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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에서 다시 배우는 리더십(2) 

선물을 잘 주는 리더는 반드시 성공한다 

이남석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마키아벨리는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할 뿐이다. 올바르게 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니체식으로 표현하면 계산이 빠른 난쟁이 같은 자이다.
영화 엔딩 자막이 흐른다. 많은 관객이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 영화는 잔영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책을 다 읽고 덮는다. 한 동안 눈을 감고서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 책은 향이 진한 커피이다. 연주가 끝난다. 청중들이 자리에 일어나 박수를 치고,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그 음악회는 잔향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메아리다. 여운은 지불한 것, 제공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받거나 얻으면 느껴진다.

여운(餘韻)이 있는 리더가 되는 방법


▎『군주론-시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다』 평사리 펴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여운이 없다고들 한다. 흔히들 그렇게 말한다. 여운은커녕 불쾌한 기분이 든다고들 한다. 조금 생각하고 읽으면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라거나 쓰레기 같은 말의 성찬에 질린다고 한다. 악취가 넘쳐나 인간의 영혼을 더럽힌다는 악평도 나오곤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왜곡되고 폄훼된 마키아벨리를 단적으로 표현한 이 말 때문이다.

맞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뮤지컬, 영화, 책 속의 장발장과 같은 잔잔한 감동의 여운이 없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누구인가? 그는 딜레마에 처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성자 같은 인물이다. 그는 조카의 배고픔 때문에 도둑질한다. 감옥에서 나온 뒤 자베르 경감의 집요한 추적을 받는다. 그는 시장이 되었고, 돈도 엄청 벌었다. 그 덕분에 그는 신분을 세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대신 붙잡힌 가짜 장발장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밝힌다. 그는 빈곤 때문에 창녀가 된 여인의 딸인 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자베르에게 자신이 범죄자 출신 장발장으로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마차에 깔린 노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과거 악독한 범죄자 장발장임을 또 한 번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생명과도 맞바꿀 수 있는 양녀 코제트의 애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언제나 항상 올바름을 위해 살아가는 거인 같은 자이다.

장발장은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이 부딪치면, 언제든 자신의 이익을 버린다. 그는 도덕적 양심과 이기적 욕심 사이의 딜레마에 처할 때마다 살신성인하는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그 행동에 감동받고, 한때 죄를 지었어도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장발장처럼 살아야 한다고 되뇐다.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군주는 장발장과 같은 자가 아니다. 그 군주는 생존이 유일한 목적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그에게 값싼 동정은 죽음이나 권력상실을 몰고 오는 화근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니체식으로 표현하면 계산이 빠른 난쟁이 같은 자이다.

달리 생각해보자.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자는 얼마나 될까? 타인을 위해 내 생명과 이익을 버릴 자가 과연 있는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생존이 가장 소중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 인간은 올바름을 고민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장발장과 같은, 양심으로 충만한 거인이 풍기는 진한 여운이 없다. 그러나 흐릿하지만 채 가시지 않은 여운이 있다. 마키아벨리식의 이해타산적인 난쟁이식 여운이다. 영악하고 이기적인 난쟁이들이 몰려 사는 현실 세계에서 이타적이지 않지만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름 아니라 선물이다. 마키아벨리는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올바른 듯이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할 뿐이다. 올바른 듯이 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란, 리더란 올바른 듯이 보이도록 행동하는 자이다. 군주가, 리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를 마음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물을 준다면 어떨까? 선물을 주고받는 순간, 적어도 서로 해코지할 의도가 없음은 분명하다.

정치의 가장 기본 현상 중에 하나는 엽관제이다. 대통령이라면 관직을, 장군이라면 전리품을, 사냥꾼 우두머리라면 포획물의 각종 부위를, 경영자라면 성과를 나눠준다. 나라와 조직과 리더를 위해 기여한 만큼 선물을 나눠주는 것은 주고받음의 가장 기본원리이다. 선물의 주고받음에는 장발장의 인간미 물씬 나는 여운이 없지만 기여한 만큼의 최소한의 공정한 분배라는 원리가 지배한다.

선물이 공정하지 못하면 내분이 온다. 『일리아스』의 배경이 된 트로이전쟁의 그리스 연합군이 내분에 휩싸인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이 부하 장수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반면 선물을 잘 주면 죽을 운명에서 살아나는 수가 생긴다. 『오딧세이아』의 오딧세우스가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리스 신들에게 평소 제물이라는 선물을 잘 바쳤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를 선물로 보았다. 선물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자 인간을 올바르게 보이는 수단이다. 군주는 ‘시민을 위해 좋은 정책’을 선물로 베풀면, 시민은 ‘군주를 위해 정치적 지지’를 선물로 준다. ‘선물의 정치학’이 바로 이것이다.

선물이 공정하지 못하면 내분이 온다

여운(餘韻, aftertaste)의 순 우리말은 뒷맛이다. 강한 뒷맛이 남는 음식도 좋지만, 별 맛이 없더라도 뒷맛이 잔잔하게 남는 음식이 있다. 군주를 따르는 입장에서 내가 준 것 만큼 받거나 더 받을 수 있다면, 그 군주는 좋은 리더이다. 뒷맛이 개운하다. 내가 준 것보다 적게 주거나 아예 주지 않는다면, 그 군주는 나쁜 리더이다. 뒷맛이 찝찝한 음식들이다. 군주가 선물이 아닌 뇌물을 좋아한다면? 제명대로 산 경우도 별로 없고, 권력과 명예를 끝까지 유지한 경우도 극히 드물다. 뒷맛이 아주 고약하다. 그런 군주, 리더는 반드시 실패한다. 역사와 현실이 보여주지 않는가!

인간은 이타적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이고, 양심적이라기보다는 기만적이다. 인간은 고결한 양심을 실천하는 거인 같은 장발장이라기보다는 계산이 빠르고 영악한 니체식 난쟁이다. 난쟁이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상에서 올바르게 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다면 올바른 듯이 보이는 것이 좋다. 내가 받은 만큼, 그것보다 조금 더 보태서 선물로 주는 것은 난쟁이들이 사는 현실 세상에서 최고의 미덕이다.

이남석 -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사상사와 문화정치론을 강의하고 있다. 10여 년 넘게 매주 토요일 플라톤, 니체, 프로이트 등의 주요 저작을 읽는 책 읽기 모임을 진행중이다. 최근 『군주론』을 번역·주해한 『군주론-시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다』를 집필했다.

201708호 (201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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