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를 둔 직장인의 최대 고민은 육아다. 결국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직장 생활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자녀 양육에는 수많은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부모가 된 직원들에게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민 기업을 찾았다.
▎카카오 사내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 지난해 정원을 300명으로 늘린 본사 어린이집 규모는 세계 최대다. |
|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현재 경력단절 여성은 190만6000명에 달한다. 그 중 절반은 30대였고, 이들이 직장을 쉬거나 그만둔 주된 이유는 육아(34.8%)였다. 저출산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어린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직장 동료를 보는 것은 예삿일이다. 저출산 시대에도 집 근처 어린이집 순번은 돌아오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반드시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사업장이 직접 어린이집을 운영하거나 지역 어린이집에 근로자 자녀 보육을 위탁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1년에 최대 2회, 매회 1억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여전히 이 법을 따르지 않는 회사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기준 직장어린이집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사업장 1148곳을 실태 조사한 결과, 210곳(18.3%)은 어린이집을 운영하지 않았다.직장 어린이집 설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우수한 보육시설로 눈길을 끄는 기업이 있다. 앞서가는 곳은 젊은 직원 비율이 높은 IT업계다. 한 IT업계 인사담당자는 “업무 특성상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잦은 상황에서 우수한 개발 인력을 경쟁사에 앞서 선점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며 “직원들의 선호가 가장 높고 애사심을 고 취시킬 수 있는 복지 중 하나가 바로 사내 어린이집”이라고 말했다.카카오는 지난해 10월 정원 300명의 어린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내 어린이집 ‘늘예솔’을 확장 개원했다. 기존 정원 124명에서 두 배 이상 늘린 셈이다. 국내법상 직장 어린이집의 최대 모집 가능 인원은 300명이다. 카카오 측은 법적으로 가능한 최대 규모로 어린이집을 확장한 것이다. 본사가 있는 경기도 판교 H스퀘어의 한 층을 모두 어린이집 공간으로 임대했다. 정원을 합쳐 연면적 2800㎡(약 850평)로, 국내 어린이집 가운데 최대 규모다. 대부분 직원들의 연령대가 30대 초반인 점을 감안해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시설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카카오는 직원 평균연령이 33.5세로 매우 젊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직원들의 비율도 높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 수요도 많았다. 카카오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직원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었다”며 “앞서 운영한 어린이집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1년간의 준비 끝에 규모를 확장했다”고 밝혔다. 정원을 늘리면서 맞벌이가 아닌 직원도 아이를 직장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게 됐다. 커리큘럼도 여느 어린이집 부럽지 않다. 카카오는 5~7세 반의 경우 원어민 교사를 상주시켜 하루 4시간씩 영어 교육을 하고 자체적으로 자연탐색 활동 및 식생활 개선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아이들은 430㎡(약 130평) 이상의 대형 실내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있다.카카오는 2014년부터 제주에도 정원이 180명인 ‘스페이스닷키즈’라는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직원의 출퇴근 시간에 맞줘 평일 오전 8시~오후 9시까지 자녀를 맡길 수 있다. 직원들의 호응은 높다. 한 직원은 “맞벌이가 아니어서 순위가 밀리다 보니 동네 어린이집 입소는 꿈도 못 꿨다”며 “아이가 가까운 곳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 업무 효율성이 높다”고 말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키즈노트 앱을 통해 어린이집과 부모 간 효율적 소통을 지원한다”며 “직원 자녀에게 질 높은 교육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일하는 부모가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업무 효율성 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경쟁업체 직원도 부러워하는 어린이집
▎엔씨소프트 사내 어린이집 ‘웃는땅콩’ |
|
엔씨소프트 역시 판교 일대 개발자들이 부러워하는 어린이집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8년 서울 삼성동 R&D센터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엔씨소프트는 2013년 판교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규모를 6배 이상 확장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임직원의 평균 연령이 30대 중반으로, 여성 비율도 30%에 달한다”며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모가 많은 환경에서 회사가 보육 지원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 사내 어린이집 ‘웃는땅콩’은 사옥 1층과 2층, 외부 놀이터를 포함하여 1652㎡(약 500평)에 이르는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최대 200명의 임직원 자녀(영유아)가 생활할 수 있는 규모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기본 교육 과정 외에 영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를 경험할 있는 커리큘럼을 직접 기획·개발·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이 회사의 어린이집은 최근 국제표준화기구의 국제 인증 2종을 동시에 획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웃는 땅콩이 받은 국제 인증은 ISO29990(비정규 교육 서비스 분야의 학습 서비스 경영시스템)과 ISO29991(외국어 학습 서비스)이다. 두 가지 국제 표준 인증은 비정규 교육 서비스의 운영과 품질을 평가하는 글로벌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 영유아 교육기관 중 두 가지 인증을 동시에 받은 것은 엔씨소프트 어린이집이 처음이다.판교의 한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정수진(가명)씨는 “IT업계에서도 엔씨소프트는 어린이집 운영을 넘어 수준 높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다른 복지제도에 앞서 사내 어린이집이 좋은 회사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원어민 강사에 유기농 식단 제공
▎CJ 어린이집 ‘CJ키즈빌’의 쿠킹클래스 시간 |
|
여직원 비율이 높고, 주부를 주고객으로 하는 식품업계도 사내 어린이집 운영에 관심을 기울인다. CJ그룹은 2011년부터 직장 어린이집인 CJ키즈빌을 운영하고 있다. CJ키즈빌은 현재 서울 쌍림동 CJ제일제당센터를 비롯해 총 3곳에 자리한다. CJ키즈빌은 996㎡(약 300평) 규모로. 보육실과 놀이실, 식당 등을 갖췄다. 23명의 교사가 97명의 영유아 보육을 담당한다. 대상은 만 0세부터 만 5세까지로, 오전 7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자녀를 맡길 수 있다.하루 4번 제공하는 식사와 간식은 CJ프레시웨이에서 준비한 식단과 레시피를 토대로 친환경 농산물로 구성한다. 특히 알러지 반응이 있는 원아를 파악해 대체 식단을 준비하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CJ키즈빌은 연령별 특징에 맞춰 각기 다른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CJ키즈빌 관계자는 “기본적인 보육 프로그램 외에도 캠프 등 다양한 체험 학습과 쿠킹클래스 같은 특성화 프로그램, 음악·체육 특별활동을 실시해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다”며 “직원들이 사내 어린이집을 두고 양육의 동반자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풀무원은 2014년부터 서울 수서동 본사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집은 수서 본사에 근무하는 풀무원과 풀무원식품·푸드머스·풀무원건강생활 등 4개사와 인근 지역에 본사가 있는 이씨엠디·올가홀푸드 등 6개 계열사 직원의 만 1~5세 자녀 70명을 돌본다. 연령별로 반을 나눠 운영하는데 특히 만 4~5세 유아반은 아동 10명당 교사 1명(법정 비율 20:1)이 배정돼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춰 보육의 질을 높였다.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 오전 7시 30분~오후 7시 30분까지 아이들을 돌봐준다. 이와 별개로 자녀와 함께 출퇴근할 수 있도록 필요에 따라 탄력근무제(오전 8시~오후 5시, 오전10시~오후 7시)를 시행하고, 입학금도 지원한다.풀무원은 ‘인간과 자연을 함께 사랑하는 로하스 기업’이라는 가치를 어린이집 식단과 연계해 공유하고 있다. 어린이집 식자재 유통 부문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한 푸드머스가 친환경 농산물과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한 ‘바른먹거리 식단’으로 급식과 간식을 제공한다. 또 어린이집에서 ‘바른먹거리 캠페인’ 교육을 실시해 어릴 적부터 바른 입맛과 바른 식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어린이집에 4세 자녀를 맡긴 한 직원은 “사설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들이 일일이 식단을 챙기지 못하니 아이들이 영양불균형이나 편식 등의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은데 사내 어린이집에서는 그런 부분을 세심하게 신경써준다”며 “회사가 직원에게 공유하는 좋은 가치를 내 아이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