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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7) 

헤라클레이토스 『단편(斷編)』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썼다는 유일한 저작인 『자연론(On Nature)』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은 다른 사상가들의 저작 속에서 인용문이라는 파편, 단편으로만 남아 있다.

동서양의 위대한 고인(古人)들은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들의 후배들은 21세기에도 많다.) 왜 그랬을까. 단순한 호기심의 발동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원리를 발견해 권력이나 명예를 쟁취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고전학자, 『자연론』 복원 시도


고인들 중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40년께~480년께)다. 그가 썼다는 유일한 저작인 『자연론(On Nature)』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은 다른 사상가들의 저작 속에서 인용문이라는 파편, 단편으로만 남아 있다. 단편(斷編)은 ‘내용이 연결되지 못하고 조각조각 따로 떨어진 짧은 글’이다.

잉그럼 바이워터(1840~1914) 등 고전학자들이 고대 고전을 일일이 뒤져가며 『자연론』의 복원을 시도했다. 『자연론』이 우주·정치·신학이라는 3부로 구성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연론』자체가 단편이었거나 미완성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고전학자들은 그의 가짜 인용문도 추려내야 했다. 그의 명성을 빙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명해지는 지름길은 선하게 되는 것이다(The shortest way to fame is to become good)”라는 말은 그가 한 말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한 권의 책으로 그를 만나려면 펭귄클래식에서 펴낸 『Heraclitus: Fragments』(2003) 같은 단행본이 있다(그리스어 원문과 영문 번역본에 해설까지 포함됐지만 99페이지 분량이다). 아직 우리말 번역본은 없다. 구글에서 ‘Fragments Heraclitus pdf’를 검색하면 『단편』의 몇 가지 판본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그의 말들은 그리스어 원문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표현된다. “성격이 운명이다. / 인간에게는 성품이 수호신이다.” “Man’s character is his fate. / Character is fate. / Character is our destiny. / One’s bearing shapes one’s fate. / Character of man is his guardian spirit.”

헤라클레이토스를 ‘서양의 노자(老子)’로 부를 만하다. 그의 말들은 뭔가 깊이가 있는 것은 같은데 알쏭달쏭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말들을 했다.

- “자연은 숨기를 좋아한다.(Nature loves to hide.)”

- “감춰진 조화는 알려진 조화보다 낫다.(The hidden harmony is better than the open.)”

- “여러분이 그 어느 방향으로 여행에 나서건 영혼의 경계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You will not find the boundaries of soul by travelling in any direction.)”

- “눈과 귀는 사람들에게 나쁜 증인이다. 사람들의 영혼이 눈과 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이다.(Eyes and ears are bad witnesses to men, if they have souls that understand not their language.)”

“시간은 체커 게임을 하는 어린이다. 왕이 누리는 권력은 어린이가 누리는 권력이다.(Time is a child playing draughts, the kingly power is a child’s.)”

-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같은 길이다.(The way up and the way down is one and the same.)”

- “마른 영혼이 가장 현명하고 훌륭하다.(The dry soul is the wisest and best.)” (헤라클레이토스는 영혼이 물과 불로 구성됐는데, 물보다 불이 많은 영혼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 “원주(圓周)에서 시작과 끝은 같다.(In the circumference of a circle the beginning and the end are the common.)”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유명한 말 남겨


▎헤라클레이토스가 자신의 저서『자연론』을 헌정했다는 아르테미스 신전(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 있던 자리. / 사진:FDV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You cannot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s)”이다. 만물은 변화한다. 그렇다면 만물은 변화 속에서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주려고 시도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의 요지를 압축한다면 이런 내용이다. 세계는 불타고 있다. 세계는 싸우고 있다. 하지만 세계와 우주에는 영원한 질서가 있다. 보편적인 로고스가 사물의 균형을 유지한다. 여기서 로고스는 말씀, 법, 이성, 원리, 설명, 이야기, 해설, 계획, 주장이다.

그는 불이 ‘우주를 조화롭게 만드는 기본적인 물질적 원리’라고 주장한 우주론을 전개했다. 그에게 불은 로고스의 은유적 표현이며, 화폐와도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불과 교환될 수 있으며 불은 만물과 교환될 수 있다. 모든 물품이 금과 교환되고 금이 물품으로 교환되는 것처럼.(All things are exchanged for Fire, and Fire for all things as wares exchanged for gold, and gold for wares.)”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에페수스(오늘날 터키의 소아시아 반도 서쪽 기슭 이즈미르 남쪽)에서 태어난 그는 스승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독학으로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소년일 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결국 “모든 것을 알았다”는 전기 작가의 주장도 있다. 귀족 혹은 왕실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동생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두운 자(The Obscure)’, ‘수수께끼를 내는 자(The Riddler)’, ‘눈물 흘리는 철학자(Weeping Philosopher)’로 알려진 그는 당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예컨대 “피타고라스(기원전 580년께~500년께)는 사기꾼이다”라는 식으로 선대나 동시대 철학자와 유명인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인용과 뜨거운 토론의 대상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로마제국의 중심 철학이었던 스토아학파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토아학파를 대체한 그리스도교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일부 교부들은 그를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도교인(Christians before Christ)’으로 인정했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다.

- “불은 앞으로 나아가며 만물을 심판하고 유죄판결을 내릴 것이다.(Fire in its advance will judge and convict all things.)”

- “인간의 길에는 지혜가 없지만, 신들의 길에는 지혜가 있다.(The way of man has no wisdom, but that of the gods has.)”

- “가장 아름다운 원숭이도 사람에 비하면 못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지혜로운 인간도 신에 비하면 원숭이다.(The wisest man is an ape compared to god, just as the most beautiful ape is ugly compared to man.)”

- “신적인 것의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의 부족한 믿음 때문이다.(Most of what is divine is not known because of men’s want of belief.)”

21세기에 더욱 주목받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그의 영향력은 고대와 중세를 넘어 근대까지 지속됐다. 헤겔(1770~1831)은 “나의 논리에 수용하지 않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는 없다(There is no proposition of Heraclitus which I have not adopted in my logic)”라고까지 말했다.

21세기에 헤라클레이토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21세기가 동서양의 만남이 심화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흐른다. / 만물은 전유(轉游)한다.(Everything flows.)”는 그의 말은 불교의 무상(無常, impermanence)과 상통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을 구성하는 땅·물·불·공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불은 땅의 죽음을 살고 공기는 불의 죽음을 산다. 물은 공기의 죽음을 살고 땅은 물의 죽음을 산다.(Fire lives the death of earth, and air lives the death of fire; water lives the death of air, earth that of water.)” 이 말은 불교의 사대(四大,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땅·물·불·바람의 네 가지 요소)와 관련 지어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땅·불·물이 공통이다. 한 가지 다른 공기나 바람이나 그게 그거 아닐까. 어떤 이들은 양쪽 생각이 ‘비슷비슷하다’, ‘대동소이하다’고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고 반응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음양오행(陰陽五行)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는 특히 ‘대립하는 것들의 단일성(unity of opposites)’을 주장했다. 사실 음양오행론에서는 합(合)만 중시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충돌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적대적 공존’에서 더 나아가 ‘적대적 상생’도 있다. 충돌이 있어야 합이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립이 일치시킨다. 갈라놓는 것들이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낳는다. 만물은 다툼을 통해 일어난다.(Opposition unites. From what draws apart results the most beautiful harmony. All things take place by strife.)”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도움이 되는 것은 상극이다.(It is what opposes that helps.)” ‘oppose’나 ‘opposition’을 충분히 ‘상극’으로 번역할 만하다. 상극(相剋)은 “둘 사이에 마음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항상 충돌함. 두 사물이 서로 맞서거나 해를 끼쳐 어울리지 아니함”이다.

철학자로서 그의 자세, 방법론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말에는 이런 게 있다.

-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볼 수 있는 것들, 들을 수 있는 것들,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The things that can be seen, heard, and learned are what prize the most.)”

- “가장 위대한 것들에 대해 경솔한 추측을 하지 말자.(Let us not make rash conjectures about the greatest things.)”

-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정 많은 것을 접해야 한다.(Men that love wisdom must be acquainted with very many things indeed.)”

- “많이 배우는 게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다.(Much learning does not teach understanding.)”

- “지혜는 하나다. 지혜는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생각을 아는 것이다.(Wisdom is one thing. It is to know the thought by which all things are steered through all things.)”

헤라클레이토스는 골치 아픈 철학이 아니라 인생에 도움이 될 ‘영양가’ 있는 말도 많이 했다.

- “분노와 싸우는 것보다 쾌락과 싸우는 게 더 어렵다.(It is harder to fight against pleasure than against anger.)”

- “바라는 것을 뭐든지 갖는 것은 사람에게 좋지 않다.(It is not good for men to have whatever they want.)”

- “모든 사람은 자신을 알고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있다.(All men have the capacity to come to know themselves and to have self-control.)”

- “불 난 집 불을 끄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프라이드(자부심·자만심)의 불을 끄는 것이다.(Pride needs putting out, even more than a house in fire.)”

- “태양은 매일 새롭다.(The sun is new every day. / The sun is new each day.)”

그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생존을 확보하고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시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와 어울리는 말도 했다.

- “만약 여러분이 예상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찾으려면 어려운 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If you do not expect the unexpected, you will not find it; for it is hard to be sought out and difficult.)”

- “개들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짖는다.(Dogs bark at every one they do not know.)”

※ 김환영은…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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