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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관 아카데미과학 대표 

“프라모델은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이끌어 내는 도구” 

조용탁 기자 ytcho1@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아카데미과학은 변화의 파도가 몰아치는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1980년대 잘나가던 시절 모은 자금을 제품 개발에 투자했다. 돈 되는 사업에 눈을 돌린 일도 없다. 프라모델 한 우물만 판 덕에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김명관 대표에게 회사는 고향 같은 곳이다. 사장실엔 수백 개의 프라모델 제품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이 쌓여 있다.
2만5000원과 1만7000원. 각각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의 48분의 1 크기 플라스틱 모델(프라모델)과 한국형 자주포 K-9의 35분의 1 모델 가격이다. 실제 무기 수출이 늘며 요즘 해외 밀리터리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진 제품들이다. K-9 자주포는 터키·핀란드·인도, T-50 훈련기는 이라크·필리핀·태국에 수출한 한국형 첨단 무기다. 덩달아 이들의 프라모델도 주문이 늘었다. 국산 무기의 수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아카데미과학 김명관(47) 대표의 얼굴이 밝아지는 이유다. 아카데미과학은 국내 주요 탱크와 비행기, 군함의 프라모델을 제작한다. 김 대표는 “해외 프라모델 시장은 두터운 마니아층이 있다”며 “물량은 많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K-2 흑표전차, K-9 자주포, T-50 고등훈련기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과학의 완구들은 지금 세계 60여 개국에서 유통 중이다.

아카데미과학은 1969년 과학교사 출신의 김순환 전 아카데미과학 회장이 설립한 완구·과학교재 제조 기업이다. 80년대 100여 개의 업체가 난립했지만, 국내 프라모델 제작사로는 아카데미과학만 살아남았다. 김 대표는 “경쟁업체보다 해외 시장을 한발 앞서 개척했고, 품질 관리에 노력을 기울인 덕”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일본의 타미야, 독일의 레벨에 이어서 프라모델 업계 세계 3위 회사로 올라섰다. 2015년 325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48년 역사의 중견 기업이다.

업계 세계 3위, 48년 역사의 중견기업


▎아카데미과학은 프라모델 한 우물만 판 덕에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본사는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 용현산업단지에 있다. 한국에서 150명이 근무하고, 필리핀에 직원 300명 규모의 공장이 있다. 독일에서도 판매법인을 운영 중이다. 본관 입구 자동 유리문을 지나면 정면에 커다란 진열대가 있다. 탱크와 비행기, 군함 모델 수백 개가 방문자를 반긴다. 입구 오른편이 제조 시설이다. 기술자들이 금형을 디자인하며 프라모델 부품을 뽑아내는 곳이다. 아카데미 과학은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프라모델의 개발·금형·사출·조립의 전 공정을 직접 하는 업체다.

2층이 사무실이다. 역시 직원 책상 사이 사이에 인기 프라모델들이 서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사장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린 시절 침 흘리며 바라봤던 문방구 진열대가 떠올랐다. 사장실엔 수백 개의 프라모델 제품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이 쌓여 있었다. 사장 책상 뒤쪽 벽과 오른편엔 제품 상자들이 있었고, 왼편엔 세계 곳곳에서 모아온 장난감 샘플들이 있었다. 책상 앞쪽 산더미처럼 쌓인 장난감 사이로 두 개의 TV 화면이 보였다. 김 대표는 업무 시간에 만화 채널 투니버스와 EBS를 틀어 놓는다.

“교육 프로그램과 인기 애니메이션을 보며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 고민합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요.”

김 대표에게 회사는 고향 같은 곳이다. 그는 1970년 생이다. 회사 설립 다음해에 태어났다.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매일 밤, 서울 안암동 집 안마당에 세운 작은 천막에서 밤을 지새웠다. 전구 불 하나 켜 놓고 아이들이 사용할 과학 교재를 깎아 만들던 장인이었다.

“첫 제품들은 단순했어요. 아버님이 나무판 잘라 바퀴 달고 고무줄 붙여서 만든 자동차였어요. 가내 수송업 수준이었지만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 인기였습니다.”

김 회장은 고물상에 나온 부품들을 조립해 재미있는 완구들을 만들었다. 출근길은 삼선교 앞 초등학교, 퇴근길은 청계천 부품가게였다. 김 회장이 밤 새워 만든 모형이 소문을 타자 다른 선생님 사이에서 부탁이 들어왔다. 부잣집에서 주문이 들어온 일도 있다. 과학 교재 만드는 일에 빠진 김 회장은 결국 과학 선생님 자리를 8년 만에 그만두고 완구 회사를 차렸다. 자본금은 500만원, 아카데미과학의 시작이다.

완구 산업 주도한 삼선교 과학사

완구와 과학교재는 만드는 족족 팔렸다. 5년이 지나서는 집 앞마당에서 나와 삼선교에 과학사를 차렸다. 몇 년 후엔 회사 이름은 아카데미과학교재로 정했다. 뭔가 교육적인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카데미, 여기에 이것도 하나의 과학이라는 의미로 과학, 그리고 아이들이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목적이기에 교재를 붙였다고 한다. 나중에 회사가 커가며 교재 사업이 줄자 지금의 아카데미과학이 됐다.

80년대 들어 국내 프라모델 산업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당시 초등학교에 다닌 남학생 대부분에겐 문방구 진열대를 가득 채운 프라모델을 넋 놓고 지켜 봤던 기억이 있을 정도다. 업체도 늘었다. 전국 곳곳에 100여 개 넘는 업체가 난립했다. 아카데미과학도 이때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호황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가 참여했던 행사는 모형 비행기 대회다. ‘과학의 날’ 행사였다. 글라이더를 만들어 날리며 아이들은 파일럿과 항공 엔지니어의 꿈을 키웠다. 지금은 사라졌다. 시대가 변하며 참여하는 아이들이 크게 줄어서다.

바람은 갈수록 거세졌다. 2000년대 들어 골목마다 PC방이 들어섰다. 수많은 인터넷 게임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다. 모바일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다. 여기에 저출산으로 아이들 수가 매년 줄고 있다. 문방구도 문을 닫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학교의 교재 단체 구매다. 저소득 자녀들이 교재 구입에 어려움을 겪자 교육부가 나섰다. 학교에서 수업용 교재를 단체 구매하는 것이다. 문방구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프라모델 업체도 충격이 컸다. 전국 최대 유통망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아이들이 프라모델을 접할 기회조차 사라진 것이다. 국내 프라모델 업체들이 경영난을 호소하며 하나 둘 사라져간 배경이다.

김 대표는 2009년 회사에 합류했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다음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이후 10년 넘게 외국계 금융사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부르시더군요. 이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요.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가업을 이을 것이라고요. 저도 완구를 좋아합니다. 꿈을 만드는 일입니다.”

김 회장은 회사로 찾아온 아들에게 한 가지를 강조했다.

“‘큰 회사는 아니지만, 남한테 줄 돈, 직원 월급, 단 한 푼도 단 하루도 늦게 준 적 없다’고 하시더군요. ‘정직하게 벌어서 정직하게 세금 내온 회사’라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과학은 변화의 파도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80년대 잘나가던 시절 모은 자금을 제품 개발에 투자해서다. 돈 되는 사업에 눈을 돌린 일도 없다. 프라모델 한 우물만 판 덕에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앞세워 수출 시장을 개척한 덕에 한국에서 벌어진 급격한 변화에서 살아남았다. 타이타닉호가 좋은 예다. 1997년은 영화 타이타닉이 흥행에 성공한 해다. 글로벌 프라모델 업계에도 타이타닉 열풍이 불었다. 아카데미과학의 타이타닉 모델은 전세계에 50만 개가 팔려나갔다. 단일 모델로 아카데미 과학 최고 판매 기록이다. 높은 품질의 일본 제품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업체들은 아카데미과학에 먼저 주문을 넣었다. 일본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앞섰음은 물론 품질도 떨어지지 않아서다.

독일에서 열리는 뉘른베르크 세계완구쇼는 전세계 완구 구매자들이 모이는 자리다. 행사를 마칠 무렵엔 완구 관계자들이 우수한 제품을 선정하는 시상식이 열린다. 아카데미과학은 지난 2000년 이후 뉘른베르크 세계완구쇼에서 매년 수상해왔다. 제품 고증을 위해 아카데미 과학은 각종 사진을 활용, 제품의 전체적인 비율을 정하는 것은 물론, 내부 설계는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철저하다.

“2차 대전 당시 사용한 미국과 독일 전차와 비행기도 효자 종목입니다. 라이선스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아이템입니다. 해외 마니아 사이에서 아카데미과학 제품 인기가 좋습니다. 정교한 데다 가격까지 착해서입니다.”

글로벌 시장 수출로 위기를 모면한 아카데미과학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개발해 왔다. 지금 프라모델, 무선조종(RC) 장난감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아카데미과학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삼은 것은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캐릭터 완구사업이다. 김 대표가 회사에 합류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매달린 분야다. 아카데미과학은 2011년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로이비쥬얼, 홍콩의 완구업체 실버릿과 손잡고 로보카폴리를 선보였다.

경찰차 로봇 폴리가 다른 자동차들과 힘을 모아 악당을 잡는 이야기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커다란 인기를 모으며 아카데미과학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았다. 로보카폴리 외에도 현재 아카데미과학은 티버스터, 날아라발루포, 그린세이버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 완구를 제작하고 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의 관심사가 바뀌는 시대 트렌드 자체를 거스를 수 없었다”면서 “국산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제품을 동시에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은 캐릭터 완구


애니메이션과 완구 회사가 협업하는 것은 일본 사업 모델이다. 처음부터 어떤 장난감을 만들지 주제를 정한 다음 애니메이션을 만들 정도다. 김 대표는 한국 사업 환경이 일본보다 더 좋다고 한다. 만화 콘텐트 개발 분야의 정부 지원이 활발하다. 애니메이션을 방송할 케이블 채널도 여럿이다. 일본은 공중파 중심이라 제작 비용이 훨씬 높다.

“한국은 전체 방송의 80%를 케이블이 커버하고 있습니다. 애니 채널만 20개에 달합니다. 공중파에 비해 파괴력은 적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규모는 작아도 기회가 많이 열려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이런 애니 업체와 협력하며 내수와 수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멀리 바라보고 준비 중인 사업도 있다. 복고 완구들이다. 김 대표 집무실 한편엔 낡은 진열장이 있다. 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인디언과 보안관 시리즈, 독수리 오 형제 불새 모함, 이겨라 승리호 모델을 따로 보관하는 공간이다.

“불새 모함은 지금 20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어요. 나이와 공간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프라모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지 고민하며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아카데미과학 1층 생산 라인 옆에는 농구코트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금형 보관실이 있다. 쌓아 놓은 금형은 보통 높이 60㎝ 가로·세로 40~50㎝ 크기다. 주문이 자주 들어오는 금형 200개가 이곳에 쌓여있다. 건물 옆에는 두 배 정도 크기의 창고가 또 하나 있다. 한때 인기 있었지만 지금은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금형 800개를 보관하는 장소다. “언젠가 이곳에 금형이 꽉 차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까지 일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 조용탁 기자 ytcho1@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705호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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