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조르조 치니재단의 폴 매카시와 크리스티안 럼메르츠의 Virtual Reality Art(VRA )였다. VRA 는 예술사에서 가장 빠르게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다. 특히 크리스티안 럼메르츠의 [La Apparizione]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십자가에서 불태워지며 금빛의 핏덩이를 쏟아내며 고통받는 예수님 발아래 서 있는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과 끝없는 슬픔, 안타까움으로 VR 카메라를 내려놓은 후에도 지금까지 가슴에 그 여운이 남아 있다.
▎도미니크와 실뱅 레비 부부(Dominique & Sylvain Levy) / 사진:Dominique & Sylvain Levy Copyr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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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A(Virtual Reality Art, 가상현실예술)는 예술사에서 가장 빠르게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다. VRA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꾸준히 이 영역을 발전시키고 있는 컬렉터가 있다. 중국 작가들과 깊이 교류하며 20년 동안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쟝 판츠(Zeng Fanzhi), 류 웨이(Liu Wei), 유 홍(Yu Hong), 슈 첸(Xu Zhen), 쟝 후안(Zhang Huan) 등 90여 명에 이르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션하고 있는 프랑스 컬렉터 부부, 실뱅과 도미니크 레비다. 류이첸과 왕웨이(Liu Yiqian and Wang Wei-China), 크리스티안과 카렌 보로스(Christian and Karen Boros-Germany), 엘리와 에디트 브로드(Eli and Edythe Broad-United States), 기와 미리암 울렌스(Guy & Myriam Ullens-Belgium) 등 부부가 함께 컬렉션하는 것은 극도로 흥미로운 일이다. 만일 부부가 함께 컬렉션을 30년간 해왔다면 30년 동안 합의점을 찾는데 도달했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미국인으로 유대인 출신이었던 스타인 가족은 파리에 거주하면서 세잔느, 마티스, 피카소 등 여러 작가를 발굴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했었다. 실뱅과 도미니크 역시 유대인이다. 유대인 가문들 중에는 컬렉터가 많다. 그들은 각 집안의 가업이나 교육이념을 자녀들에게 계승할 뿐 아니라 과거의 역사와 유물에 대한 존경심을 물려준다. 그들이 수세기 동안 한 나라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이민자 생활을 하며 자녀들에게 계승한 것이 예술의 중요성이었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은 이주할 때마다 함께 떠날 수 있었던 유일한 재산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예술이 삶의 일부이며 지식과 교양과 더불어 최고의 가치라고 가르쳤다.실뱅의 집은 에펠탑이 보이는 세느강 변에 있다. 인터뷰를 위해 언제나처럼 환한 표정으로 필자를 맞은 실뱅은 차분한 목소리의 조용한 사람이지만 예술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면 그의 표정은 순간 아이처럼 순수하게 바뀐다.실뱅과 도미니크 부부는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는데 온 가족의 중심은 늘 예술이다. 부모가 컬렉터라도 자녀들에게로 아트컬렉션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 세대로 넘어가면서 부모가 선택한 작품들이 진부하게 느껴져 작품 대부분을 판매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아이들과 상의하고 함께 결정하기 위해 전시와 페어에 온 가족이 동반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스위스 바젤 아트 페어에 갈 때 테이블을 마주하고 부모와 자녀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아트 컬렉션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은 10여 년 전부터 자주 보는 일상이다.
가족의 대화는 늘 예술
▎거실 소파 뒤 회화 작품 - 쥬 티하이(Zhou Tiehai) / 사진:Dominique & Sylvain Levy Copyright / Photo by Eunju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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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과 도미니크가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 모두 컬렉터가 아니었고 양가 부모님들도 컬렉터가 아니었다. 각각 모자, 가방, 의상 등 오트 쿠튀르의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을 했었지만 부르주아적 삶은 아니었다. 패션 사업 자체가 어려워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일에 모든 것을 헌신해야 했으며 여유 있게 아트 컬렉션을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도미니크의 제부가 컬렉터였고 그의 집안은 컬렉터 가문이었다. 그의 권유로 부부는 갤러리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시 파리에서는 젊은 커플이 벼룩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서 집을 장식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부부는 주말마다 벼룩시장에 가고 경험이 풍부한 제부를 동반해 갤러리들을 방문했다. 부부의 첫 번째 컬렉션은 집을 장식하기 위한 오브제였고 그들의 첫 예술 작품 컬렉션은 1999년에 고갱이 속한 퐁타벤파의 뒤 퓌고도(Ferdinand du Puigaudeau)가 그린, 바위 위에 햇살이 비치는 작품이었다. 신혼 부부는 식당에 작품을 걸어두고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감탄하며 매일 식사를 했다.
갤러리에서 충분한 시간 두고 감상한 뒤 구입
▎베란다 쪽 거실의 오른쪽 두 조각상 - 왕 크핑(Wang Kep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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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작품을 구하는 것도 매우 특이한 경험이었지만 작품을 구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에 진정한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들에게는 그 과정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진지한 모험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정보들을 접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떤 작가가 좋다고 그의 작품을 전부 구매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부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확신이 드는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조각이건 회화 건 상관이 없었다. 단순히 흥미를 가지고 접근한 작품이라도 점차 알아가면서 시리즈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특정 시기에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도 중요했고 이런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 중에서 가장 특별한 하나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했다.부부에게 예술품을 컬렉션 한다는 것은 일종의 창조행위이고 그 창조는 시간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1년 안에 한꺼번에 500여 점을 컬렉션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부부는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경매장에서 구매하지 않는다. 경매장에서 작품을 구매할 때는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비록 경매 전에 작품을 전시하기는 하지만, 구매를 결정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게다가 전시가 끝난 후 곧바로 경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약 10일 안에 작품을 구매할지 결정해야 한다. 응찰해서도 현장에서 ‘신속하게’ 가격을 부르고 낙찰을 받아야 한다.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경매장에서 작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예전에 갤러리에서 충분히 봤던 작품이라거나 원래 구매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부부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경우 등이다. 그렇게 부부는 대부분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했다.15년 동안 가구 디자인 컬렉션을 하고 난 뒤 2005년부터 중국 작가의 작품들을 모으기로 결정했는데 그 계기가 남다르다. 도미니크 어머니의 회사가 매각되고 나서 당시 겨우 35세였던 남동생이 자국 내의 업체와 경쟁하지 않기 위해 개척지인 중국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남동생이 중국에서 자리 잡는 일을 돕기 위해 함께 중국으로 갔다. 그때 부부는 박물관과 갤러리를 둘러봤다. 당시 상하이에는 박물관이 많지 않았고, 상하이 국립박물관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주로 골동품 위주였다. 부부는 파리에서 가구 디자인 갤러리를 방문한 것처럼, 중국 현지에서도 갤러리를 둘러봤다. 그 과정에서 로렌조 에브링이라는 아트 딜러를 만났다. 그는 이미 15년 전부터 샹아트에서 일하고 있었고 중국에 살면서 발견한 예술가들을 소개해줬다. 부부는 그의 도움으로 딩 이(Ding yi)의 작품을 첫 번째 중국 작품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그후 파리 국제 아트페어 피악(Fiac) 기간 중에 딩 이가 피악에 참가한 갤러리스트게 초대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 후 중국인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얀 페이밍(Yan Pei-Ming), 왕 두(Wang Du), 두 젠쥰(Du Zhenjun) 등 프랑스에 거주하는 중국인 예술가들을 만났다. 이 작가들은 중국 현지의 중국 예술가들을 소개해주었다.
15년간 가구 디자인 컬렉션 하기도
▎식당의 회화 작품- 후앙 유싱(Huang Yuxing) / 사진:Dominique & Sylvain Levy Copyr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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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을 만나는 이유뿐 아니라 이미 만난 중국 작가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부부는 두 달에 한 번 중국에 정기 방문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작가들과의 우정은 더 깊어졌다. 부부가 중국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은 자녀들 때문이기도 하다. 두 자녀 모두 파리에서 중국어를 익혔다. 특히 딸 카렌(Karen Levy)은 소르본대학에서 예술사를 공부한 후 2년 반 동안 중국에서 일을 했다. 아들도 베이징에서 2년 반 동안 공부했다. 그래서 두 아이 모두 중국어가 유창하다. 이렇게 부부는 중국에 대한 열정을 자녀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중국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한국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도 호기심이 많다. 가족 모두 아시아 문화 자체를 매우 좋아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아시아 문화는 매우 친근하면서도 가족적인 문화이며, 불교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유대인인 부부는 조상을 존중하고, 우정과 가족을 중시하며, 가문의 전통을 자녀들에게 계승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아시아 문화와 깊은 공통점을 가진다.
▎왕 지우(Wang Jiu) / 사진:Eunju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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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중에게 웹사이트에서 컬렉션 공개
▎후 지에밍(Hu Jiem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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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가족에게 아트 컬렉션은 모험이다. 각각의 컬렉터들은 자신만의 모험을 한다. 레비 부부의 목표는 가구 디자인 분야를 15년간 연구한 것처럼 한 분야를 깊숙이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가구 디자인에서 아트 컬렉션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진정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회화 외 다른 매체, 곧 영상, 사진, 조각, 설치 등 초기부터 박물관급 작품만 구입하기로 한다(레비 부부의 총컬렉션은 350점 정도이며, 전체의 45%는 회화, 35%는 설치, 나머지는 비디오·사진·조각 작품들이다). 박물관급 작품만 구입하는 목적은 대중에게 컬렉션을 공개하기 위해서인데, 첫 번째 목표는 중국 현지인들이었고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작품을 디지털화한 다음, 대중은 웹사이트 공간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전시는 가상으로 볼 수 있다. 20여 분에 걸친 비디오 작업으로 완성되는데 이는 실뱅이 1997년 파리에서 프랑스에 있는 모든 박물관을 위해 오디오가이드를 완성했을 때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그때 실뱅은 컨템퍼러리 아트 작업도 음향 작업, 디지털 작업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대중에 관해 연구한 결과물로 아이패드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했다. 이제는 예술 ‘작품’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와 관련된 체험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체험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했다.‘www.g1expo.com/v3/dslcollection’에서는 부부의 컬렉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Ebook], [Virtual Museum], [Dslmagazine]에서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감상은 [Virtual Museum] 에서의 작품 감상이다.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트 컬렉션은 여행을 하면서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세계다. 컬렉터들은 동일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지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다. 21세기에는 “우리는 이것을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점점 드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다양성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인내한다. 예술은 이 다양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실뱅은 6년째 상하이대학원에서 컬렉션, 일반 현대미술, 중국 현대미술 등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으며, 필자가 방문한 날은 소더비 학생 15명을 위한 강의를 스카이프로 준비하고 있었다. 필자를 배웅하며 실뱅이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최고의 재벌은 못 되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될 수 있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