이는 길다란 골프백을 실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퍼카 치고는 넉넉한 수납 공간캘리포니아 T. 이름에서 느껴지듯 미국 서부의 아름다운 해변과 따뜻한 바람이 연상된다. 1950년대 이탈리아의 자존심 페라리가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개발한 차다. 오랜 세월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확한 세대 구분은 어렵지만 지금 모델은 약 6세대 정도 된다. 이름 끝에 붙어 있는 ‘T’는 터보 엔진을 뜻한다. “세대별로 변화의 폭이 커서 전혀 다른 종류의 차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페라리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름을 부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디자인이 바뀌고 성능이 발전해도 ‘캘리포니아’의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캘리포니아 T는 하드톱 방식의 오픈카다. 주행 중에는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간단한 버튼 조작만으로 14초만에 천장을 열었다가 닫을 수 있다.여건상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변 대신 산과 호수가 적절히 어우러진 경기도 양평을 중심으로 시승을 진행했다.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한 숲길에 접어들어서 잠깐 차를 멈춰 천장을 열었다. 39도가 넘는 폭염 속에 뜨거운 공기와 진득한 풀 냄새, 그리고 간간히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들어온다. 가볍게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자, 뻥 뚫린 공간으로 엔진음이 무섭게 요동친다. 조금씩 속도를 붙여도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바람까지 제어하는 덕분이다. 내부에서 내뿜는 에어컨 바람과 폭염 속의 공기가 적절한 온도로 섞이며 몸을 감싸는 느낌이다. 당연히 운전자는 품위를 잃을 일도 없다.캘리포니아 T는 페라리 모델 중 가장, 아니 거의 유일하게 출퇴근이 가능한 데일리카를 지향하는 모델이다. 앞서 쉽고 편안한 운전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데일리카라면 운전 중 피로감이 쌓여서는 곤란하다. 이번 시승은 약 4시간 가량 이뤄졌는데 다른 고성능 차를 운전하는 것과 비교해 몸에 주는 부담이 적었다. 포근하게 감싸주는 시트와 적당히 볼륨감을 갖춘 서스팬션이 운전자에게 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사전에 차단한다. 운전의 재미를 주는 수준으로만 절제한 엔진음과 진동도 피로감을 덜어주는 요인 중 하나다. 스티어링 휠 역시 부드러운 편이다.
출퇴근이 가능한 데일리카 지향데일리카로서 캘리포니아 T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연비’다. 보통 고성능 차를 운전할 때는 연비는 논외로 할 때가 많다. 페라리 측에서 굳이 ‘데일리’를 강조해 연비까지 따져봤다. 이 차의 공인연비는 L당 9.5㎞로 수퍼카 치고는 수준급이다. 숫자상 연비도 놀랍지만 실연비는 더욱 놀랍다.이 차의 오일탱크 용량은 75L인데, 출발 직전 연료 게이지의 눈금이 중간쯤을 가리켰다. 4시간의 여정을 앞두고 다른 고성능차였으면 주유소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페라리 관계자는 기름이 ‘충분하다’고 표현했다. 서울 청담동에서 양평까지 이동거리와 성능 테스트를 위한 급가속 등을 고려하면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시승이 끝난 다음에도 동일한 코스를 다시 한번 왕복할 수 있는 연료가 남았다.캘리포니아 T는 2014년 국내에 출시됐다. 그리고 올 초 ‘핸들링 스페치알레(Handling Speciale)’ 옵션을 추가해 변신했다. 이전 모델에서는 긴 차체를 제어하는데 약간의 불안감이 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있었다. 속도가 높게 붙은 가운데 급격하게 코너를 돌면 뒤쪽의 무게 중심이 다소 흐트러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서스팬션과 변속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해 훨씬 더 안정적인 차체 제어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더 역동적인 주행감을 느끼도록 응답성을 높이고 엔진음도 가다듬었다. 후방의 공기 흡입구를 광택이 없는 블랙 색상으로 꾸며서 멋을 더했다.캘리포니아 T는 페라리가 판매하는 모델 중 가장 가격대가 낮다. 하지만 성능의 우월함과 운전자의 품격을 높이려는 페라리의 DNA는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본 모델의 가격은 2억8000만원부터다.-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박스기사] 페라리를 탄다는 것성능보다 ‘감성’,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는 수퍼카 브랜드가 늘고 있다. 성능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숫자에서 오는 차이를 운전자가 느끼기는 쉽지 않아서다. 과거에는 성능이 뛰어나고 운전이 어려운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수퍼카 브랜드의 자존심이었다. 지금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브랜드가 더 많다. ‘쉬운 운전’을 강조하는 수퍼카가 늘고, 고객 입맛에 맞춘 수퍼카 SUV가 늘어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이탈리아의 자존심 페라리도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고객 감동을 주기 위해 힘쓰고 있다. 페라리 관계자는 “고객에게 ‘페라리를 탄다는 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 지를 전달하려고 한다”며 “TV CF를 하는 것보다 브랜드 로열티가 높은 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지난해 처음으로 진행한 ‘필로타 페라리 드라이빙 코스’다. 페라리 오너 드라이버가 각자 자신의 차를 가지고 프로그램에 참가해 다양한 운전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첫 행사에는 국내 40여대의 페라리 자동차가 한 곳에 모여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각자 수준에 맞춰 마련된 4단계 코스에서 기본적인 기술부터 전문적인 운전 노하우까지 익힐 수 있다. 특히 마지막 4단계 ‘챌린지 코스’를 수료하면 페라리가 주최하는 ‘페라리 챌린지 레이스’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다.‘테일러메이드 프로그램’도 눈 여겨 볼만한 행사다. 페라리 자동차에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해 꾸미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페라리는 이미 1950년대부터 고객이 자신의 자동차에 개성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욕구’로 여겨왔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 같은 차가 아니라 자신만의 페라리를 가질 수 있도록 브랜드 차원에서 돕는 것이다. 외부 색상과 실내 트림은 기본이고 마감 액세서리와 소재까지도 고객이 모두 선택할 수 있다. 모든 선택의 과정은 개인 디자이너가 붙어서 함께 상의해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