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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환경 서밋 개최한 러쉬(LUSH) 

 

런던=유부혁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세상 고민을 모두 짊어진 것 같은 기업이 있다. 러쉬(LUSH). 환경보호와 인권 등 기업이 나서서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주제들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그 고민을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장을 열었다. 러쉬 서밋(LUSH SUMMIT)이다.

▎러쉬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황폐화된 플랜테이션에 랜드 아트 작가와 함께 팜 나무를 베어 ‘SOS(Save Our Souls)’를 각인한 모습.
러쉬 서밋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대개 기업의 서밋 주제는 판매나 마케팅 전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거나 거시적 변화를 모색하는 자리로 꾸며진다. 하지만 러쉬 서밋은 인권, 동물의 권리, 환경을 생각하는 자리다. 왜일까?

러쉬 서밋은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직원 2000여 명이 참석한다. 한국에서도 29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기자를 비롯한 미디어 참석인원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러쉬에게 중요한 건 기업이 생각하는 가치를 알리는 것 이상으로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리도 심각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업이 있을까?

서밋이 열린 곳은 런던 탬스강 변에 위치한 Old Billingsgate. 이틀 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 직원들과 미디어로 붐볐다. 3개 층으로 구성된 공간은 동물보호, 보존, 인권, 환경 등 12개 세션과 각종 캠페인 공간으로 나누어 토론하고 발표하는 장으로 꾸몄다. 공간 어디에서도 ‘러쉬를 뽐내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만 묵직한 메시지들로 가득해 참석한 공간이 작은 유엔(UN)처럼 느껴졌다.

서밋 내용을 종합해보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러쉬는 지속가능한 원재료를 공급받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러쉬는 윤리적인 구매에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원료를 생산하는 농민이나 단체를 돕는 방식에서 나아가 직접 땅을 구입하고 주변 농장과 파트너십을 맺어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전달 방식은 매우 친절했다. 동물 보호는 동물의 고통을 듣고 볼 수 있도록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난민들이 이용한 보트에 올라타니 실제 상황에서 녹음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이주와 재난 문제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디지털 윤리에 관한 흥미로운 아티클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 밖에 열리는 다양한 세션 역시 러쉬가 꾸몄지만 진행은 NGO 소속 또는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나와 설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8년 1월 1일부터 러쉬가 천연 운모를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했다는 점이다. 광물에서 추출한 ‘운모(MICA)’는 반짝이는 성분으로 자동차 페인트, 잉크, 식용 글리터,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깊숙하고 좁은 동굴 안에서 채굴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아이들이 운모 생산에 동원된다. 게다가 유통 과정엔 마피아가 연관된 경우가 많아 시장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쉬는 2012년부턴 천연운모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이들의 노동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걸 확신할 수 없었다. 2014년부턴 합성운모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러쉬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아이들과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서다.

환경, 인권 위한 팜프리 제품도 선보여


▎런던 탬즈강변에 위치한 Old Billingsgate에서 열린 러쉬 서밋.
러쉬는 지구 표면의 71%를 차지하는 해양에도 관심이 높았다. 바다는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70%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어류 남획으로 1970년 이후 바다의 물고기는 절반으로 줄었고 UN은 2048년이 되면 상업 거래가 가능한 물고기는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바다의 온도도 상승하고 있고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오염도 매우 심각하다. 2050년이면 바다의 물고기보다 해양에 버려진 플라스틱 무게가 더 무거울 거란 전망이다. 매년 8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지기 때문이다. 러쉬는 서밋 참석자들에게 일회용 대신 개인용 텀블러를 권장했다. 또 신제품 대부분을 포장이 없는 네이키드 제품으로 만들어 환경 보호에 참여하고 있다.

러쉬가 이번 서밋에 가장 공들인 캠페인은 ‘SOS 수마트라’다. 비영리단체인 SOS(Sumatran Orangutan Society)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열대우림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오랑우탄 서식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인도네시아는 주요 팜 오일 생산지다. 경제적으로 팜 오일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지인들은 팜 오일의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열대우림에 불을 질렀다. 팜 나무를 심기 위해서다. 이런 방식의 플랜테이션 농업(대규모 단일 경작)으로 우림에 살던 오랑우탄과 코끼리, 호랑이는 서식지를 잃고 있다. 러쉬는 제조 공정에서 팜 오일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팜 오일 : 열대 지역에서만 자라는 팜 나무에서 채취하는 오일. 팜 원유는 주로 식품 업계에서 쓰이며 비누 제조에도 필요하다. 씨앗에서 얻는 팜 커널 오일은 화학제품을 만들 때 사용된다. 팜 나무는 콩이나 유채씨, 해바라기보다 10배 이상 많은 오일을 생산한다. 바이오 연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원재료다.

러쉬는 이번 서밋에서 팜 오일 재배가 생태계뿐 아니라 경제,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했다. 우선 수마트라를 방문해 열대우림 지역을 떠돌며 생활하는 유목민족 ‘오랑 림바’를 만나 일정 기간 생활했다. 팜 농장은 빈곤 극복을 위한 이들의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러쉬는 땅을 구매하고 재생농업을 정착시키고 있다. 동시에 팜유를 대체하기 위한 성분을 찾기 위해 연구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러쉬 제품개발총괄 Daniel Campbell, 수마트라 오랑우탄 단체 책임자인 Helen Buckland 등이 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하고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배스밤, 립밤, 배스 오일 등 100% 팜프리 제품도 선보였다. 이번 SOS수마트라 캠페인을 위해 출시한 샴푸바 ‘SOS수마트라’의 판매금은 부가세를 제외하고 전액 기부된다. 러쉬의 에티컬 바잉 총책임자인 사이먼 콘스탄틴(Simon Constantine)은 “지난 10년 넘게 러쉬는 팜 오일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폐기된 팜 나무 플랜테이션을 구입해 지속가능한 열대우림 조성과 생태계 복원에 힘쓰겠다”고 했다.

참석자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직원들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서밋 참석자들은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세션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땅바닥에 앉아 경청하는 이도 많았다. 러쉬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결국 세상 모든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세상 고민을 모두 짊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고 그중 자신들의 역할과 과제를 찾아 공유한 것이다.

과시소비에서 가치소비로 소비 패턴이 변한 요즘, 러쉬는 기업 입장에서 자진해서 가치구매를 시행하고 있다. 굳이 나서서 말이다. 러쉬가 위대한 이유다.

[박스기사] 카디 핑크(Cadi Pink) 러쉬 구매담당 - “소비자의 질문이 더 좋은 제품 만들어”


SOS수마트라 캠페인에서 러쉬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선 한정판 제품인 오랑우탄 비누로 기금을 모아 인도네시아 팜 오일 재배지 약 49만5800㎡(15만 평)를 구매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러쉬는 지난해에도 15만 평을 구매했다.) 수마트라에 남은 1만 4600마리 오랑우탄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게다가 원료를 구매할 때 공급자들이 윤리적 공급을 최우선 가치로 삼도록 할 거예요.

팜 나무 재배의 문제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우선 모든 팜 나무 재배가 나쁜 것만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군요. 팜 나무 재배의 대규모 산업화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대규모 팜 플랜테이션은 저임금, 위험한 근무환경, 아동 노동 착취 등 인권침해로 이어집니다. 또 플랜테이션의 화학물질은 땅과 물에 오염을 일으키고 산업 확장 과정에서 뇌물과 비리가 생겨납니다.

지속가능한 팜 오일도 있다.

RSPO(Roundtable on Sustainable Palm Oil)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팜 오일을 생산하고자 인증제를 시행하죠. 하지만 많은 업체가 RSPO에 가입하면서 (오히려) 팜 오일 산업을 장악하게 됐습니다. 2009년 기준 전체 구성원 중 6.7% 정도만이 보존과 사회적 개발을 목적으로 한 단체 출신이고 나머진 모두 기업이에요. 팜 오일의 약 14% 정도만 RSPO 인증을 받았고 이들 제품은 비인증 제품보다 15%가량 더 비쌉니다. 팜 오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중국, 인도의 경우 굳이 더 비싼 팜 오일을 구매하지 않아요.

소비자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겁니다. 제품의 원료는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요. 공급자에게 메일과 트윗도 보내고 편지도 써보세요. 그런 노력이 공급망을 개선시킬 겁니다.

- 런던=유부혁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201804호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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