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Shin Hong Gyu Collection 

15년 예술 외길 뉴욕의 28세 한국 컬렉터 

박은주 전시 기획자
역사에 남는 훌륭한 갤러리스트이면서 컬렉터인 인물은 프랑스의 이봉 랑베르를 비롯해 앙부르아즈 볼라르, 페기 구겐하임, 레오 카스텔리 등이다. 이들의 전설적인 길을 걷고 있는 뉴욕의 젊은 한국인 갤러리스트이자 컬렉터를 만났다. 올해 28살인 신홍규의 컬렉터 인생은 15년으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자랑한다. 2013년 맨해튼에 신갤러리를 오픈했고, 지금은 세 갤러리를 통합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Hong Gyu Shin. / 사진:Photo by Kim Keun Young
이봉 랑베르(Yvon Lambert, 1936~)는 1966년 파리에 갤러리를 오픈했고 은퇴할 때까지 높은 명성을 유지한 존경받는 갤러리스트였다. 초기에는 칼 안드레(Carl Andre), 로런스 웨이너(Lawrence Weiner)와 같은 미국의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랜드 아트 작가들을 소개했다. 1977년 생라자르역 부근의 마레지역으로 갤러리를 옮기면서 2003년에 뉴욕 첼시에 분점을 운영하다가 그의 나이 75세를 맞아 정리했고 2014년에는 파리의 갤러리도 정리했다. 이유는 아비뇽에 있는 재단 운영에 몰두하기 위해서였다. 갤러리스트로서 그의 탁월한 작가 발굴 능력은 자연스럽게 그의 개인 컬렉션으로 이어졌고 2000년에 프랑스 아비뇽에 Hotel de Caumont와 Hotel de Montfaucon을 그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봉 랑베르는 이곳에 개인 컬렉션 350여 점을 포함해 1200여 점을 전시했다. 2008년에 로마의 메디시스 빌라에 그의 컬렉션 중 중요한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그의 작품 중 300여 점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중요한 발표를 했다. 당시 가치로 6300만 유로의 가치를 지녔었다. 숙고 끝에 최종적으로 아비뇽에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형식으로 운영하는 조건으로 2011년에 이봉 랑베르의 컬렉션 450점이 프랑스 정부에 기증되었다. 이는 1974년 피카소의 기증 이후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기증의 역사를 창조했다.

이봉 랑베르처럼 역사에 남는 훌륭한 갤러리스트이면서 컬렉터는 앙부르아즈 볼라르, 페기 구겐하임, 레오 카스텔리 등이다. 이 전설적인 길을 걷고 있는 뉴욕의 젊은 한국인 갤러리스트이며 컬렉터를 만났다.

“실패해봤자 이 몸 하나뿐인데 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신홍규는 올해 28세지만, 컬렉션 경력만 15년에 달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가 지금 그 자리에 있게 한 듯하다. 맨해튼에 있는 신갤러리(Shin Gallery)는 2013년에 오픈했고 지금은 나란히 붙어 있는 세 갤러리를 하나로 통합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갤러리 위층에 마련한 그의 집에서 만난 신홍규는 그 어떤 컬렉터보다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삶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과자 안에 있는 장난감 모으는 것부터


▎Balthus, ADOLESCENTE AUX CHEVEUX ROUX, 1947 / Oil on canvas 65×81㎝
초등학생 시절 신홍규는 치토스 과자 봉지 안에 들어 있는 ‘따조(캐릭터가 그려진 동그란 모양의 장난감)’를 모으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 따조에 더욱 호기심을 느꼈고 과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300원으로 내일 치토스를 사면 과연 어떤 모습의 따조가 나올까? 가슴 설레며 잠을 이루던 어린 시절, 그의 책상 서랍에는 점차 따조뿐 아니라 카드, 우표 등 수집품이 쌓여갔고 그에게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이처럼 기다리던 것들을 소유했을 때의 만족감은 그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의 연속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15년 동안 변치 않는 그의 열정이다.

활발한 성격의 신홍규는 프라모델 탱크와 군인 등을 사용해 디오라마를 붓으로 일일이 색칠하며 만들었다. 손재주가 남달라 국내 콩쿠르에서 늘 1위를 했고 일본과 한국의 경연대회에 나가서도 수상을 했다. 학교 성적도 뛰어났고 그림도 잘 그렸지만 작가를 꿈꾸기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했다.

특히 농구광이었던 그는 어느 날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농구의 나라 미국에서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그렇게 느닷없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때 그는 고작 16세였다.

막상 미국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미국은 다양한 기회의 나라였다. 농구를 향한 목표보다는 그의 눈을 뜨게 해주는 새로운 분야를 만끽하는 데 더 신이 났고 그중에 그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박물관 관람과 벼룩시장에서 본 골동품들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보내주는 학비와 생활비를 아끼고 모아서 벼룩시장에서 골동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탄자니아에 가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등 자원봉사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의 연수, 청소년 시절부터 열 사람 몫의 다양한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의 삶은 아직도 그에게 로망으로 남아 그는 여전히 메신저에 그 시절의 사진을 올려놓고 시간이 나면 다시 전처럼 봉사활동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3년 만에 대학 졸업, 갤러리스트 길 걸어


▎Marisol Escobar, Portrait of Willem de Kooning, 1980, charcoal and gouache on hand carved / oak and ash, colored resin, 66/6.5×32×48 in. (168.9×81.3×121.9㎝) / 사진:ⓒ The Shin Collection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그의 뛰어난 그림을 본 선생님이 70달러에 사겠다고 해서 2000달러 아니면 절대 팔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한 그는 작품의 프레임을 스스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을 본 선생님은 신홍규의 타고난 손재주에 탄복하면서 예술품 복원학을 진지하게 제안했다. 그는 수능시험 성적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입학할 수 있는 델라웨어대학(The University of Delaware)의 예술품 복원학(Art conservation)에 지원했다. 미국에서 복원학 분야 최상의 대학으로 수많은 박물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델라웨어는 뉴욕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다.

정규 4년의 대학과정을 1년 당겨 3년 만에 마친 그는 복원학, 미술사, 파인아트 과정도 모두 마쳤다. 이미 학부 3학년 때 갤러리스트로서 이 길을 걷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시작은 델라웨이에서 했지만 교수님의 도움으로 콜롬비아대학에서 학업을 마쳤으며 하버드에서는 박물관학을 통해 예술사를 더 심도 있게 수학할 수 있었다.

뉴욕의 신갤러리 위층에 자리한 그의 집에는 백여 점의 컬렉션이 있고 나머지 수백여 점은 전 세계 박물관에 장단기 대여 중이며 일부는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첫 컬렉션은 13세부터 지금까지 구입하고 있는 일본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우타가와 구니요시(Utagawa Kuniyoshi, 1798~1861)의 우키요에(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에서 발달한 풍속화. 모네, 마네, 드가, 르누아르 등 19세기 유럽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작품들이다. 초반에는 국내에서 Yahoo 경매를 통해 구입했고 점차 컬렉션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최고의 작품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40여 갤러리에 지금도 매일 전화를 한다. 그의 이런 엄청난 노력의 결과는 나날이 쌓이는 최고의 우키요에들이 말해준다.

수집을 향한 그의 열정은 치토스의 ‘따조’에서 우키요에와 2차 세계대전 군용품 수집을 거쳐 아프리카 조각으로 이어졌다. 주말마다 방문한 박물관과 벼룩시장에 이어 아프리카 갤러리에서 만난 흑인 딜러들과의 대화는 국내에서 단 한 번도 흑인들과 대화 해본 경험이 없던 그에게는 색다른 문화적 체험이었다. 동시에 갤러리 방문은 예술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예술 애호가들과 진한 호기심을 공유하는 현장이었다. 먼 미지의 나라에서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프리카인들이 믿었던 신들과의 영적 교류를 담은 아프리카 조각들은 그에게 이미 컬렉터뿐 아니라 갤러리스트의 소양과 자질을 길러준 셈이다.

작가 현경 발굴하고 컬렉션 통해 기여해


▎HYON GYON, Bite Back / Oil, Fabric String, Metal Leaf on Canvas 2015 42×52 ni . / 106×13㎝ / 사진:ⓒ Hyon Gyon Courtesy the artist and Shin Gallery
그러다가 우연히 발길을 들인 곳이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였다.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의 작품이 뜻하지 않은 고가임을 발견했다. 그때 신홍규는 갤러리를 열어 생긴 수익으로 모던아트 작품들을 컬렉션할 수 있겠다는 포부가 생겼다. 이는 마치 넓은 바다를 지키는 등대처럼 떠오른 사업 기획이었다. 갤러리를 오픈하기 위해 전 세계의 작가들을 매일 꾸준히 리서치를 했다. 결국 찾은 작가는 현경(Hyon Gyon) 작가였다. 그를 발굴하고 그의 80여 작품을 컬렉션한 사람으로서 “그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강하게 분출되는 에너지는 현경 작가가 한국, 일본, 미국, 폴란드에서 경험한 여러 문화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30만 달러의 대출로 시작한 첫 갤러리 사업은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아시아 작가로 승부를 걸었지만 그 어떤 프레스도 컬렉터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었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까지 갔다고 생각했던 처절한 순간에 늘 한 점씩 판매되면서 또다시 용기와 인내심을 기르게 된다. 그렇게 어느덧 성장한 신갤러리는 홍콩의 벤브라운 갤러리와 협력해서 현경의 작품을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컬렉터로서 신홍규의 관심 영역은 기원전부터 현재까지의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모든 대륙의 작가들이다. 컬렉션하는 분야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만 산다 해도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다. 항상 그 순간이 아니면 절대 살 수 없는 작품들만 구입하기 때문에 박물관 대여 작품이 대부분이다. 동시에 아모리쇼, 프리즈, 아르코, 바젤, 조나마코, 아트브뤼셀, TEFAF, Outsider Art Fair 등 한 달에 세 곳 이상의 페어를 다니며 발굴한 젊은 작가의 컬렉션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작품을 구입하는 기준은 작품이 갖는 독창성, 작가의 잠재력, 다른 작가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다. 신갤러리의 발전은 젊은 컬렉터인 신홍규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했다. 그가 컬렉터로서 더 알려질수록 그가 지원하는 작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반향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는 다니엘 스포에리(Daniel Spoerri), 크리스 버든(Chris Burden), 한스 벨머(Hans Bellmer), 헬레니즘 시대 도자기를 포함한 골동품들,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발튀스(Balthus), 마르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 등 대가들의 작품들 사이에 현경과 이근민 작가의 작품을 설치해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올해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인생을 꽤 살아온 사람처럼 말했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늘 벌어지는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제게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는 완벽하게 준비한다는 뜻이죠.”


▎Teresa Burga (b. 1935) Untitled (BAH) 1966 / Mixed Media, Collage and Acrylic on Masonite 48×29×2 in. (122.3×73.8×5㎝) / 사진:ⓒ the Shin ColleCtion
신홍규에게 인생은 도전이다. 아침부터 시간을 쪼개어 쓰는 성실함이 뒷받침했다. 신홍규 인생을 보면 성공하는 삶은 계획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어떤 습관과 열정을 갖는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신홍규는 실천을 동반한, 변치 않는 호기심 있는 삶을 뉴욕에서 보내고 있다.

어린 시절 발견했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예술과 함께 첫 신비로운 경험을 했던 신홍규는 예술가들이야말로 진정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창조한 작품들은 적절한 환경에 전시될 가치가 있으며 컬렉터들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역할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명의 컬렉터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자신의 3000여 점 작품을 바탕으로 루이비통 재단을 설립했고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베니스에 있는 두 개의 개인 박물관 이외에도 파리에 2019년 개관을 목표로 세 번째 개인 박물관을 설립 중이다. 홍콩의 K11 재단을 능가하는 아시아 최고의 미술관을 설립하려는 신홍규의 꿈이 이루어져 전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될 날이 멀지 않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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