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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국가핵융합연구소장 

“깨끗하고 무한하고 안전한 꿈의 에너지”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기자
화석연료처럼 고갈 걱정이 없고, 원자력의 위험성도 적은 핵융합에너지가 ‘꿈의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핵융합연구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몇 안 되는 과학기술 분야다. 그 중심에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있다.

▎국가핵융합연구 소장은 “미래에는 강력한 에너지 자립을 이룬 국가가 경제· 정치적으로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 뒤로 보이는 것은 ‘한국의 인공태양’ 이라고 불리는 차세대 초전도핵융합 연구장치인 K스타.
지난해 12월14일 국가핵융합연구소는 “대전 국가핵융합연구소에 설치된 핵융합로 K스타(KSTAR)가 고성능 플라스마를 7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기록인 중국 연구팀의 60초를 뛰어넘는 세계 최장 시간 운전 기록”이라고 밝혔다. K스타는 지름 10m, 높이 6m의 도넛형으로 생긴 핵융합 실험로를 말한다. 핵융합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섭씨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진공용기 속에 가둬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3월15일 대전시 유성구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만난 김기만 소장은 “꿈의 에너지로 평가되는 핵융합에너지 개발은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우리 기술력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며 “이 성과로 선진국을 따라가던 과거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 삼성종합기술원 에너지랩장,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초전도자석팀장을 거쳐 2005년 국가핵융합연구소에 합류한 그는 2014년 11월 소장 부임 후 많은 성과를 내놓고 있다. 특히 연구 과정에서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과 협력해 ‘핵융합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의 인공태양’ 매년 신기록 쏘다


핵융합에너지는 미래의 에너지원이 갖춰야 하는 많은 조건을 충족시킨다. 바닷물에 풍부한 중수소와 지표면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는 리튬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자원이 거의 무한하다. 게다가 핵융합연료 1g은 석유 8t에 해당하는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 욕조 반 분량의 바닷물에서 추출할 수 있는 중수소와 노트북 배터리 하나에 들어가는 리튬의 양만으로 한 사람이 3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김 소장은 “무엇보다 핵융합에너지는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소량의 방사능에 따른 중·저준위 폐기물만 발생해 폐기물 처리 방안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런 장점 때문에 인류가 개발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청정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핵융합에너지는 깨끗하고 안전하며 무한하다는 설명이다.

국제사회는 2006년 ITER(국제열핵융합실험로)라는 국제기구를 만들어 핵융합실험로를 설계·건설·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총 건설 투자비 18조 원에 달하는 실험로는 2025년 말 최초 플라즈마(고체·액체·기체가 아닌 제4의 물질) 달성을 목표로 프랑스에 건설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미국·러시아·일본·중국·인도 등 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ITER에서 핵융합로의 성능이 입증되면 2040년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핵융합로 건설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1995년 후발주자로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에 뛰어든 한국은 2007년 순수 국내 기술로 초전도핵융합장치인 K스타를 개발하면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달성하고, 핵융합 연구를 빠르게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 소장은 “K스타는 기존 선진국에서 건설했던 핵융합 장치들과 다른 신소재 초전도 자석을 사용해 2010년 초전도 핵융합장치 중 세계 최초로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을 달성했고 이후 계속 세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며 “뛰어난 우리나라 중공업 기술 덕분에 장치 자체가 정밀하게 건설되어 타 장치에 비해 실험 데이터가 매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고 말했다.

K스타 연구를 통해 얻은 기술은 현재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되고 있는 ITER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ITER은 K스타보다 27배 크지만 소재와 작동 원리가 같다. 김 소장은 “이번 운전 기록 경신으로 국가핵융합연구소가 국제 프로젝트인 ITER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22년 무렵 플라즈마 상태로 300초 이상 연속 운전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300초는 핵융합 상용화에 필요한 고성능 플라즈마 연속운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를 대부분 극복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엔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H-모드)의 최대 단점인 플라즈마 경계면의 불안정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장시간의 고성능 플라즈마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운전 방식인 내부수송장벽(ITB) 운전을 세계 최초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결과로, 올해도 중점적으로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연구소는 또 올해부터 핵융합로가 고온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소재나 안전장치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현대중공업·다원시스·한전기술 등 국내 기업들과의 협업도 성과를 보고 있다. 진공용기·초전도자석·전력공급계통·블랭킷 등 총 10개 품목을 국내 기술로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K스타 개발 과정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은 핵융합 기술력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ITER 국제기구나 다른 회원국들이 발주하는 과제도 속속 수주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으로 해외 직접수주 금액은 94건, 5400억원에 달한다. 김 소장은 “특히 지난해엔 한국전력기술개발이 유럽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2300억원 규모의 ITER 건설관리 용역 사업을 수주하는데 성공했고, 당초 유럽에서 제작하기로 했던 진공용기 일부를 국내 기업인 현대중공업이 1250억원에 추가로 수주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K스타 개발 과정에서 얻은 핵융합 기술 덕분에 ITER 사업 참여로 인한 분담금의 대부분을 해외 수주 매출로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ITER 사업의 국제 수주를 비롯해 항공우주·천문·가속기 분야 등 타 거대 과학 분야의 사업에 참여하면서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거죠. 이후 ITER 상용화를 위해 각국에 핵융합 장치가 건설될 때 우리나라 기업들이 관련 부품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는 단순히 현재 기술력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위해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EU는 호리즌 2020 프로그램을 통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핵융합실증로 연구를 위해 약 32억 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다. 일본 역시 EU와 공동으로 초전도핵융합장치인 JT-60SA 개발을 위해 약 1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핵융합 인력 양성 및 핵융합장치 EAST의 성능향상과 더불어 핵융합실증로 단계로 가기 위한 장치인 CFETR 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다.

기업 협업으로 ‘핵융합산업 생태계’ 구축

김 소장은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핵융합 연구 분야의 세계적 위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지금의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를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웨어가 역량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 인력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현재 국가핵융합연구소에는 200여명의 연구 인력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중 K스타 연구에 참여하는 인력은 약 100명이다. K스타와 유사한 규모의 핵융합연구장치인 중국의 EAST에는 600명 이상의 연구자가 소속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ITER 국제기구에 파견 보낼 수 있는 전문 인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ITER엔 2018년까지 약 1000여 명의 연구자들이 필요한 상황인데, 현재 우리나라 연구진은 32명입니다. ITER 참여 전체 인원의 10%까지 파견을 보낼 수 있으니, 더욱 많은 인력 양성을 통해 추가적인 파견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김 소장은 올해 그동안의 연구개발 과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수퍼컴퓨터 도입에 노력하고 있다. “K스타라는 하드웨어를 구축했으니 이젠 누적된 정보를 국내 기업과 나눌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중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미래에는 강력한 에너지 자립을 이룬 국가가 경제·정치적으로 전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 자명하다. 에너지 안보를 확립할 수 있도록 핵융합에너지와 같은 파급효과가 큰 미래 에너지원 개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기자

[박스기사] ‘인공태양’을 만드는 핵융합에너지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현장. 높이 30m, 폭 30m 규모로, 한국과 미국·러시아·일본·중국· 유럽 등 7개국이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 국가핵융합연구소 제공
핵융합은 태양의 불타는 원리이며,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원리인 핵분열에 비해 수천·수만 배의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핵융합은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원리인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다고 해서 ‘인공태양’이라 불리기도 한다. 태양은 45억년간 자연 상태에서 수소·헬륨의 핵융합 반응으로 엄청난 열과 빛의 엄청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뿜어내고 있다. 태양에서는 수소 원자 4개가 합쳐져 1개의 헬륨을 만드는데, 매초 7억t의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양은 초당 4조W의 100조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태양 중심은 고중력으로 섭씨 1500만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고체·액체·기체가 아닌 제4의 물질) 상태인데, 이때 수소 같은 가벼운 원자핵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발생한다. 원자력발전 원리가 되는 핵분열보다 4배나 강하다. 이를 ‘핵융합에너지’라고 한다. 지구에서 핵융합발전은 태양 중심 같은 고중력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섭씨 1억도 이상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를 만든 후 지속적으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해 에너지를 생산한다. ‘인공태양’을 만드는 셈이다.

핵융합은 바닷물에 풍부한 중수소와 땅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는 리튬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자원이 거의 무한하다. 핵융합발전은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원자력발전의 0.04%에 불과한 소량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하지만 모두 10년에서 100년 이내 재활용이 가능하다. 발전소 폭발 같은 위험도 없는 꿈의 에너지인 셈이다.

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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