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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스탠다드그래핀 대표 

그래핀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 

조용탁 기자
그래핀은 꿈의 소재로 불린다. 머리카락 10000분의 1 굵기, 강철 200배의 강도, 구리보다 100배 높은 전기 전도율을 자랑한다. 한국의 그래핀 제조업체 스탠다드그래핀의 이정훈 대표는 “석기, 청동기, 철기, 석유, 플라스틱의 다음 주인공이 그래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핀 자전거를 가볍게 들고 있는 이정훈 대표.
이정훈 스탠다드그래핀 대표는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의 회사가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리콘밸리 유니콘 컴퍼니들이 거둔 성공도 스탠다드그래핀에 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업 아이템은 꿈의 소재로 꼽히는 탄소 물질 그래핀이다. 머리카락 10000분의 1 굵기, 강철 200배의 강도, 구리보다 100배 높은 전기 전도율을 자랑한다. 기존 소재에 비해 무게를 가볍게 하지만 강도는 더욱 강하게 한다. 동시에 전기 전도율을 높여줄 수 있어 제조 원료로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그는 “신소재의 발견은 시대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며 “석기, 청동기, 철기, 석유, 플라스틱의 다음 주인공이 그래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수많은 기업이 그래핀 연구 개발을 진행했고 시중에 유통된 제품도 여럿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앞서 나온 제품의 수준이 너무 낮아 그래핀이라 부르기도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핀을 만들었다는 업체들은 GNP(Graphene Nano Platelet)를 그래핀이라고 팔아왔다”며 “그건 그래핀이 아닌 가짜 제품”이라고 공격했다.

이 대표는 GNP와 그래핀의 차이를 보여준다며 플라스틱 병 두 개를 들고 왔다. 하나는 병에 검은 가루가 가득 차 있었고 다른 것은 병 밑바닥에 검은 가루가 조금 차 있었다. 신기하게도 가득한 병의 무게가 더 가벼웠다.

세계 100여 개 기업과 파트너십

“그래핀은 흑연 원자 하나 단위부터 시작합니다. 그래핀 원소 하나의 두께를 1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3~4층 두께의 그래핀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앞서 그래핀이라고 시장에 소개된 GNP는 적층수가 수십에서 수백 층에 달합니다. 제가 가짜 그래핀이라고 비판한 이유입니다.”

2015년 스탠다드그래핀이 제품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학계와 기업군에서 반응이 시들했다. 앞서 나온 GNP 제품을 활용화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이 대표는 그래핀 사이클과 하키스틱 같은 샘플을 직접 만들어 보여주며 차이점을 홍보했다. 미국 주요 대학 연구소와 손잡고 연구하며 결과도 꾸준히 발표했다. 이전과 다른 제품이고 활용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인정하는 기업들이 나왔다. 항공업계, 자동차업계, 스포츠 장비 업계 등 전 세계 100여 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각 분야에서 응용제품들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그래핀을 활용한 제품의 모든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가볍고 강도가 강하다지만,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특히 보잉 같은 항공사에서 사용할 부품은 검증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 대표도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매출도 없이 몇 년을 버티기는 어렵다. 당장 시장에서 먹힐 제품에도 눈을 돌렸다. 그 첫 번째 주자가 그래핀 정수기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던 중 홈쇼핑에 시선이 꽂혔다. “카메라가 장독 안을 보여주는데 살균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메주 위에 숯을 놓았습니다. 숯의 주원소는 탄소입니다. 숯보다 몇천 배 섬세한 그래핀으로 살균 하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연구원들과 급히 정수기를 만들었다. 그래핀을 깔고 그 위에 모래와 자갈을 올렸다. 그래핀 정수기의 성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바이러스와 세균, 박테리아까지 완벽하게 제거했다. 콜라, 심지어 잉크를 부어도 맑은 물이 나올 정도다. 스탠다드그래핀이 정수기 사업에 뛰어든 배경이다. 그래핀 원료를 생산하는 덕에 정수기 필터 가격이 기존 제품과 거의 같다. 이 제품에 미국 메이저 정수기 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 대표는 조만간 적당한 파트너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중국에 그래핀을 활용한 폐수 처리 장치를 공급하는 계획도 있다. 물 부족 국가인 중국은 정수 관련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다.

그래핀 정수기 출시 준비

의약품 포장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알약을 포장할 때, 바닥 부분은 알루미늄 수지를 사용한다. 50μm 두께의 바닥판 두 장을 접착해서 사용하는데, 실험실에서 최소 6주간 찢어지지 않아야 합격이다. 6주 테스트를 통과해야 의약품 유통기한을 1년으로 정할 수 있다. 바닥이 찢어지면 공기와 습기가 스며들어 의약품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래핀을 첨가한 포장재는 30μm로 기존 제품보다 얇지만 강도는 몇 배 강하다. 이미 3개월 테스트도 거뜬히 통과했다. 반신반의하며 실험에 참여한 의약품 포장 전문가들은 스탠다드그래핀과 함께 관련 제품을 만들기 위한 다음 단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우리는 어떤 품목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며 “우리 소재를 활용하는 기업들과 함께 성장하며 그래핀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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