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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기업의 길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 소장
승계를 통해 대를 이어 가족들이 기업에 참여하는 기업을 가족기업이라고 한다. 가업승계에 성공하는 필수적인 조건은 겅간한 가족관계다.

기업 승계를 둘러싼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그린 드라마가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드라마가 실화에 기반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이전에도 유사한 드라마는 많이 있었다. 이런 드라마의 결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회사를 차지하려는 가족 간 암투로 가족관계는 파괴되고 결국 기업도 잃게 된다는 것. 극단적인 스토리 같지만 실제 드라마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적지 않게 일어난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기업도 가족 분쟁의 불씨가 잠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녀들이 싸우지 않고 협력해서 기업을 잘 이끌어 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족 관계를 감안하여 구체적인 승계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경영자는 많지 않다. 설령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경영자 혼자만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승계를 둘러싸고 가족분쟁이 잦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 세대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 놓았어도 그것을 실행할 가족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성공하기가 힘들다.

승계를 통해 대를 이어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는 기업을 가족기업이라고 한다. 가업 승계에 성공하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튼튼한 기업을 구축하는 것. 그래서 필자는 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자들에게 ‘명문장수기업이 되려면 먼저 명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들이 참여하여 함께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 하지만 경영자들은 자녀들과 함께 승계와 관련된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족관계가 잘못되면 기업에도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업승계 컨설팅을 할 때 필자가 가장 먼저 수행하는 일은 기업에서 함께 일하는 가족들을 개별 인터뷰하고 가족 설문을 통해 가족의 관계지수(RQ)를 점검하는 것이다. 지능지수(IQ)나 감성지수(EQ)는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데 비해, 관계지수(RQ)는 공유나 협력 등 집단의 관계 능력을 측정한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을 모아 놓아도 그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개개인의 능력이 탁월하더라도 가족 간 경쟁심이나 불신 등으로 관계지수(RQ)가 낮으면 가족으로서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기업에 해가 된다.

가족의 관계지수(RQ)는 두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가족의 관계스킬(Relationship Skill)이다. 이는 가족들이 서로 오해 없이 말하고 듣는 능력과 가족 간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등 가족들이 얼마나 소통을 잘하고 있는가를 측정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족의 관계패러다임(Relationship Paradigm)이다. 이는 가족 간 신뢰나 상호존중, 행복감 등 가족 각자가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평가한 결과는 네 가지로 구분된다.(뒷장 그림 참조)

관계지수(RQ)의 레벨1은 관계스킬(RS)이 낮고 관계패러다임(RP)이 부정적인 가족이다. 이 레벨의 특징은 가족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회사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꺼린다. 명절 등 가족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강제적 또는 의무로 생각하며 가족의 전통과 유산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가족들이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관계회복의 가능성이 있지만 그러한 욕구마저 낮다면 가족이 계속 함께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이 상태로 승계가 진행되면 가족 간 분쟁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레벨2는 관계스킬(RS)은 높지만 관계패러다임(RP)이 낮은 경우다. 이 레벨의 가족은 서로 소통은 잘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가족 간 신뢰나 상호존중은 낮다. 이 경우 높은 관계스킬(RS)로 인해 현재는 가족들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낮은 관계패러다임은 지금보다 더 큰 성공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가족들은 가족 간 신뢰와 결속을 증진시킬 시스템을 구축하여 관계패러다임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관계스킬까지 낮아져 레벨1으로 떨어질 수 있다.

레벨3은 관계스킬(RS)은 낮지만 관계패러다임(RP)이 높은 경우다. 이 레벨의 가족들은 서로 신뢰와 결속이 강하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취약해 문제 발생 시 가족 간에 갈등을 겪는다. 이로 인해 관계패러다임(RP)마저 부정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레벨에 있는 가족들은 부족한 관계스킬(RS)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레벨4는 관계스킬(RS)이 높고 관계패러다임(RQ)도 긍정적인 경우다. 이 레벨의 가족들은 의무나 강제성 없이도 가족이 부담 없이 쉽게 가족 중심의 일과 책임을 공유한다. 또한 가족들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비가족 임직원에게도 신뢰와 존중을 기울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족의 전통과 유산을 지키며 후대에 물려주는 것을 추구한다. 이는 가장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가족관계로 대부분의 세계적인 장수 기업에서 나타나는 가족관계다.

당신이 만약 가족기업 경영자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관계지수는 어디쯤 있는가?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어떻게 가족관계를 바라보고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 실제 가족의 관계지수(RQ)를 검사해 보면 오너 경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관계지수(RQ)가 가족들 보다 더 높은 레벨에 있는 경우가 꽤 많다. 심지어 가족들은 레벨1에 있는데, 경영자는 레벨4에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가족들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소통도 어려운 상태지만 경영자는 가족들이 서로 잘 지내고 소통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이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경영자가 가족과 기업 양쪽에서 모든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는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경영자는 가족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만나보면 경영방식 등 회사일과 관련된 불만이 있고 가족 간 경쟁의식으로 서로 신뢰하지 않고 소통도 잘 안 되고 있다. 경영자가 은퇴를 하거나 사망한 후 가족 간 분쟁이 있는 가족들은 대부분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가족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먼저 관계스킬(RS)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가족 간 상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 성격과 가치관이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와 다른(Different) 것은 틀린(Wrong) 것으로 받아들인다. 서로 다름을 틀린 것으로 인식한다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차이에 대해서 배우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법, 서로 오해 없이 듣고 말하는 법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있으면 가족관계를 해치는 것이 두려워 문제를 회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유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족이 함께 MBTI(성격유형을 검사하는 도구) 검사를 하고 공유한다면 자신 및 가족에 대한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된다. 또한 가족들이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커뮤니케이션 스킬 및 공감능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단, 이와 같은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세미나나 가족 워크숍 등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관계패러다임(RQ), 즉 가족 간 신뢰나 상호존중 등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다 긍정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으로는 첫째, 가족이 함께 가훈이나 핵심가치를 수립하고 명문화하는 등 가족들이 대를 이어 지켜갈 가족의 정신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기간 부를 유지한 최부자 가문이 400년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육훈(六訓)이라는 가훈을 오랫동안 지켜온 것에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가족들이 대를 이어 함께 지켜갈 가훈이나 가족의 행동규범 등의 지침을 마련하고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몸소 실천하며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가족 간 신뢰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 가족의 미래 꿈과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가족과 기업의 미래 비전을 공유한다면 가족들이 기업을 사적인 재산보다는 가족 공동의 재산으로 인식해 가족 간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가족모임이나 회의 등을 정례화하는 것이다.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들이 함께 가족과 기업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고 서로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가족들이 함께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넷째, 가족헌장을 제정하는 것이다. 만일 가족 간 이견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가족기업으로서의 영속성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가족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자발적으로 결의한 가족의 공식 협약서다. 여기에는 창업자의 철학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배 구조, 그리고 미래에 가족들이 맞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이드 라인과 절차가 포함된다.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기업에는 사규가 있듯이 가족헌장은 가족과 기업을 보호하고 가족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이상과 같이 소개한 가족의 관계지수(RQ)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들은 세계적인 장수 가족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 해외에서 100년 이상 장수하는 가족기업들은 하나같이 건강한 가족관계를 맺고 있다. 건강한 가족이란 서로 배려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개인적인 관심사보다는 가족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다. 또한 가족 공동의 관심이나 문제를 함께 토론하며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 건강한 가족관계는 결코 운이 좋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장수 기업들이 가족관계에 열정과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 소장

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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