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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경영의 정석 | 경영도 리셋하자(2) 

IT기업들 해외를 겨냥하라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dongho@joongang.co.kr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다. 정부의 규제 역시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력하다. 이렇게 규제가 강해 기업을 하기 어렵다면 밖으로 눈을 돌려라.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예비창업자들이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정부의 규제는 이곳에서도 기업가정신을 억누르고 투자심리를 꺾어놓고 있다. / 중앙일보 최정동
경제와 관련해서는 국경이 없어진 글로벌 경제체제에서는 굳이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비즈니스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모든 업종이 그렇지는 않다. 실물 투자가 필요한 제조업은 무턱대고 외국에 공장을 지을 수 없다. 진출한 국가에 급변사태가 일어나거나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공장을 비롯한 실물자산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자동차 공장은 라인 한 개 증설에 수 조원이 들어간다.

더구나 현지화에 따른 기술 유출과 이전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불과 10년이면 기술 이전 효과가 가시화된다. 처음에는 단독으로 진출을 하고 이어 합작회사를 통해 기술을 습득한 뒤 최종적으로는 현지인들이 기술을 습득해 회사를 세우는 단계로 발전한다. 그다음 단계 수입대체 산업이다. 자국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 기업을 차별하고 현지에 진출한 기업은 결국 경쟁우위를 잃고 시장까지 상실하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이와 달리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는 인터넷 기반 산업은 본질이 다르다. 물리적 공간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런 메가 트렌드에서 그리 불리한 위치에 있지 않다.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해외 진출이 적합한 업종은 한국이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정보기술(ICT) 분야 가운데 사회적관계망(SNS)·게임·핀테크·가상현실(VR)·인터넷쇼핑몰 등이다.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페이스북·아마존·구글·유튜브 등이 이미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장이 따로 없다. 아이디어 하나로 돈을 벌고 수십 억 명의 세계 소비자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업이 되기 위한 창업가의 노력과 정부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에 발목이 잡혀 창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리 규제 완화를 외치고 창업 환경을 개선한다고 해도 얽히고설킨 기존 덩어리 규제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이 첫걸음마를 떼는 단계인 스타트업을 하려고 해도 높은 규제의 문턱을 통과해야 한다.

1500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입주해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인 벤처밸리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지향해 1990년대 말 조성됐다. 이곳에 들어가면 창업에 필요한 행정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연구개발에 매진해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이를 기대하고 서울 테헤란에서 자생하던 벤처기업들이 대거 판교 테크노밸리로 옮겼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정부의 규제는 이곳에서도 기업가정신을 억누르고 투자심리를 꺾어놓고 있다.

벤처밸리의 장점은 규제프리가 가능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 규모가 작으므로 국내외 마케팅, 특허, 회계, 금융 등 백오피스 업무 지원을 받는 것도 벤처밸리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한국의 벤처밸리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벤처기업 창업자는 ‘각개 약진’하거나 ‘각자도생’을 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는 엄밀하게 봐서 벤처밸리가 없는 셈이다.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를 당하자 김대중 정부는 코스닥 활성화에 나섰다. 말 그대로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했고 코스닥 상장도 가능했다. 당시 코스닥에는 한 달에 수십 개의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갔다. 이 때 코스닥이 융성한 결과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발전의 토대가 됐다. NHN·다음·엔씨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이 같은 벤처 육성 정책 덕분이었다.

한국은 이 같은 벤처기업 활성화 덕분에 3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제대로 올라탔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을 휩쓸고 스마트폰 제조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ICT 기반을 탄탄하게 쌓았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나스닥을 벤치마킹했던 코스닥시장의 활황은 외환위기 극복의 상징이자 한국 산업구조의 재편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지는 법이라고 했다. 2000년 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휩쓴 IT버블 붕괴는 한국을 강타했다. 미국 다음으로 IT 활황이 벌어졌던 만큼 한국은 추락의 골이 깊었다. 쏠림 현상에 휩쓸리면서 바닥을 단단하게 다지지 못했던 부작용이었다. 정부지원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받아내는 짝퉁 창업가들이 판을 쳤다. 이런 불운이 겹치면서 한국은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10년가량 ‘벤처 암흑기’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강력한 규제를 가하면서다.

국내 벤처투자 생태계 살아나고 있어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은 전년도에 비해 17% 성장했다. 글로벌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모바일 게임 ‘히트(HIT)’를 내놓은 덕분이다. / 넥슨 제공
좋은 비즈니스모델이 있어도 자금 조달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고, 어렵게 상장을 해도 인수합병(M&A)을 통한 엑시트(exit)를 할 수 없었다. 한국은 이 같은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잘 되면 확 몰렸다가 부작용이 나타나면 싹을 밟을 정도로 가혹하게 규제가 가해진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갈라파고스 규제가 만들어져 왔던 것이다. 공무원은 이와 함께 기득권의 성(城)을 쌓아왔다.

이러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손꼽히게 됐다. 창업생태계가 다시 생명을 건진 것은 거의 ‘죽음의 계곡’으로 바뀌고 나서야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창업생태계 복원에 나서자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2016년 벤처 투자 규모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규 벤처펀드 조성은 2015년과 비교할 때 17.9% 증가한 3조1998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3조 원대를 돌파했다. 또 신규 벤처투자액은 3.1% 증가한 2조 1503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은 벤처투자가 각각 9.3%, 25.4% 감소하는 등 전세계 벤처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성과다.

창업생태계가 활성화되자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도 늘어났다. 창업초기기업(설립 3년 이내) 투자 비중은 36.8%(7909억 원)로 전년(31.1%, 6472억 원)과 비교해 5.7%p 증가했다. 2013년 대비로는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후기단계 기업(설립 7년 초과)에 대한 투자 비중은 6.5% 감소했다. 이는 벤처펀드가 모험자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간자본이 2조원 대를 돌파한 것도 고무적이다. 민간자본의 벤처펀드 신규 출자는 전년(1조4932억원) 대비 35.2% 증가한 2조188억원을 기록하며 2조원을 돌파했다. 2013년 대비로는 2배 이상 증가했다. 기존 벤처기업의 벤처펀드 출자액은 전년(1372억원) 대비 51.5% 증가한 2078억원을 기록해 창업-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투자 선순환 생태계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존 창업자 및 벤처기업의 창업투자회사(VC, 벤처캐피탈) 신설과 투자도 활발했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84개 기업에 총 1482억 원을 투자했고,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40개 기업에 959억 원, 에스비아이인 베스트먼트는 34개 기업에 878억 원을 각각 투자했다.

이같이 신규 벤처펀드 조성과 투자액 모두 사상 최고치를 달성한 것은 규제 완화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창업 초기 투자비중 확대, 민간자본과 기존 벤처의 참여활성화 등 질적인 수준도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은 벤처투자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올해도 모태 펀드를 통한 벤처펀드 출자예산 확대와 신규 민간 출자자 발굴이 필요하다.

융자가 아닌 투자 중심의 선순환 창업생태계 구축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벤처기업 경영정보의 투명화가 필요하다. 벤처투자 조성과 신규 투자액이 증가한 것은 그동안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반을 지원한 데 힘입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지원으로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민간이 경쟁적으로 투자해야 유기적인 벤처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바로 실리콘 밸리의 성공 비결이다. 아이디어만 있어도 창업할 수 있고, 민간자본의 활발한 투자를 발판으로 성장해 사업화에 성공하면 주주들이 투자금을 회수해 수익을 얻고 다시 재투자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선순환이 가능해지려면 한층 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기존 규제는 너무 얽히고 설켜 있어 풀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규제프리 샌드박스’를 만들어야 한다. 규제프리 샌드박스는 마치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밭처럼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놀아도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다. 이는 경제특구와는 조금 다르다. 경제특구 역시 규제가 완화된 지역이지만 완벽한 자유를 얻기는 어렵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국회에서 낮잠


▎국회는 규제프리존법, 규제개혁특별법, 노동개혁법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규제프리존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모두 발언 장면. / 중앙포토
규제프리 샌드박스와 가장 유사한 제도는 현재 정치권의 정쟁에 발목에 잡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이다.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별로 선정된 2개씩의 지역 전략산업에 대해 관련 규제를 선별적으로 풀어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찬성하지만 야당이 정쟁의 볼모로 잡아두고 있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규제프리존은 전국 단위에 도입하기 어려운 산업맞춤형의 과감한 규제완화를 일정 지역에 한정해 시행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 지역발전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각 시·도 별로 지역전략사업을 2개씩 선정했다.

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법, 규제개혁특별법, 산악관광진흥구역 정비 및 운영법,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비롯한 노동개혁법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기업인들은 이런 법안 처리를 애타게 촉구하고 있지만 국회의 끝없는 정쟁에 밀려나 있다.

이 중 서비스업발전법은 2011년 12월 발의됐으나 지난 18,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폐기됐다. 지난해 다시 국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은 범정부 차원에서 서비스발전 기본계획을 심의하고 관련 정책을 협의하기 위한 취지로 정부가 5년마다 중장기 정책목표를 정하도록 했다. 19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는 15차례 이 법안을 축조 심사 대상에 올렸지만 제대로 된 심사는 딱 한 번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 부산 해양관광, 사물인터넷(IoT) 융합 도시기반 서비스 ▲ 대구 자율주행자동차, IoT 기반 웰니스산업 ▲ 광주 친환경자동차(수소융합스테이션), 에너지신산업(전력 변환 및 저장) ▲ 대전 첨단센서, 유전자의학 ▲ 울산 친환경자동차(부생수소 활용), 3D 프린팅 ▲ 세종 에너지 IoT ▲ 강원 스마트 헬스케어, 관광 ▲ 충남 태양광,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부품 ▲ 충북 바이오의약, 화장품 ▲ 전남 에너지신산업(전력SI, 화학소재 포함), 드론 ▲ 전북 탄소산업, 농생명 ▲ 경남 지능형 기계, 항공산업(항공부품인증) ▲ 경북 스마트기기, 타이타늄 ▲ 제주 스마트관광, 전기차인프라

다음 정부에서도 규제 완화를 촉진하는 이들 법안이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고질적인 정쟁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이 같은 내부의 문제와 글로벌 경제의 확산이라는 외부의 기회를 동시에 활용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K게임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NHN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빅5 게임업체의 지난해 연간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시장이 셧다운제를 비롯한 규제로 막히자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은 결과다. 규제에 발목이 잡혀 성장하지 못했던 사업을 밖으로 끌고 나가 성공한 것이다.

해외 겨냥해 성공한 국내 게임업체들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은 지난해 1조93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정주 창업자가 검찰에 기소되는 혼돈을 겪으면서도 전년도에 비해 17% 성장했다. 이 같은 성과는 글로벌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모바일 게임 ‘히트(HIT)’를 내놓은 덕분이다. 2007년부터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던전앤파이터’의 꾸준한 인기도 한몫했다.

모바일 게임 강자로 등장한 넷마블은 지난해 매출이 사상 최대 규모인 1조5000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해외 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모바일게임 ‘세븐나이츠’는 해외 업체들의 진입이 어려웠던 일본에서 지난해 6월 최고 매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엔씨소트프의 북미·유럽시장 공략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1분기 출시한 ‘블레이드 앤소울’이 흥행하면서 전년보다 17% 늘어난 9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가운데 북미·유럽 지역 매출은 전년 대비 25% 늘어난 1552억원에 달했다.

이들 기업의 성과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지적재산권(IP) 비즈니스의 국경은 없다는 점이다. 이 같은 성과는 또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규제왕국’이자 시장이 좁은 한국의 기업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처음부터 해외를 겨냥해 비즈니스를 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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