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연소의 테크분야 억만장자‘세계 최대’라는 말로는 이 업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DJI는 2017년 전 세계 레크리에이션 드론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한 압도적인 주도업체다. 이에 힘입어 중국은 2017년 전 세계 상업 드론 시장의 94%를 차지했다.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드론 10대 중 7대는 DJI 제품이며, 9대는 ‘메이드 인 차이나’다. 드론은 중국이 개발과 생산을 모두 주도하는 최초의 업종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중국의 미래 산업에 대한 자신감까지 실어줬다는 평가다. 이에 자극받은 중국 정부가 드론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드론은 DJI와 중국의 아이템으로 더욱 확고히 입지를 굳히고 있다.왕타오 개인의 재산도 엄청나다. 미국 포브스는 지난해 8월 테크 부문 부자 순위를 발표하면서 왕타오의 재산을 32억 달러로 평가하고 이 부문 세계 76위에 올렸다. 게다가 왕타오는 테크 부문 부자 중에서 10번째로 젊다. 최연소는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메신저 서비스인 스냅챗 공동 창업자인 에반 스피겔(27, 32억 달러, 76위)이 차지했고 같은 기업 공동창업자인 바비 머피(29, 32억 달러, 76위)와 헬스케어 업체인 아웃캄헬스의 공동창업자인 리시 샤(32, 36억 달러 69위)가 뒤를 이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33, 696억 달러, 3위)와 저커버그의 하버드대 기숙사 룸메이트로서 창업을 도왔던 더스틴 모스코비츠(33,133억 달러, 19위), 그의 하버드 클래스메이트로 공동창업자인 에두아르도 세버린(35, 97억 달러, 27위)이 각각 최연소 부문 4, 5, 7위에 올랐다. 에어비앤비를 공동 창업하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네이선 블레차지크(34, 38억 달러, 65위),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체스키(36, 38억 달러, 65위), 최고정보책임자(CIO)인 조 게비아(36, 38억 달러, 65위)가 각각 6, 8, 9위에 올랐다.1~9위가 모두 정보기술(IT) 중심의 서비스 업종에서 나왔으며 국적이 브라질인 세버린을 제외하곤 모두 미국인이다. 당시 37세였던 왕타오는 32억 달러의 재산으로 포브스 테크 부문 세계 76위, 최연소 부문 10위에 올랐다. 그는 제조업 분야, 비IT 분야에선 세계 1위인 셈이다. 테크와이어아시아는 지난해 8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왕타오를 아시아 테크 분야에서 최연소 억만장자라고 발표했다.왕 대표는 1980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났다. 알리바바그룹 창업자인 마윈(馬雲, 54)과 동향이다. 그의 어머니는 교사, 아버지는 엔지니어였다. 왕 대표의 부모는 중국에서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직업을 바꿔 개인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에서 최초로 경제특구로 지정된 개혁개방 정책의 중심지인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으로 이주해 장사를 하다가 중소기업체를 창업해 운영했다.
모형 헬기에 빠졌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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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I 신화 만든 드론 ‘팬텀’연구와 개발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을 얻은 왕타오는 본격적인 창업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로봇연구팀을 이끌고 2005년 홍콩 로봇 경진대회에 참가해 1등을 거머쥐었다. 여기서 받은 상금을 밑천으로 홍콩 옆에 있는 광둥성 선전에서 2006년 DJI를 창업했다. 시작은 작았지만 열정은 넘쳤다.창업한 뒤 왕 대표는 사무실 자신의 책상 옆에 간이침대부터 설치했다. 입구에 ‘머리만 들어갈 것, 감정은 빼고’라고 붙여놓은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드론 개발에 몰두했다. 매주 80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보여줬던 집념과 집요함이 사업을 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즐기던 드론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창업 초기 그는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소형 무인기 제작에 몰두했다. 꿈과 일이 일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왕 대표는 이를 이뤘다. 그는 드론 개발에 주력했다. 하지만 사업은 사업이었다. 개발 작업이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고 고뇌의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열정은 배신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소형 헬기에 카메라를 연결하는 수준이었지만 2008년 마침내 프로펠러 4개가 달린, 제대로 된 드론을 출시할 수 있었다.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집념은 기적을 만들었다. 2008년 그의 드론 사업은 본격적으로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달린 드론인 ‘팬텀(Phantom)’을 출시하면서다. 팬텀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시장을 매료시켰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려서 직접 소형 헬기를 조종하며 소비자로서 수없이 실망해본 기억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 목표로 잡았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은 별도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했던 기존 드론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제품 개발에 적용하려고 애쓴 덕분이었다.게다가 큰 통에 드론을 부분이나 부품별로 분해해 넣어 다니다 필요할 때 일일이 결합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기존 제품과 확실하게 차별화했다. 보관통에서 꺼내면 곧바로 드론을 날릴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일이 터지면 곧바로 드론을 날려야 하는 미디어 분야에선 이상적인 드론 카메라였다.게다가 그의 집요함과 집중은 드론 사업에서 미덕이 됐다. 그는 불과 5~6개월마다 신제품을 출시했다. 기존 업체에서 5~6년이 걸리는 것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DJI는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하고 드론 개발을 선도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창의성이 접목됐다. 디자인은 물론 특허를 등록한 신기술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DJI는 드론 산업의 두뇌가 되어갔다.이러한 왕타오 덕분에 중국산 제품은 ‘싸구려’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이 세계 드론 시장 과점을 바탕으로 세계의 개발실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온다.글로벌 드론 업계 최강자 DJI 덕분에 중국 스스로 세계 최고의 드론 기술 국가가 됐다. DJI의 성공에 고무된 젊은이들은 제각기 창의적인 기술을 들고 드론 업체 창업에 나섰다. 지난 2015년에만 400여 개가 창업했고, 자금도 활발하게 투입됐다. 지금까지 드론 업체들이 조달한 자금은 6억 달러를 넘어섰다.중국의 드론 업체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이 넘친다. 『수호지』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각자 필살기를 보유하고 있다. 베이징 업체 파워비전은 수심 30m까지 잠수해 최대 4시간 동안 수중 촬영을 할 수 있는 방수 레저 드론을 개발했다. 상하이의 이랜뷰는 가로 6㎝, 세로 9㎝ 크기에 무게가 60g에 지나지 않은 드론에 500만 화소 카메라를 장착한 제품을 출시했다. DJI의 성공을 계기로 중국 전체의 드론 시장에 규모의 경제학을 이룬 셈이다.드론 업계에서 기술이 축적되면서 시너지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드론 개발과 디자인, 생산 업체는 물론 부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체까지 연결되는 일관적인 드론 개발과 생산 시스템이 중국에 정착했다. DJI로 대표되는 선발 업체들이 두뇌 역할을 하며 업계를 끌어주고, 조립 등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업체들이 이를 따라가며 뒤에서 밀어주는 형국이다. 이로써 스스로 진화하는 드론 산업의 생태계가 중국에 정착됐다.유수아동이던 왕타오가 드론 산업은 물론 중국의 미래 산업을 이끌 인물로 주목받는 이유다. 그는 여전히 젊다. 앞으로 중국을 넘어 아시아의 혁신을 이끌 미래 세대 경영인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 채인택은…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