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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여 개 기업과 파트너십“그래핀은 흑연 원자 하나 단위부터 시작합니다. 그래핀 원소 하나의 두께를 1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3~4층 두께의 그래핀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앞서 그래핀이라고 시장에 소개된 GNP는 적층수가 수십에서 수백 층에 달합니다. 제가 가짜 그래핀이라고 비판한 이유입니다.”2015년 스탠다드그래핀이 제품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학계와 기업군에서 반응이 시들했다. 앞서 나온 GNP 제품을 활용화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이 대표는 그래핀 사이클과 하키스틱 같은 샘플을 직접 만들어 보여주며 차이점을 홍보했다. 미국 주요 대학 연구소와 손잡고 연구하며 결과도 꾸준히 발표했다. 이전과 다른 제품이고 활용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인정하는 기업들이 나왔다. 항공업계, 자동차업계, 스포츠 장비 업계 등 전 세계 100여 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각 분야에서 응용제품들을 연구·개발하고 있다.문제는 시간이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그래핀을 활용한 제품의 모든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가볍고 강도가 강하다지만,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특히 보잉 같은 항공사에서 사용할 부품은 검증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 대표도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매출도 없이 몇 년을 버티기는 어렵다. 당장 시장에서 먹힐 제품에도 눈을 돌렸다. 그 첫 번째 주자가 그래핀 정수기다.해외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던 중 홈쇼핑에 시선이 꽂혔다. “카메라가 장독 안을 보여주는데 살균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메주 위에 숯을 놓았습니다. 숯의 주원소는 탄소입니다. 숯보다 몇천 배 섬세한 그래핀으로 살균 하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이튿날 아침 연구원들과 급히 정수기를 만들었다. 그래핀을 깔고 그 위에 모래와 자갈을 올렸다. 그래핀 정수기의 성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바이러스와 세균, 박테리아까지 완벽하게 제거했다. 콜라, 심지어 잉크를 부어도 맑은 물이 나올 정도다. 스탠다드그래핀이 정수기 사업에 뛰어든 배경이다. 그래핀 원료를 생산하는 덕에 정수기 필터 가격이 기존 제품과 거의 같다. 이 제품에 미국 메이저 정수기 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 대표는 조만간 적당한 파트너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중국에 그래핀을 활용한 폐수 처리 장치를 공급하는 계획도 있다. 물 부족 국가인 중국은 정수 관련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다.
그래핀 정수기 출시 준비의약품 포장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알약을 포장할 때, 바닥 부분은 알루미늄 수지를 사용한다. 50μm 두께의 바닥판 두 장을 접착해서 사용하는데, 실험실에서 최소 6주간 찢어지지 않아야 합격이다. 6주 테스트를 통과해야 의약품 유통기한을 1년으로 정할 수 있다. 바닥이 찢어지면 공기와 습기가 스며들어 의약품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래핀을 첨가한 포장재는 30μm로 기존 제품보다 얇지만 강도는 몇 배 강하다. 이미 3개월 테스트도 거뜬히 통과했다. 반신반의하며 실험에 참여한 의약품 포장 전문가들은 스탠다드그래핀과 함께 관련 제품을 만들기 위한 다음 단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우리는 어떤 품목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며 “우리 소재를 활용하는 기업들과 함께 성장하며 그래핀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