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자비롭되 나약하지 않는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목민심서는 군자에게 "즐겁게 살되 흐트러지지 않는다. 자비스럽되 나약하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사원들과, 친구들과 술자리에 갔을 때에도 골프장에 갔을 때에도 이 말을 늘 기억하고 싶다.

리더십? 리더가 지켜야 할 덕목? 리더라는 역할이나 지위가 과연 있을까? "나를 따르라. 너희가 원하는 것을 구할 것이다." 이렇게 주창하는 사람이 리더인가 혹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의 희생을 정당화시키는 위선자일 뿐인가? 고대의 한 전쟁에서 열두 번의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적군의 성을 허물기 위하여 대장은 군사들에게 "너희가 저 성을 허물면 이틀 동안 저 성 안을 마음대로 약탈하여도 좋다"는 약속을 하고, 실제로 그 성은 허물어졌다. 성 안에 있던 무수한 사람의 처참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과연, 그것이 승리인가?

우리 조상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감정으로 희(喜)·로(怒)·애(哀)·락(樂)을 꼽았다. 기쁠 희(喜)는 "내가 이루고자 하였던 것을 많은 노력을 통해 결국 이루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성취의 기쁨이다. 남들보다 먼저 과장으로 승진한 김 대리. 축구에서 발리슛을 밤마다 연습하고 실제 시합에서 드디어 터트린 발리슛 동점 골. 혼자 기쁨을 누리는 희(喜)는 거의 모두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섰을 때의 감정이다. 그 김 대리의 동료들, 대학에서 떨어진 친구들, 상대 축구팀의 수비수와 골키퍼. 이에 비하여 즐거울 락(樂)은 "지금 이 순간이 좋으면 그만이다. 아이들이 풀숲에서 뛰며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그렇다. 그들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지금이 좋으면 좋은 것이다. 성취라는 생각이 없다. 그냥 좋은 것이다". 성취의 기쁨이 혼자만의 감정이라면 즐거움은 서로 나누어서 생기는 감정이다. 혼자 즐거울 수는 없다. 사람이 매일 그렇게 즐겁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정도의 차이지만, 마음만 비우면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산에서도 그렇다. 좀 어려운 산에 갈 때에 가장 힘이 약하고 잘 못 걷는 사람을 앞세워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과 같이 모두가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가장 경험이 많은 선배는 맨 뒤에서 온다. 모두를 눈앞에 두기 위함이다. 사람들을 끌고 가는 산행이 아니라 밀어주며 가는 산행이다. 즐거운 산행이다. 때때로 리더의 직책을 맡은 사람이 저 혼자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르는 경우가 있다. "나를 따르라!"식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재촉하면서 "너희도 나처럼 해보아라"이다. 그가 과연 리더일까 혹은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주창자일까. 즐겁지 않은 산행이다.


목민심서는 군자에게 "즐겁게 살되 흐트러지지 않는다. 자비롭되 나약하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사원들과, 친구들과 술자리에 갔을 때에도 골프장에 갔을 때에도 이 말을 늘 기억하고 싶다. 즐겁게 살되 흐트러지지 않는다. 회사 임원들을 대할 때, 자식의 요청을 들어야 할 때, 자비롭되 나약하지 않겠다.

-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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