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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폴크스바겐의 불편한 귀환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조득진 기자
사과는 했으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비자 우선주의’를 강조했지만 리콜 등 후속 대책은 지지부진하다. 아우디·폴크스바겐의 귀환에도 시장 분위기가 썰렁한 이유다.

▎마커스 헬만(왼쪽), 르네 코네베아그 아우디폴크스바겐 코리아그룹 총괄사장이 4월 6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변화하는 아우디폴크스바겐 코리아’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내용이 없다는 평가다. / 사진: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사과한다고는 하는데 진심은 안 느껴지고….” “그래서 보상을 제대로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지난 4월 6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진행된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주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들의 반응이다.

배출가스 조작과 인증서류 위조로 2년여 동안 판매정지 처분을 받았던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가 진행한 이날 기자간담회의 주제는 ‘변화’였다. 지난 일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전하고,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르네 코네베아그 한국법인 총괄사장은 “그동안 진지한 반성을 했고 잃어버린 고객 신뢰를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해결해야 할 사안이 남았지만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영상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질의는 날카로웠으나 대답은 두리뭉실했다. 급기야 두 총괄사장은 개인 일정을 이유로 1시간 만에 자리를 떴다. 2년여 만에 연 기자간담회에 300여 명의 기자가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들어야 할 말은 못 듣고 끝났다. 사과는 했는데 무엇을 사과하는지 내용도, 진정성도 보이지 않았다.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는 시장 경쟁력과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 향후 3년간 40종의 신차를 선보이고, 사회공헌 활동에 1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PDI(차량 출고 전 점검)센터에 도착한 차량 중 무작위로 추출해 인증 항목을 검토하는 작업도 추가한다. 회사 관계자는 “추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차량의 준법 절차를 강화해 고객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노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리콜과 재판, 피해 보상 등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지지부진한 리콜 상황. 리콜은 통상 리콜 명령이 내려지면 제작사가 리콜 계획을 제출하고 이를 환경부가 검증·승인한 후에 진행된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은 불성실한 리콜 계획서로 1년이 지난 후에야 리콜을 승인받았다. 2017년 2월 리콜을 시작한 폴크스바겐 티구안은 현재까지 이행률이 58%(2만7000대 중 1만5000대), 2017년 9월 리콜에 들어간 아우디·폴크스바겐 9개 모델은 44%(8만2000대 중 3만5000대)에 그쳤다. 환경부가 제시한 목표치 85%에 턱 없이 모자라는 수치다.

게다가 기자간담회 직전인 4월 3일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의 차량 14개에서 배출 가스량을 조작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마커스 헬만 총괄사장은 “추후에 비슷한 상황이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지금 말하기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국내 소비자에 대한 보상도 미미하다. 지난해 2월부터 100만원어치의 차량 관리 바우처를 지급하는 ‘위케어 캠페인’을 진행한 게 전부다. 폴크스바겐코리아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는 “폴크스바겐은 미국 소비자에게 환불 또는 최대 1200만원가량의 보상금과 보증기간 연장 조치를 했다”며 “17조원의 배상금 지급을 약속한 미국 시장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라고 지적했다.

사과에는 구체적 내용과 진정성 담겨야


▎폴크스바겐코리아는 4월 18일 5종의 핵심 신차 라인업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시장 재진입을 개시했다. 국내 수요가 높은 세단·SUV에 집중했다.
게다가 인증서류 조작, 손해배상 소송 등과 관련한 법적공방도 진행 중이다. 현재 요하네스 타머 전 사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독일로 돌아간 뒤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역시 소송에 불성실하게 임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별다른 태도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판매’는 ‘사과’보다 빨랐다. 지난해 말 아우디가 스포츠카 ‘R8 쿠페’를 출시한 이후 인증 취소로 평택항에 묶여 있던 차량 중 일부를 20%가량 할인된 가격에 팔았다. 폴크스바겐은 올해 2월 신차 파사트 GT를 내놓은 데 이어 4월 18일엔 미국형 파사트, 아테온, 티구안, 티구안 올 스페이스 등 신차를 추가로 선보였다. 아우디의 인기 차종인 A6의 복귀도 임박했다.

2년 만에 판매를 재개하면서 파격적인 할인도 내걸었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파사트 GT 모든 모델에 기본 10% 할인을 제공한다. 기존에 타던 차량이 7년 또는 14만㎞ 이내에 해당하면 중고차 사업부에서 차종에 관계없이 추가로 400만원을 더 주고 구입한다. 100만원짜리 바우처까지 합치면 최상급 모델의 가격은 1000만원가량 떨어진다. 아우디코리아는 신차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업계에선 공격적인 할인 공세 덕에 판매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설탕은 당장 입에는 달지만 몸에는 해롭다.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이 가격 할인으로 다시 승승장구하며 ‘과거를 잊어주세요’ 한다면 국내 수입차 소비자는 여전히 ‘호갱(호구 고객)’으로 남게 된다. 사과는 구체적이어야 하며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후속 대처는 신속하고 정직해야 한다. 이후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소비자의 신뢰 회복 없이 존속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는 것을 한국 수입차 소비자들이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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