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서로 다르면서도 지리적, 문화적으로 비슷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50대 부자는 서로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다를까. 양국의 부자들이 부를 축적한 양상을 알아보기 위해 일본과 한국의 50대 부자 순위를 비교해봤다.
일본에서 부의 씨앗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병철(삼성)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등 1세대 기업인 오너 일가가 50대 부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33명이 저마다의 영역에서 자수성가했다. 부를 승계받은 기업인 중에서도 같은 집안 출신은 모리 아키라(5위) 모리트러스트 회장과 모리 요시코(19위) 모리빌딩 회장뿐이다.지난 4월 발표된 일본 50대 부자 순위(포브스코리아 5월호 128~131페이지, ‘일본의 50대 부자’ 참조)에서 유일하게 2명을 순위에 올린 모리(森) 가문은 일본의 부동산 재벌가다. 모리 다이키치로 전 회장이 설립한 모리빌딩은 도쿄의 호화 상업지구인 아크힐즈, 롯폰기힐즈 등을 개발·운영하는 일본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로 명성이 높다. 모리 전 회장이 1993년 사망한 뒤 형제간 승계 갈등이 벌어지자 1999년 셋째 아들인 아키라가 지분 일부를 들고 독립해 새 회사 모리트러스트를 설립했다. 일찍이 사업에 뜻이 없어 게이오대 교수로 지내던 게이는 1990년 폐렴으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차남 미노루가 모리빌딩의 회장으로 남았지만 2012년 사망하면서 부인인 요시코가 지분을 전부 승계했다.일본의 부자 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친코와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부를 축적한 재벌들이다.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50대 부자는 모두 11명으로 전체의 20%를 넘는다. 특히 수출보다는 내수에 의존하는 파친코 업계에서 50대 부자가 6명이나 나왔다는 것은 일본 내 파친코 시장의 규모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부스지마 히데유키 산쿄 회장(10위), 오카다 가즈오(16위)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회장, 한창우(17위) 마루한 회장, 산요물산을 운영하는 가나자와 형제(28위), 사토미 하지메(46위) 세가사미 회장, 이시하라 마사유키(47위) 헤이와 회장은 모두 파친코 업계의 거물이다.
파친코·게임 분야 재벌 많아
▎모리 다이키치로 모리빌딩 창업주(왼쪽). 한창우(17위) 마루한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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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싱크 탱크인 생산성본부의 『레저백서 2017』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파친코 시장 규모는 21조6260억 엔(약 210조원)으로 120조원 안팎인 전 세계 게임시장 규모의 두 배, 약 70조원인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매출의 세 배에 달한다. 파친코 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엔 시장 규모가 300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파친코 거물들의 시작은 대체로 작은 제조업체나 동네 파친코 점포였다. 전문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제조업에 뛰어들어 파친코용 슬롯머신을 판매하기 시작하고, 이 사업이 1970~1980년대 일본의 파친코 열풍과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재일교포 사업가로 잘 알려진 한창우 마루한 회장도 파친코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영어사전 하나 들고 일본으로 밀항한 한 회장이 매형한테서 건네받은 망한 카지노 점포 하나로 시작해 일본 굴지의 파친코 거물로 거듭난 이야기는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또 다른 사례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오카다 가즈오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기 3년 전인 1942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오카다는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등학교 중퇴 후 도쿄TV기술전문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 이때 배운 기술로 주크박스나 TV 등을 수리하면서 지내던 오카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오카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목격했다. 라스베이거스는 밤새 불빛이 휘황찬란했다. 일본에선 밤이면 불을 끄는 게 보통이었다. 미국의 부를 경험한 뒤 나는 슬롯머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낡은 슬롯머신을 가져와 분해한 뒤 그 구조를 베껴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오카다의 슬롯머신은 일본 전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일본 게임 분야에도 한국 못지않게 부자가 많지만 일본의 게임 부자들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에 치중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게임산업은 비디오게임에 중심을 두고 있다. 후지타 스스무(36위) 사이버에이전트 사장, 다나카 요시카즈(42위) 그리사장, 구마가이 마사토시(49위) GMO인터넷 CEO가 각각 온라인게임 사업 부문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력 사업은 아니다.올해 50대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린 후쿠시마 야스히로(29위) 스퀘어에닉스 회장, 고즈키 가게마사(37위) 코나미 회장, 고에이테크모의 에리카와 부부(48위)는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를 운영한다. 세가사미도 파친코와 비디오게임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다. 일본 게임 회사들도 파친코 업체처럼 1990년대 이후 점차 쇠락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00년대 초 여러 게임 회사가 대거 합병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코나미를 제외하고 이번에 순위에 오른 부자들의 회사는 각각 스퀘어와 에닉스, 고에이와 테크모, 세가와 사미가 합병한 것이다.
뭐든지 파는 소매상점의 나라
▎야나이 다다시(2위) 유니클로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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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50대 부자 순위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오프라인 소매상점의 득세다. 소매업종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 10명이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2위), 니토리 아키오 니토리홀딩스 회장(9위), 미키 마사히로 ABC마트 회장(13위), 이토 마사토시 세븐앤아이홀딩스 회장(14위), 선드러그의 다다 형제(21위), 야스다 다카오 돈키호테 회장(22위), 우노 마사테루 코스모스약품 회장(23위), 야마니시 야스아키 이즈미 회장(33위), 시마무라 노부토시 시마무라컴퍼니 회장(34위), 스기우라 히로카즈스기홀딩스 회장(50위)이 그들이다.전문가들은 일본에서 이처럼 소매상점들이 득세하게 된 원인이 20년에 걸친 장기 불황에 있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로 고가의 물품을 판매하는 백화점들이 몰락하는 한편 접근성이 뛰어나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중소 규모 소매상점에 소비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상장회사 3500여 개 매출을 조사해보니 1990년부터 20년 연속 성장한 기업은 단 3개사로 모두 유통업체였다. 니토리 홀딩스, 돈키호테, 선드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야스다 다카오 회장이 창업한 할인 유통매장 돈키호테는 시대의 흐름에 탁월하게 부응한 기업인의 성공을 보여주는 사례다. 장기 불황이 눈앞에 다가온 1989년 설립된 돈키호테는 이후 28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오히려 매출은 700배, 경상이익은 3600배 늘었다. 29세의 나이에 짧은 직장생활로 벌었던 전 재산 800만 엔을 쏟아부어 임대한 33㎡(10평) 점포를 일본 굴지의 유통 체인으로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야스다의 경영능력에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이 겹친 덕분이었다.일본 부자들이 전부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도 90년대 이후 온라인 벤처를 일으킨 신흥 부자가 적지 않다. 한국 부자들은 주로 온라인게임과 포털 서비스로 돈을 벌었지만 일본의 벤처 부자들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쇼핑몰로 사업을 키웠다.가사하라 겐지(31위) 믹시 CEO, 다나카 요시카즈그리 사장, 후지타 스스무 사이버에이전트 사장은 소셜미디어 벤처로 돈을 번 부자들이다. 한국에선 싸이월드, 미투데이 등 국내 기업이 개발한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비해 인기가 저조했지만 일본에선 일본산 소셜미디어가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낯선 이와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 사회의 특성에 맞춰 초대를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는 폐쇄형 소셜미디어 믹시를 2004년 출시했고, 이 회사는 7년 만에 4000만 회원을 확보하며 일본의 대표 소셜미디어로 자리매김했다.- 이기준 기자 lee.ki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