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에게 인터넷은 놀이터다. 악플러와 사디스트의 공통점은 남의 고통을 나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셀럽들은 악플러의 궤변이 내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내 것’과 ‘그들의 것’ 사이에 명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봄, 호주의 슈퍼모델 미란다 커의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다. “네 남자친구는 인간쓰레기다.” “저열한 놈과 데이트하니 좋으냐?” “돈만 보고 남자를 고른 네가 더 꼴통이다.” 커의 당시 약혼자는 스냅챗 창업자이자 CEO인 에반 스피겔.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다.한동안 악플의 화살은 스피겔을 조준했다. 스냅챗의 전 직원인 앤서니 팜플리아노가 폭로한 2015년 스피겔의 발언 때문이었다. 회의 중 스피겔이 “인도나 스페인 같은 가난한 국가에는 서비스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즉각 부인했다. 입사 3주 만에 해고된 전 직원의 악의적 비방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스냅챗을 사용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성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환경을 비교하는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 확인은 느리고 소문은 빠르다. 성난 인도인들이 쏟아낸 악플은 건조한 봄날 일순간 번지는 들불처럼 불매운동을 넘어 커의 인신공격으로 옮겨갔다.악플이 셀럽의 숙명처럼 느껴질 정도로 온라인 괴롭힘은 일상이 되었다. 일반인도 익명 뒤에 숨은 사이버 폭력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 2017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미국 성인 42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1%가 온라인 폭력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고, 다른 사람이 입는 피해를 목격한 사람은 무려 66%나 됐다.스피겔이 악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패션 잡지 보그의 커버를 장식하고 유명 모델을 아내로 둔 그의 셀럽 이미지가 악플을 부추겼을까? 악플은 조직화된 행동일까? 아니면 시간이 많고 성격이 비뚤어진 사람들의 개인적 행동일까? 악플러의 정체는 무엇이고 피해자는 어떤 심리적 경험을 하는가? 한없이 사소한 일상을 파고들어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하는 악플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이코패스·권모술수·자기애·가학증… 악플러 특성첫째, 자석이 쇠붙이를 당기듯 셀럽은 악플을 당길까? 스피겔은 소위 ‘사기 캐릭터’다. 집안, 학벌, 재력, 외모를 모두 갖춘 황금수저 출신이다. 부자 변호사 부모를 둔 그는 스탠퍼드대학에 다니던 시절 창업했고 25세에 ‘세계에서 가장 어린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을 확보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사람은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는 성공한 타인의 실패를 보고 느끼는 미묘한 기쁨을 의미한다. 망하기를 빈 적은 없지만 그의 불행을 보는 내 기분이 ‘딱히 나쁘지만은 않은, 오히려 살짝 좋은’ 상태다. 정상적인 사람도 악플을 보고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방관자 혹은 동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부정적인 댓글을 달았다고 모두 악플러는 아니다. 진정한 악플러는 가학적이다. 이들에게 매력적인 먹잇감은 자존감이 낮은 약한 대상일까? 아니면 센 상대일까? 심리학자 휘 유(Hui Yu)의 연구에 따르면 악플러에게 더 큰 짜릿함을 선사하는 것은 후자다. 악플러들은 파괴하기 어렵지만 성공했을 때 큰 기쁨을 제공해주는 셀럽을 반긴다.둘째, 악플은 조직화된 행동일까? 2017년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이 한국을 비롯한 28개 나라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SNS를 이용한 여론몰이 활동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악플은 개인적 행동인 동시에 전략가와 행동대장, 개미부대가 존재하는 조직화된 활동이다. 심지어 한 개인의 파멸을 목적으로 개설되는 소셜미디어 계정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미국의 유명 여성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는 지난해 봄 넷플릭스에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인 ‘가죽의상 스페셜’을 공개한 직후 적잖이 놀랐다. 일주일 동안 받은 평점이 5점 만점에 고작 1.35점이었던 것. 평가자의 81%가 1점을 준 거다. 쇼를 위해 11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은 인기 코미디언 슈머가 그런 점수를 기록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그런데 미국의 연예전문매체 스플릿사이더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평점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할 만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Reddit)에 다음 글들이 올라온 것. “넷플릭스 사용자분들, 에이미 슈머의 저질 코미디 프로그램에 1점을 줍시다. 현재 평점이 1.5점인데, 1점으로 내립시다. 다들 뭘 해야 하는지 아시죠?” 대안 우파(알트 라이트, Alt-Right)라고 불리는 극우세력이 페미니스트인 슈머를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공격한 것이다.셋째, 악플러는 대체 누구인가? 악플의 표적이 된 개인이 경험하는 심리적 현상은 무엇인가? 조직적 악플의 고전적 사례는 가수 타블로의 스탠퍼드대학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한 인터넷 카페 ‘타진요’ 사태다. 사법기관이 총동원되어 3년간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고 핵심 회원 9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2010년 모 방송사와 함께 스탠퍼드를 방문한 타블로의 멍한 얼굴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다. “아쉬워서 우는 게 아니에요, 뭔가를 잃어서도 아니고. 그냥 너무 벅차서 우는 거예요. 그냥… 너무 많은 감정이 느껴져서, 이해하지 못해서 우는 거예요.”당시 그가 이해하지 못한 그 무엇의 정체가 최근 연구를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2014년 심리학자 에린 버클스(Erin Buckels)의 연구에 나타난 악플러의 특성은 ‘어둠의 성격 4총사(dark tetrad of personality)’로 요약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 권모술수, 자기애로 구성된 어둠의 성격 3총사에 가학증이 합류했다. 3총사만 해도 감당하기 벅찬데 이제 악플러는 반사회적 성향을 고루 갖췄다.
악플러 궤변은 내 행동 결과물이 아니다버클스는 악플러의 핵심 속성을 가학성으로 정리했다. “악플러와 사디스트의 공통점은 남의 고통을 나의 즐거움으로 여긴다는 거예요. 악플러에게 인터넷은 놀이터죠. 그들은 그저 재미있게 노는 거예요.” 타블로가 홀로 싸웠던, 결국 범죄 행위로 기록된 그 어둠의 정체는 파괴를 통해 가학적 즐거움을 채우는 검은 욕망이다.“내가 얼마나 밉보였으면, 그동안 얼마나 반감을 살 만한 모습으로 살아왔으면 이럴까요.” 타블로의 자조 섞인 한탄에서 볼 수 있듯이 악플 세례를 받으면 자기를 탓하게 된다. 사이코패스가 인터넷에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고 주문을 외워도 큰 효과가 없다. ‘네 탓이오’를 외쳐야 할 때, 오히려 조용히 ‘내 탓이오’를 되새긴다. 왜 그럴까?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가 제안한 소시오미터 이론(sociometer theory)에 따르면 내 자존감은 내 소유물이 아니다. 마치 온도계가 춥고 더운 정도를 감지하는 것처럼 내 자존감 미터기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감지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난 내가 좋아!” 때론 이런 태도가 필요하지만 정작 ‘사회생활’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엔 더 그랬다. 인류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사회생활’을 잘하는 자들, 즉 민감한 소시오미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모진 기후와 맹수, 굶주림이 늘 위협하는 상황에서 왕따는 곧 죽음을 의미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생존 가능성의 지표였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인 존재다.문제는 이 자존감 미터기가 인신공격과 애정 어린 조언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본능적 소시오미터를 조절하는 이성의 힘이 필요하다. 악플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면 이렇게 속삭여야 한다. “자연스러운 거야. 내가 지질해서가 아니야. 사회생활 잘하는 인간이란 증거지. 하지만 이제 구분해야지?” 악플러가 내다 버린 쓰레기를 내가 버린 쓰레기로 혼동하지 않도록, 악플러의 궤변이 내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내 것’과 ‘그들의 것’ 사이에 명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팀 쿡 애플 CEO는 지난해 MIT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쓸데없는 잡음에 기죽지 마세요. 삶에서 하찮은 일에 휘둘리지 마세요. 악플을 귀담아듣지도 말고 악플러가 되지도 마세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다. 악플러를 알고 나를 알아야 쓸데없는 잡음에 휘둘리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