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에 열린 홍콩 아트페어의 열기와 더불어, 현재 국제 시장에서 다시 더욱 중요한 작가로 부상하고 있는 제프 쿤스를 짚어보고자 한다. 현대미술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이름이고, 사실 그 작가의 작품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유명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지난 90년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뉴욕의 앤디 워홀 이후의 또 새로운 셀레브리티 작가로 자리 매김했다.
제프 쿤스가 홍콩 아트페어에 왔다. 사실, 예전에는 작가들이 아트페어를 방문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나 느낌이 조금은 낮설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밀레니엄 이후 미술시장이 더욱 글로벌화되면서 아트페어는 또 다른 패러다임을 갖게 되었다. 즉, 단지 페어를 아트를 사기 위해서만 방문하는 곳이 아닌, 세계 최고의 미술계 인사들이 모이는 중요한 미팅 장소이자, 작가들의 신작을 볼 수 있는, 더 나아가 첨단 미술세계에 관한 중요한 담론이 논의되는 장소가 되었다. 이제는, 미술관의 디렉터나 큐레이터가 아트페어에 간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때로는 중요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가야만 하는 시대가 되기도 한 것이다. 혹자는 미술의 심각한 상업화와 화랑들의 기업화에 우려를 표하기도 할 만큼, 미래 어느 시점 이 시대를 뒤돌아보면 2018년 지금은 분명히 아트페어 시대 정점의 순간이다. 또 10년 전 당시 바젤 아트페어의 디렉터인 사무엘 켈러(Samuel Keller)가 매우 야심 차게 홍콩 로칼아트페어를 인수(2008년)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이 도래했다. 이제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은 공공연히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행사가 되었고, 올해는 32개국에서 아주 어렵게 선별되어 온 247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미술계의 큰 축제였다. 작품 가격도 놀랍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국제 중견 작가들의 작품가는 1억원을 훌쩍 넘었고, 빌럼 데 쿠닝의 작품은 오프닝 3시간 만에 370억원에 거래되는 등 그야말로 5일 만에 매출 1조원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약 8만 명이 방문하는 이 행사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아시아에서 열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노 모델들과 함께 나체로 화보 제작하며 이름 알려이런 행사에 미국의 데이비드 져너 갤러리(David Zwner Gallery)는 특별부스로 쿤스의 게이징 볼(Gazing Ball) 작품들과 대형 조각들을 소개했고, 제프 쿤스는 수려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페어에 나타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그와 함께 셀카를 찍었고, 서로서로 ‘쿤스가 홀에 나와 있어요’라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더군다나 야경이 아름다운 홍콩 케리호텔 루프탑에서 국제 미술계 인사들은 쿤스가 초청하는 파티를 기다리는 듯했다. 사실, 다른 유명한 작가들도 홍콩에 많이 와 있었기에, 매일 저녁 그들을 위한 수많은 멋진 파티가 열리고, 그러한 파티에 초대받기 위해 컬렉터가 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최근 아트페어의 열기가 뜨겁다.하지만 쿤스를 2018년 홍콩에서 만난다는 건 좀 더 중요한 맥락이 있다. 그는 1992년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이라는 전시에서 포르노 모델과 같이 직접 나체의 모델로 나오는 대형 화보를 제작했다. 그는 아마도 20세기에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뒤집어 ‘파운틴(우물)’이라고 내놓고 전시한 것만큼이나 센세이션한 몇 안 되는 사건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그의 작품은 탐욕, 돈, 소름 돋음,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과, 심지어 문화의 추악함이 교차되는 다양한 주제의 물체들로 만든 조각을 선보이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셀레브리티와 같은 삶을 살았다. 쿤스의 아트는 마치 문화의 가장 추악하고 나쁜, 또는 낮은 가치를 찬양하는 듯 보였지만, 그것은 예술이 불편한 진실이라 할 수 있는 탐욕, 부, 섹스 등 예술로 다루기 꺼리는 주제들을 솔직하게 다루며 매우 독특한 유머로 우리에게 친숙한 새로운 상징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스는 그의 이름과 명성에 비해 1992년에 시카고 미술관에서 있었던 대규모 개인전 이후, 미국에서 이렇다 할 만한 전시가 없었다.특히 그가 평생 살아온 뉴욕에서도 전시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증명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4년 전에 열린 뉴욕의 휘트니미술관 회고전(June 27~October 19,2014)은 그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전시였다. 즉, 이제서야 그의 고집스러운 35년 작품 세계는 세계 최고의 마스터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휘트니 전시는 국제 미술계에서 그가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는 검증의 전시가 되었고, 프랑스 퐁피두(2015), 빌바오 구겐하임(2015)으로 순회하며, 이제 더욱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고, 중요한 현대미술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의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요소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영감받는 작품 세계그렇다면 과연 그의 작품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주 가벼워 보이는 주제들, 특히 그가 2007년부터 10여 년간 만들고 있는 백화점 토끼, 가제, 수영장 튜브 등의 조각은 어떤 의미인가? 제프 쿤스의 레디메이드(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선정하여 작가가 작품으로 지칭하는 작품)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작품을 시작한 시카고대학에서의 만남들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제프 쿤스의 레디메이드는 뒤샹이 시작한 언어기호학적 레디메이드와 다른, ‘연역적 사고’가 연관된 레디메이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시카고미술대학에서 사사 받은 시카고 이미지스트라는 짐 너트(Jim Nutt), 에드 파스케(Ed Paschke), 로저 브라운(Roger Brown)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짐 너트는 그에게 ‘작업을 한다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다양한 물건을 어떻게 발견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미술 이론의 모순된 생리들에 대한 비평적 사고를 길러주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많은 작품의 영감과 살아 있는 동시대성이 ‘일상생활(everyday life)’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해준 중요한 시간이었다.그는 사실 전혀 미술을 알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았다.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그는 ‘아트’라는 것은, 어떤 물체나 오브제가 아닌, 그 물질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각과 도전에 연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계속해서 자기만의 세계가 가지는 도상학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러한 오리지널 작업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또 다른 그들만의 경험과 사고에 의거한 해석을 통해, ‘그들의’ 작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의 레디메이드 작품들은 작품을 만드는 주체자인 작가보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가 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주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하고 새로운 미술 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이번에 그가 소개한 블루 크리스털 볼 작업은 그러한 면에서 지금까지의 그의 생각을 또 한번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에 홍콩에서 진행된 중요한 비평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영한다(reflect)’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모든 철학책을 읽어봐도,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어떤 시대든, 사고든 문화든, 어떤 것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볼의 표면은 바라보는 사람, 보이는 사람, 그 사람들의 주변 등 모든 것의 의미를 그 자체대로 만들어준다. 또 나는 늘 이 블루 크리스털 볼을 이용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 크리스털 볼은 내가 어릴때 살던 펜슬베이니아의 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즉, 당시 독일 사람들이 많이 그곳으로 이주해 왔는데, 그들이 장식용으로 많이 가져왔었다. 어찌 보면, 이 블루볼은 16세기에 루드비히2세가 처음으로 베니스에서 가져다가 사용한 장식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많이 좋아했고, 보통 잔디밭에 근사한 공공조각으로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본인들도 좋지만, 아주 넓은 농가에 늘어놓은 이 큰 구슬 같은 조각은 오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아주 예쁘고, 도움을 주는 물건이기도 했다.” (서펜타인 디렉터 한스 울리크, 2018년 3월)
“사람들과 함께하고 움직임 가능 한 작품 할 것”이제 그렇게 논쟁의 대상이 었던 쿤스가 국제 미술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을 같은 시대에 목격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리도 키치라고 말하던 어린아이들의 풍선, 튜브 같은 조각들이 당당히 미국과 유럽의 주요 미술관과 컬렉터의 소장품이 되어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생존 작가로 거의 100억대에 이르는 그의 시장가치에 대한 질문과 냉소적 비판은 여전하지만, 그야말로 작가가 믿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도전을 상당히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번에 보여준 신작인 공공 조각에 대해 쿤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기존의 정적인 조각작품들이 아닌, 더욱 사람들과 연계할 수 있고, 움직임이 가능한 공공미술의 성격이 큰 작품들이다.” 앞으로 현대미술 마스터로서 쿤스의 작품들을 더욱 기대해본다.
※ 이지윤은…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박사/미술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 하디드 360도]을 기획하였고,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컬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