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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 오만과 겸손 사이 

 

이기준 포브스코리아 기자
오만한 리더는 대부분 스스로의 능력을 맹신한 나머지 자기 자신과 조직을 모두 파멸시킨다. 그러나 소수의 리더는 과도한 자신감을 무기로 삼아 혁신을 일으키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업을 이뤄낸다. 이 두 부류의 리더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오만과 겸손 사이의 좁은 길 위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른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업을 과감히 실행해 성공시키는 기업가의 얘기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창업 일화는 유명하다. 1981년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손 회장은 허름한 창고 안에서 귤 상자를 단상 삼아 직원 두 명에게 “세계 디지털 혁명을 이끌어 30년 뒤 1조원 매출을 올리겠다”고 연설했다. 언뜻 허황되게 들리는 손 회장의 선언에 두 직원은 회사를 떠났다. 그럼에도 손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고, 그 결과 오늘날의 소프트뱅크를 일궈냈다.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고집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신감과 열정은 때로 손 회장처럼 위대한 기업을 일으키는 밑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이는 아주 소수의 사례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경우 과도한 자신감, 즉 오만은 개인과 조직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는 씨앗이 되고 만다.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자가 리더의 오만을 판별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이유다.

오만한 CEO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은 2005년 울리케 맬먼디어 UC버클리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서 나왔다. 바로 신임 CEO의 스톡옵션 행사 시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맬먼디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CEO에게 주어지는 스톡옵션은 처분 가능한 시기가 되면 바로 처분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다. 스톡옵션을 쥐고 있으면 분산투자가 어려워지고 손해를 볼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과도한 CEO는 자신이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자사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믿고 스톡옵션 행사를 가능한 한 미루려고 한다고 맬먼디어 교수는 설명했다. 2005년 처음 고안해낸 이 방법을 오랜 기간에 걸쳐 가다듬은 맬먼디어 교수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톰슨로이터의 데이터베이스 등 주요 기업 1500개를 대상으로 CEO들의 스톡옵션 행사 시기를 조사했다. 스톡옵션을 처분할 수 있는 시기가 됐는데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CEO는 오만한 CEO로 분류했다.

오만이 망친 AOL-타임워너 ‘세기의 합병’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스티브 잡스 애플 설립자(맨 왼쪽),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왼쪽 두 번째)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맬먼디어는 오만한 CEO와 일반적인 CEO의 경영 성과를 비교하기 위해 기업의 인수합병에 주목했다. 오만은 여러 가지 형태로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수합병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인수합병이 실패할 확률은 70%에서 최대 90%에 육박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도 인수합병이 주주들의 수익을 높여주지 못할 확률이 83%라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기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인수합병을 타진하고, 실행하고 있다.

이는 그 많은 주주와 CEO들이 인수합병의 실패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무모한 인수합병에 뛰어드는 CEO 대다수가 ‘비록 남들은 실패하지만 나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맬먼디어 교수는 스톡옵션 행사 시기를 기준으로 오만하다고 분류된 CEO가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CEO에 비해 1.65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며 전혀 다른 분야의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것은 성공 확률이 더욱 희박한데, 오만한 CEO가 이런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비율은 무려 2.54배나 높았다. CEO의 오만과 무모한 인수합병 간의 상관관계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맬먼디어는 무모한 입수합병의 실패 사례로 2000년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을 꼽았다. AOL이 1640억 달러(186조500억원)를 지불하고 합병회사 AOL-타임워너 지분의 55%를 갖기로 한 이 계약은 당시로선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합병 초기 두 기업은 “서로의 사업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라며 호언했지만 합병 이후 주가는 하락했고 AOL의 실적도 2002년 중반까지 30%나 하락했다. 결국 AOL-타임워너는 회사 이름에서 AOL을 빼버린 데 이어 2009년엔 다시 분사하는 수모를 겪었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사상 최악의 합병 사례로 평가될 뿐 아니라 오만으로 기업이 몰락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두 기업의 합병 계획은 원대했다. 1990년대 닷컴붐을 타고 일약 거대 기업에 등극한 AOL의 인터넷 장악력과 타임지, 피플지 등 잡지·영화 부문에 전통이 있는 타임워너의 콘텐트를 합쳐 세계 최고의 미디어 제국을 건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합병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무엇보다 두 회사의 문화 차이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사업 부문별로 자율권을 주는 분산형 경영 구조였던 타임워너와 달리 AOL은 철저한 중앙 통제형 경영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두 기업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거부했다.

게다가 한창 호시절을 구가하던 AOL 경영진은 자신들이 보기에 구세대 미디어 기업이었던 타임워너를 대놓고 무시했다. 합병 직후 밥 피트먼 AOL-타임워너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타임워너에 대해 “그들의 산업 기준으로는 제법 잘해왔지만 우리는 좀 더 성과를 끌어내려고 한다”고 비하하는 발언까지 했다. 타임워너 측에서 “우리는 (AOL의) 홍보 수단이 아니다”라며 강한 반발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결국 피트먼은 합병 2년 만인 2002년 COO에서 내쫓기듯 물러났지만,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그 시점에서도 스티브 케이스 당시 AOL-타임워너 회장은 “소비자들의 습관이 변하고 있다”며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버텼다. 이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02년 7월 ‘오만 뒤에 찾아온 응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합병을 주도한 케이스와 AOL 경영진의 오만을 합병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사례는 AOL-타임워너뿐만이 아니다”라며 “지난 한 달 동안에만 장마리 메시에 비벤디유니버설 회장, 론 좀머 도이체텔레콤 CEO가 과도한 야망을 안고 합병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데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지적했다.

오만과 자신감은 종이 한 장 차이


▎AOL과 타임워너가 합병한 직후인 2000년 1월 24일자 타임지 표지. 스티브 케이스 전 AOL-타임워너 회장과 제리 르빈 당시 타임워너 사장이 표지를 장식했다(왼쪽). 오만한 인수합병 결정으로 AOL의 몰락을 자초했다고 평가받는 케이스. / 사진:스티브 케이스 재단 제공, 타임 제공
물론 모든 인수합병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성공 확률이 낮아 보여도,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더라도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지도자는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과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선구자들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CEO의 아집이 불러온 불필요한 위험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알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오만과 자신감 사이의 경계는 아주 미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가 약간은 과도한 리더의 자신감과 열정이 기업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데이비드 허시레이퍼 UC어바인 교수의 연구진은 지난 2012년 미국금융협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과도한 자신감은 위험이 높은 프로젝트에 투자를 늘려서 주주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허시레이퍼는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인이 선견지명이 뛰어난 혁신가인 동시에 오만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CEO들에게 혁신과 오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설명했다.

UC어바인 연구진이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스톡옵션 행사 시기와 언론 보도 양상 등을 기준으로 오만한 지도자를 추려내 조사한 결과, 오만한 지도자가 그렇지 않은 지도자보다 연구개발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오만한 지도자는 연구개발 비용 대비 더 많은 특허를 받아내는 등 높은 혁신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과도한 자신감이 혁신 성과를 보이는 것은 주로 IT 등 혁신적인 분야에 한정된다. 그런 혁신 분야엔 위험을 동반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며 “오만한 성격은 그런 기회를 잡아내는 데 유리하다”고 밝혔다. 또 이 연구에 따르면 오만한 CEO는 성장 기회를 잡았을 때 이를 최대한 활용해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오만은 CEO가 혁신 전략을 도입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규제, 어두운 전망, 주변의 반대 등 장벽을 돌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의 클라우디아 아레나 교수는 석유·가스, 주류, 음료, 담배, 제지, 생화학 등 환경 및 사회 문제에 민감한 산업 부문의 영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적 구성 데이터와 CEO의 성격을 수집하고 CEO의 오만이 기업 친환경 정책의 혁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연구 결과 CEO의 오만은 환경정책 혁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레나 교수는 “우리의 연구 결과는, 오만한 CEO가 혁신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나 자기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보이며, 이 성향이 혁신을 추구하는 데 필수적인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영국 경영아카데미가 발행하는 영국경영저널에 실렸다.

오만이 일부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해서 CEO에게 오만해지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만은 장점 이상으로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이 단점이 조직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오만을 약간 교정해서 장점만 살리고 단점을 없애는 방향을 연구했다. 오만을 겸손으로 억제할 때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스티브 블랭크 버클리대 교수는 “기업가가 되려면 비대한 자아(large ego)와 비전, 환상을 가져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사실 다 동일한 것”이라며 “오만과 비전, 열정이 결합돼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스타트업의 힘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겸손으로 오만 교정할 때 최고 성과


▎스티브 잡스는 자아도취 성향과 겸손을 동시에 갖춘 혁신적 지도자로 꼽힌다.
오언 브래들리 미국 브리검영대학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CEO 206명, 고위 경영자 518명, 중간 관리자 645명을 대상으로 자아도취 성향이 강하고 오만한 지도자와 겸손한 지도자가 이끄는 조직의 생산성을 서로 비교했다. 오만한 지도자가 이끄는 조직이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직에서 직원들은 인터넷서핑을 하거나 휴식 시간을 길게 가지면서 일을 덜하는 모습을 보였다. 겸손한 지도자가 이끄는 조직은 그보다는 효율적이었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연구 결과 가장 높은 효율성을 이끌어낸 지도자는 오만과 겸손을 모두 지닌 사람이었다.

브래들리 교수는 “자아도취적인 동시에 겸손한 지도자란 말은 모순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면서도 “우리의 연구 결과를 보면 상반돼 보이는 이 두 성격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으며 이 성격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더 긍정적인 결과를 일으킨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오만과 겸손을 모두 갖춘 CEO는 사회화된 카리스마(socialized charisma)를 발휘하며 혁신적인 문화를 촉진하고 실제 혁신을 이뤄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브래들리 교수는 “자아도취적인 지도자도 오만을 겸손으로 교정하면 직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꾸이 응우옌 후이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오만과 겸손은 음과 양 같은 (상보적) 존재”라며 “오만이 더 높은 곳을 노릴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지만 겸손한 행동 없이는 성공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후이 교수는 오만한 사람이 “달성하기 어려운 비전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며 실현하는 데 탁월하다”면서도 그들이 “대안을 무시하고, 난관을 얕잡아 보며 다른 사람을 자기 성공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단점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데 능하다. 즉 오만과 겸손을 함께 지닌 지도자는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대담한 비전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애덤 그랜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자아도취적이면서 겸손한 지도자는 원대한 야망을 가졌으면서도 그 야망을 자신의 권리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랜트는 오만을 교정하기 위해 필요한 겸손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아이디어에 대한 겸손이다. 자기 아이디어의 단점을 인정하고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자세다. 둘째는 성과에 대한 겸손이다. 우리가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문화에 대한 겸손이다. 많은 기업이 자사의 문화에 맞는 사람을 뽑으려 하지만, 그랜트는 이런 경향이 오만의 표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랜트는 “자사의 기업문화가 이미 완벽하니까 이 문화를 존속시킬 사람만 뽑으면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라며 “기업문화에 맞는 사람만 뽑으면 결국 회사에 비슷한 사람만 모이게 되고 다양성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랜트는 또 “자아도취적인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그 사람의 자신감을 꺾으려고 하지 말고 겸손으로 이를 보정해주기만 하면 된다”며 “한 차례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해 큰 성공을 이뤄낸 스티브 잡스가 그런 사례다. 쫓겨나기 전의 잡스는 오만하기만 했지만 복귀한 잡스는 전보다 겸손해져 있었다. ‘나는 위대한 일을 실현할 수 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려면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잡스가 바로 오만과 겸손을 겸비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 이기준 포브스코리아 기자 lee.kijun@joins.com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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