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유령상가’로 불리던 가든파이브가 북적이고 있다. 현대시티몰이 입점하면서부터다. 가든파이브 상권 활성화에 대한 기대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인물이 김인호 가든파이브라이프 대표다. 그는 현대백화점과 가든파이브 쇼핑몰을 분양 받은 상인 사이를 오가며 현대시티몰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김인호 대표는 17년간 현대백화점에 근무하다 현대유통연구소 소장으로 퇴직한 현대맨이다. 현대백화점 벤치마킹, 선진 사례 도입을 주도했고 현대백화점 30년사를 집필한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최근엔 성균관대, 연세대에서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국내 유통 변화와 주요 전략 등을 가르치고 있다. / 사진 : S.T.듀퐁 클래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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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이브에 입점한 현대시티몰이 최근 반응이 좋더라.8년 동안 거의 죽어있다시피 했던 가든파이브 상가를 살리는 일이 내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알다시피 가든파이브는 청계천에서 넘어온 이주상가로 시작했다. MB정부 당시 청계천에서 이주를 희망하는 업체는 6600여 곳이었다. 하지만 분양가가 비싸다 보니 이주한 곳은 2000곳 정도다. 결국 나머지는 공실 상태가 됐고 상가가 슬럼화됐다. 개인적으로 나는 쇼핑몰의 분양 비즈니스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6~7평 가진 점주가 제아무리 잘해도 대형 상가를 능가할 수 없다. 그리고 요즘 고객들은 굉장히 앞서간다. 점주들 개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쫓아가긴 힘들다. 지금 리테일은 상권간 싸움이다. 코엑스몰, 하남 스타필드도 마찬가지로 상권 싸움이다. 상권이 죽어 있는데 누가 가든파이브에 들어오겠나. 가든파이브는 지난 8년간 암흑기를 보냈다. 이주해온 2000여 점포도 대출을 받거나 빚을 진 상황이었다. 사업은 안되고 운영비, 관리비는 부담해야 하니 힘든 시기였다. 여기에 언젠가 임대료를 잘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고문’, 3중고를 겪었다. 오죽하면 박원순 시장도 가든파이브에 와보고는 귀곡산장이라고 하셨겠나. 분양 쇼핑몰은 생성돼선 안 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현대시티몰 유치로 가든파이브 북적김 대표는 가든파이브 재생을 위해 온 건가.그렇다. 난 2005년 서울 불광동 팜스퀘어에 NC백화점을 입점시켜 활성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가든파이브의 경우엔 서울시와 SH공사가 힘을 합해 가든파이브 활성화를 위한 TF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내가 참여하게 됐고 2013년 가든파이브라이프 대표까지 맡게 됐다.
재생을 위해서 한 일은.대형업체를 입점시켜 상권 가치를 높이고 다음으로 기존 상가들의 자산 가치를 높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1년 정도를 양쪽을 오가며 설득했다. 점주들에겐 ”대형점포를 입점시키고 유리한 임대료를 받을 테니 권한을 위임해달라“고 이야기했고 대형 점포에 가서는 상권의 가능성을 어필했다.
대형 점포는 현대백화점을 말하시는 건가? 현대 측에선 무엇을 중시하던가.현대백화점 입장에선 분양쇼핑몰과 비즈니스를 했던 경험이 없으니 처음에 주저하더라. 그래서 ‘위례’라는 탄탄한 신도시에 7만 명이 있고, KTX가 생기는 수서지구, 개발이 한창인 내곡과 세곡, 문정법조타운 등 서울에서 가장 활기찬 상권이 기다리고 있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2013년 12월15일 현대백화점과 MOU를 체결했다. 당시 백화점 쪽에선 소위 알박기와 같이 매장MD 구성에 있어 난항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대형업체와 소상공인과의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난항요소들을 체크하고 협의했다. 가든파이브와 같은 집합상가는 집합건물에 관한 법률상 상가 소유자 80% 이상의 동의를 받아 규약을 만들어 일괄임대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현대백화점 측에 임대한 11개 층은 대부분의 위임을 받아 진행했다. 상가투자수익률은 5.5%가 넘는다. 이 정도면 괜찮은 수익률인데도 아직 거부의사를 밝힌 상가도 일부 있다. 이들과는 계속해서 협상하고 대화하고 있다.
백화점과 아울렛 중 어느 형태의 점포를 입점시킬지도 서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 현대 측은 도심형 아울렛을 하고 싶어했다. 난 아울렛이 지금 시대와는 맞지만 이 상권과 어울리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울렛이 백화점의 대체 업태로 떠오른 이유는 바로 패션 때문이다. 반면 요즘 백화점은 식음료와 리빙이 뜨고 있다. 그래서 난 아울렛과 백화점 또는 아울렛과 몰 형태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대기업-중소상인 상생모델 만들 것두 유통을 섞은 이유는.3가지를 고려해서다. NC백화점, 문정동 로데오아울렛, 그리고 가든파이브 주변 주민들이다. 우선 가든파이브에 이미 입점해 있는 NC백화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더라. NC백화점도 잘돼야 하니 원로스게임 말고 윈윈게임을 해야 했다. NC백화점은 저가 중심의 판매전략을 펴고 있으니 보완업태가 들어오면 상권을 확장할 수 있는 형태를 생각했다. 문정동 로데오 거리는 아울렛 중심의 소상공인들이 많다. 때문에 가든파이브는 아울렛보단 몰 개념을 확장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가든파이브 주변 주민들은 서울 동남권 끝인데 강남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 주변 아울렛에는 화장품이 안 들어오니 브랜드 화장품 하나를 구매하려고 해도 잠실까지 가야 한다.
그렇게 탄생한 현대시티몰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실제 화장품 매장 직원들이 제게 “필요한 걸 입점시켜줘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리테일러에겐 가장 감동적인 말 아닐까. 주변 6~7㎞엔 서점이 없다는 점도 고려해 교보문고를 입점시켰다. 또 요즘엔 가족단위 쇼핑객들이 많으니 “시티몰을 위례의 식탁으로 만들자”고 제안해 식품관을 꾸몄다. 덕분에 저녁 매출이 적은 일반적인 백화점과 달리 저녁 매출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다. 리빙에 관심이 높은 만큼 리빙관도 강화할 예정이다. 뉴욕에서 가장 핫한 윌리엄 소노마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윌리엄 소노마는 미국 최대 홈퍼니싱 기업이다. 주방, 생활용품 중심의 윌리엄 소노마를 비롯해 포트리반, 포트리반 키즈, 웨스트 엘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가든파이브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가든파이브는 대한민국 최초로 2개의 백화점이 입점한 쇼핑몰이 됐다. 강력한 두 대형상가의 집객요소를 다른 점포들이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 창출로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우선 가든파이브 소상인 협동조합을 만들어 중기청에 등록하고 최초의 대기업-중소상인 상생모델을 만들 생각이다. 소상공인들이 리테일러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애초에 가든파이브의 시초가 된 청계천은 부문별로 도매시장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수족관, 전기조명, 완구 등 도매기능을 소매기능으로 특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강화할 생각이다. 가든파이브를 도소매 상점이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다.
유통업계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일본에 가서 두 개의 거대한 유통기업을 연구했던 일이 생각난다. 다이에 그룹과 이토요카도 그룹이다. 다이에 그룹은 확장 일변도, 성장일변도의 정책으로 한때 일본 최대의 유통기업으로 꼽혔다. 반면 이토요카도의 경영은 효율성이 중심이었다. 둘 다 마트를 경영했는데 마트라는 것이 점포를 늘리려면 박리다매가 가능해야 한다. 점포수를 늘려 구매파워를 증대하고 이를 통해 코스트를 낮춘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토시는 점포 수보단 점포관리에 집중했다. 지금 다이에는 사라졌고, 이토요카도는 세븐일레븐을 중심으로 잘 되고 있다. 이토요 회장이 직원들에 강조한 것이 “Think Global Act Local”이다. 글로벌하게 생각하되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세 개의 눈이 있다. 곤충의 눈. 이것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눈이다. 일반 직원들의 눈이라 보면 된다. 새의 눈도 있다. 특정 지역의 조감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의 뷰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류의 눈이다. 물고기는 눈으로 조류의 흐름을 느낀다. 경영자는 물고기의 눈을 가져야 한다.’
셔츠에 새긴 문구도 이와 비슷하다.순자의 말인데 크게 생각하되 디테일에 신경 쓰자는 말이다. 처음 인터뷰 제의를 받고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난 리테일 프로듀서다. 내가 중시하는 자세가 두 가지다. 하나는 반보선행(半步先行). 소비자보다 한 보 앞서가면 망하고 같이 가려면 저렴한 제품밖에 못 판다. 리테일러가 지속 성장하려면 반보 선행하면서 끊임없이 제안해야 한다. 다음으로 셔츠에 새긴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着手小局)이다.
디테일, 관찰로 보완하라.
▎사진 : S.T.듀퐁 클래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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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에서 디테일은 뭔가.20년도 전에 처음 백화점에 입사했는데 당시 미국엔 이미 과학이 유통매장에 접목돼 있었다. 한 예로 매장의 음악. 음악 속도에 따라 소비자들의 쇼핑동기가 달라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층계를 오르다보면 계단보다 엘리베이터 바가 1m 정도 길다. 안전을 고려한 점도 있지만 대게 왼쪽을 보고 가려는 행동에 장애를 줘 오른편 매장도 한번 볼 수 있도록 장애물을 설치한 거다. 현대적 의미의 빅데이터의 시작은 편의점 포스다. 포스를 제일 처음 도입한 건 세븐일레븐의 이토 회장이다. 하지만 그는 기계가 알려주지 못하는 디테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숫자는 내뱉지만 그 숫자의 의미를 다 알려주진 못한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아닌 사람을 관찰해서 얻을 수 있는 일이 많다. 슈퍼의 동선을 복잡하게 만든 것, 매장 입구 오른편에 신선도를 강조하기 위해 과일을 진열한 것, 무거운 과일을 사고 나면 바로 매장을 나가는 걸 보고 카트를 발명한 것 등 대부분이 관찰을 통해 보완한 전략들이다.
백화점이 어렵다. 최근의 상황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다면.주력상품이 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패션은 2010년 아울렛이 생겨나면서 저항이 시작됐다. 게다가 SPA까지 등장해 백화점 고객들이 중저가 의류시장을 경험했다. 2015년 이후 가성비가 패션의류 시장에서 강하게 어필하는 이유다. 고객이 과거보다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패션보단 기존 리빙이나 잡화, 식음료 부문이 강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고객의 필요는 서점이나 리빙과 같이 힐링요소를 가진 상품들이다.-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