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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맨킨 NBBJ 파트너 

오피스 건축계 미다스의 손 

박지현 기자
1988년 이후 새롭게 탈바꿈할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 경기장, 판교 알파돔 시티 등 한국 부동산 시장을 뒤흔드는 랜드마크들이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글로벌 건축회사 NBBJ의 손에서다.

▎로버트 맨킨 파트너가 대규모 빌딩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인터뷰 당시 창밖의 건물을 보며 “서울 도심 한복판의 독특한 밀도감과 에너지에 사로잡히는 기분이다. 서울의 현대 건물들은 상징적으로 국제도시의 면모를 자랑하면서 세계를 선도하는 강력한 느낌을 준다”고 표현했다.
#1. 농구코트, 트랙, 수영장, 산책 공원, 피트니스 센터 등이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낮은 지형에 펼쳐져 있던 캠퍼스가 수직 공간에 들어선 개념이다. 스카이 브리지 3개로 연결된 50층과 41층 쌍둥이 타워다. 중국 선전에 지어진 인터넷 회사 텐센트 신사옥이다.

#2. 식물 4만 점이 심어져 있는 유리 돔 형상의 이 건물은 햇살과 풀 내음이 가득한 ‘도심 속 열대우림’ 오피스로 불린다. 도시와 조화를 이루며 혁신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미국 시애틀에서 지난해 얼굴을 내민 아마존 신사옥 스피어스다.

#3. 반도체 모형을 한 이 건물은 중앙으로 서로 마주 보도록 둘러쌌다. 2층짜리 건물 여러 개를 켜켜이 쌓아 올린 형태로 반도체 웨이퍼(얇은 실리콘판)를 본떴다. 직원들은 각자 사무실에서 이동할 때 모두 중앙에 있는 정원을 지나게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전자 미주총괄 신사옥이다.

오피스 건축계에서 화제가 됐던 이 건물들의 디자인은 한 회사가 맡았다. 사옥 설계 부문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꼽히는 건축회사 NBBJ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는 NBBJ는 텐센트, 아마존, 알리바바,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네이버, CJ 등 국내외 기업들의 오피스 혁신을 이끌었다. 늘 과감한 시도로 미국 경제 월간지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최근 NBBJ는 한국에서 더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잠실올림픽경기장 리뉴얼, 판교 알파돔시티 등의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9월 말 한국을 찾은 로버트 맨킨(Robert Mankin) NBBJ 파트너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났다.

“NBBJ의 공간에 대한 기본 철학은 ‘이동성’을 담은 휴먼 네트워크입니다.” 맨킨 파트너는 글로벌 기술 오피스 설계를 관통하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카페테리아나 운동시설, 로비처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공간을 늘려가는 추세지요.”

맨킨 파트너는 지난해 완공된 중국 텐센트 신사옥을 좋은 예로 꼽았다. “이동성을 높이고 수직과 수평의 조화를 목표로 기획한 곳입니다. 전통적인 기업처럼 로비나 공간이 아래층에 있고 위층에 사무실이 몰려 있던 형태에서 벗어나, 건물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를 고르게 공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구간 엘리베이터는 NBBJ의 이러한 설계 철학을 잘 드러내준다. 건물 간 3~5개 층 높이를 연결한 벨트 형태의 스카이 브리지는 세 구간으로 나뉜다. 2층에서 5층, 22층에서 26층, 35층에서 37층으로 연결돼 동선의 유연성을 확보해 직원들 간 교류가 극대화됐다.

뇌과학·심리학 동선 설계 반영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스피어스. / 사진:SeanAirhart
텐센트 사옥은 IT 기술과 인프라가 구현된 ‘IoT실험실’로 불린다. 안면인식 출입기, AR·VR 기술이 적용된 홀로그램 가이드, 자동 온도 조절이 가능한 수영장과 회의실을 갖췄고, 최적의 주차공간도 알려준다. 위챗으로 주차 지역과 엘리베이터까지 안내 받을 수 있다. 의자나 책상도 인체 공학적으로 만들어 높낮이 조절도 가능하고, 의자 등받이에 찍힌 QR코드를 등록하면 사용자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맨킨 파트너는 “모바일 기술 진화로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건물도 수요에 맞춰 디자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무환경이 실제 직원들의 행동을 바꾼다”고 자신한다. 노르웨이 통신회사 텔레노르(Telenor)는 원래 건물이 20~30개로 나뉘어 있어 회의나 의사소통이 어려웠는데, 사옥을 하나로 통합한 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세계에서 가장 공유 공간이 많은 건물이 됐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기 시작했고, 성과도 좋아졌습니다. 근무 공간의 변화로 회의 문화, 협업 문화가 완전히 바뀌는 사례는 많습니다.”

하지만 자유좌석제의 개방된 공간만이 사무실의 정답일 순 없다. 업종마다 일하는 방식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맨킨 파트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규격화된 사무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오픈형 라운지에 나오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힌 것이라 강조한다. 한정된 규모에서 모든 이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을까. NBBJ가 뇌과학, 심리학, 행동 데이터 연구를 동선 설계에 반영하는 이유다. NBBJ는 워싱턴 대학교 뇌과학자인 메디나 박사를 비롯한 연구 팀과 주변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요소와 기능을 응용과학과 함께 건축에 접목했다. 메디나 박사는 운동, 영양, 식물, 색채, 풍경(시야), 천장 구조 등 6가지 요소가 공간 내에서 피로도, 몰입, 아이디어, 역동성, 협력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무 공간은 사람의 행동 양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다양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배치해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마주칠 수 있는지 사전에 계산합니다.”


▎2. 두 건물이 연결된 중국 텐센트 쌍둥이 타워. / 3. 텐센트 건물 내부엔 트랙이 있다. / 4. 식물 4만 점이 심어져 있는 스피어스 내부.
연구 결과를 활용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스피어스 건물이다. 맨킨 파트너는 “자연광과 식물에 노출되는 시간이 얼마나 디톡싱에 좋은지, 색깔이 심신에 안정을 주는지를 반영한 곳”이라며 “한편 삼성전자 실리콘밸리 사옥은 사람이 더 많이 움직일수록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반영해 이동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언급했다.

맨킨 파트너는 앞으로 데이터들이 축적되면 공간 디자인에 더 활용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는 “향후엔 건물 스스로 이것을 적극적으로 학습해 인간의 성향과 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합한 조명과 온도를 찾아 제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도 실험을 통해 탄생했다. 맨킨 파트너는 “우리 회사가 활용하는 골디락스 앱은 건물 내 부착된 센서가 조명, 움직임, 온도, 소리 등을 수집하고 원하는 조건에 맞춰 조절할 수 있다”며 “오피스 내에서 언제,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도 추천해준다”고 말했다.

오피스 혁신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한국에서도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생산성에 집중했던 사무실 구조를 주변 환경과 업무 과정, 에너지 효율 등을 고려해 바꾸려는 회사가 늘고 있다”는 게 건축 디자인의 변화다.

한국의 오피스 시장은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15년 전부터 한국을 오가며 건축 설계를 한 맨킨 파트너는 나라별 문화가 중요한 사항이라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시아 언어에 있는 ‘존중’ 문화가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회사의 리더십이나 존칭 문화를 반영해야 하는 동선 설계도 중요하다. 맨킨 파트너는 “아시아 문화는 내부 경험뿐 아니라 기업 위치나 입지를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멋진 외관 설계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고 말했다. 기업의 브랜드 가치도 한국 기업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NBBJ는 최근 또다시 한국 시장에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잠실종합운동장 리뉴얼 프로젝트와 판교 알파돔시티 때문이다. 업계에선 서울 삼성동에 들어설 현대차 신사옥 신축 설계도 한몫한다고 본다. 현대차 신사옥은 2014년 현대차그룹이 10조5500억원에 한국전력 부지를 사들여 100여 층짜리 건물 5개를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 신사옥 설계 프로젝트 일부를 NBBJ가 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잠실종합운동장, 향수 두고 ‘경험’ 바꿀 것”


▎삼성 미주 사옥은 중앙공원으로 연결돼 있다. / 사진:TimGriffith
맨킨 파트너는 사옥 설계에 반영하던 휴먼 네트워크를 도시와 연결할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된 공공 건축설계에도 적용하고자 한다.

88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잠실올림픽경기장 리뉴얼도 그 일환이다. 맨킨 파트너는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시 국제공모 결과 나우동인 건축사사무소,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와 NBBJ가 공동 참여하게 됐다.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 센터 설계도 맡았던 터라 올림픽경기장의 리모델링 공동 프로젝트는 남다른 과제이기도 하다. 그는 두 센터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표현했다. “항저우 경기장은 아예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했지만 잠실 올림픽 경기장은 리노베이션 자체가 조심스러운 곳”이라며 “88올림픽의 향수와 상징을 지닌 경기장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경험’을 바꾸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주변 커뮤니티와 공원이 어우러지는 랜드마크로 ‘업데이트’하겠다는 복안이다.

최근에 맡은 판교 알파돔시티 프로젝트도 같은 선상에 서 있다. NBBJ는 미래에셋 PEF(네이버 45.1% 지분 투자)가 추진하는 판교 알파돔시티 프로젝트에 국내 주거 설계 부문 1위인 희림건축과 손잡았다.

판교 프로젝트도 ‘경험 살리기’의 목표로 추진한다. 단순히 건물과 오피스 구축에 한정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건물 한 곳이 성남 일대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버트 맨킨 NBBJ 파트너는 오피스 혁신을 꿈꾸는 기업인들에게 조언을 덧붙였다. “근무환경을 바꾸면 큰 변화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기업 오너 입장에서는 건축 이후에 찾아올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준비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CEO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란 얘깁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사진 김현동 기자·장소 제공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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