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스위스는 시계만큼 오르골도 명품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세계 최고 오르골 기업 루즈(Reuge)가 아날로그 향수를 가득 품은 오르골을 들고 국내 명품 시장에 진출했다. 쿠르트 쿠퍼(Kurt Kupper) 루즈 회장은 “명품 시계가 다져놓은 아날로그 시장에 오르골이 안착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루즈의 한국 에이전시인 럭스포레스트 김두환 대표는 “백견이불여일문”이라며 제품의 품질을 자신했다.

오르골은 스위스 제네바의 시계 장인들이 고안한 자동연주 기구다. 금속 핀을 박은 원통을 돌리면 음계 음을 내는 빗 모양의 금속조작을 튕겨 음악을 연주한다. 네덜란드어 ORGEL이 변형된 것으로 영어로는 MUSIC BOX로 불린다. 1877년 에디슨의 축음기 발명과 1차 세계대전, 미국 대공황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승전 기념품으로 오르골을 구매해 귀국하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오르골 산업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오르골 테라피 일본에서 인기


▎루즈의 아이코닉 제품인 ‘프랑카스텔 72노트’
우리나라에서 오르골이 인기를 끈 건 10여 년 전 SBS 드라마 <올인>에서 오르골이 등장하면서다. 이후 잠시 연인 선물, 유아용 선물로 인기를 끌었고 디지털 방식의 저가 오르골 시장으로 정착된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 규모는 약 50억원(업계 추정)이다.

1865년부터 오르골을 만들어 온 스위스 루즈(REUGE)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결합한 오르골로 기존의 회중시계, 펜던트뿐 아니라 라이터나 자동차 모형 등에 무브먼트를 장착해 오르골을 확산시켰다. 덕분에 현재 가장 오래된 오르골 제작 기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루즈 창업자는 찰스 루즈다. 루즈는 최고급 오르골 제조사로 매년 1000억 규모의 오르골을 생산한다. 쿠르트 쿠퍼(Kurt Kupper) 루즈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경기침체로 명품 시계 인기가 주춤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르골이 국내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오르골은 일반적으로 아날로그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된 이후에 관심을 받는다. 최근 한국 명품시계 시장이 주춤하긴 하지만 지난 10년간 급성장해 온 만큼 오르골 시장엔 충분한 가능성이 열렸다고 분석했다. 또 경기침체로 어려운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하거나 불면증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오르골이 가진 치유의 기능이 빛을 발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오르골 제품이 다양하다. 현재 몇 종류의 제품이 있고 해마다 몇 종류의 제품을 출시하는 지 궁금하다.

현재 120여 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신제품 출시를 위해 해마다 150여 개의 콘셉트 제품을 만든 후 15개만 추려내 3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바젤페어와 같은 시기에 발표한다. 15개의 신제품은 2년간 고객 반응을 보고 정규 컬렉션에 포함될지를 결정한다. 현재 120개의 제품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은 제품들인 셈이다.

루즈 오르골 가격이 일반인이 구매하긴 조금 비싸게 느껴지는데.

보통 한 개의 오르골을 만드는 데 수십 년간 루즈에서 일해온 장인들이 매달려도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품의 구성요소인 나무, 진주조개, 메탈 그리고 새의 깃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료는 최상급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제품이 아닌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오르골이 일본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상당히 인기라고 들었다.

일본에는 오르골을 이용해 심신을 치유하는 ‘오르골 테라피’가 큰 인기다. 일본 국민은 일본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일본에 주둔한 승전국 미군이 가져온 오르골 특유의 맑고 청명한 소리에 매료돼 오르골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경제 침체와 고령화 등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 오르골이 도움이 됐다고 알려졌다.

백견이불여일문, 들어보면 매료돼


▎스타워즈 우주선 타이 파이터를 모티브로 만든 제품으로 루즈와 세계 최고가 명품 시계 브랜드인 MB&F와 콜라보레이션 하여 제작한 ‘뮤직 머신3’. 단 33점만 제작했다.
일본은 1985년 오사카대학을 시작으로 여러 병원과 연구기관이 협력해 오르골 치료의 과학적 원리를 연구해 왔다. 연구를 통해 오르골에선 인간이 들을 수 없는 10만Hz 이상의 고주파가 나와 뇌간을 자극해 전신 기능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95년에는 일본 문과성(문화교육부)의 연구 기관과 교토 대학이 국제 신경학회에서 ‘고주파 음악이 시상하부의 혈류를 활성화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면세점 진출 계획은?

면세점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가 이번 한국 방문의 목적이다. 한국 공식 에이전트인 럭스포레스트와 함께 일부 면세점과 미팅도 가졌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일본 시장 그리고 해마다 30% 성장하는 중국을 놓고 보아도 한국 시장은 반드시 성공할 거라 확신하고 있다. 한국인은 음악을 좋아하는 민족이지 않나? 우리 제품의 소리를 한국 고객들이 좋아할 거다.

쿠퍼 회장의 방한 일정을 수행한 루즈의 한국 에이전트인 럭스포레스트 김두환 대표는 “얼마 전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 루즈 오르골을 전시해 하루 만에 21점을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더 놀라운 건 방문객 30명 중 20명이 구매했다는 사실이다. 소리를 듣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루즈 오르골은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 백견이불여일문”이라고 했다.

주문 제작을 통한 특별한 멜로디를 제작할 수 있나.

가능하다. 최근 자신만의 특별한 제품을 원하는 VIP들의 주문이 증가하는 추세다.

멜로디를 위한 저작권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나?

지난 150여 년간 만들어온 멜로디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저작권 협의가 필요 없는 곡들도 포함돼 있다.

오르골에서 핵심 부품은 무엇인가.

실린더와 콤브 그리고 케이스다. 오르골은 실린더와 콤브가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고 케이스가 미적 요소를 만든다.

K-POP도 오르골 제작 가능


▎최고급 명차인 벤틀리의 대시보드 장식재로 사용되는 최고급 마드로나 원목을 사용하여 338개의 작은 나무 조각과 황동, 그리고 진주 조각을 루즈가 자랑하는 인레이 기법 (상감기법)으로 꽃과 요정을 잘라 넣은 오르골 ‘매직’.
오르골 재생 방식은 대부분 실린더 방식이다. 디스크 방식도 있었지만 부피가 크고 가격이 비싸 만들어지진 않고 있다. 실린더 오르골은 17note, 36note, 72note, 144note 등의 사이즈로 제작된다. note(노트)는 음을 내는 comb(콤브)에 달려 있는 tooth(투스)의 개수를 뜻한다. note가 많을 수록 음이 풍부해지고 수록할 수 있는 곡도 많다. 기술적으로 36note는 한 곡만 수록되고 72note 이상이 돼야 3곡 이상 수록할 수 있다.

한국의 유명한 대중음악도 오르골 제작이 가능한가?

물론이다. K-POP이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까지 큰 유행이다. 루즈에게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 보통 3분 가량되는 음악의 길이를 30~40초의 오르골 멜로디로 함축시켜 표현하되 원곡의 느낌을 넘어선 감동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편곡이 상당히 중요하다. 마치 2시간의 기자회견을 500개의 단어로 요약하는 것과 같다.

-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201611호 (2016.10.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