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장소에는 이유가 있다. 비밀은 ‘공간 구성’이다.
▎손창현 대표가 최근 을지로 부영빌딩 내 ‘디스트릭트C’에 오픈한 서점 ‘아크앤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손창현 대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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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된 부동산 시장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을 일으킨 이는 2014년 창업한 오버더디쉬(OTD)의 손창현(40) 대표다. 손 대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한 천편일률적인 외식문화에 염증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다. SNS에서 넘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맛집’이라고 해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손 대표는 단순한 소비를 뛰어넘어 휴식, 안정,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욕구에 주목했다. 그의 전략은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창출했다. 부동산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하면서 색다른 공간 창출이 필요해졌다.손 대표는 2014년, 서울 자양동 스타시티 건물주의 요청을 계기로 OTD를 창업하고 스타시티 3층에 직접 고른 맛집들을 한데 모아 ‘오버더디쉬(식탁을 넘어)’를 열었다. 이른바 손 대표가 직접 셀렉한 ‘맛집 편집숍’의 시작이다. 이후 광화문 D타워의 ‘파워플랜트’, 여의도 SK증권빌딩의 ‘디스트릭트Y’, 스타필드 하남의 ‘마켓로거스’ 등 여러 공간을 컨설팅하며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그는 OTD 창업 전 AM플러스자산개발, 삼성물산 개발사업부에서 상업용 부동산 개발 업무를 맡으면서 ‘셀렉 다이닝’의 가능성을 봤다. 그러나 회사에서 이 같은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유는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에서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외 성공 사례 등이 있어야 한다”면서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순 있지만 아무나 위험을 안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고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꿈에 도전하기 위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OTD가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콘텐트나 장소보다는 ‘사람’이다.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것을 먹고 싶은지, 어떤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지 등 공간에서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다른 업체들이 요즘 ‘핫’한 맛집이 어딘지, 그 아이템들을 선보이기 좋은 장소가 어딘지를 찾는 것과 확연히 다른 행보다.손 대표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보다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브랜드들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일단 음식점의 기본은 맛이다. ‘음식은 맛있어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반짝 인기를 끌다 금방 사장되기 마련이다. 뛰어난 맛으로 그 지역에선 입소문을 타고 있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곳들을 발굴한다. 손 대표는 공간이 있는 지역과 방문객들의 성향 등을 고려해 입점시킬 브랜드를 선별하는 편이다. 그래서 같은 오버더디쉬 매장이라도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입점된 브랜드는 천차만별이다.창업한 지 4년 만인 지난해 매출액 280억원을 기록한 손 대표도 실패에서 배웠다. 지금은 폐점한 오버더디쉬 홍대점이 유일한 실패작이다. 손 대표는 홍대도 건대와 같은 대학가라는 단편적인 공통점으로 건대에 있는 브랜드 위주로 홍대점을 꾸몄으나, 지역적 특색과 맞지 않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정리했다. 손 대표는 오버더디쉬 홍대점을 교훈 삼아 현재의 성공적인 모델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특히 광화문 D타워 파워플랜트 1호점은 2015년에 오픈한 이후 현재까지 전국에서 수제 맥주를 취급하는 단일 매장 기준 매출액 1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왜 서울에는 없을까’ 스스로 답하다
▎손 대표의 직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공간 기획자’가 적합할 것이다. ‘푸드 큐레이터’로도 불리지만 음식은 어디까지나 공간을 활용하는 한 가지 카테고리일 뿐이다. 공간을 재해석하는 그의 안목은 식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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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공한 그는 도시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뉴욕, 도쿄,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적인 도시의 옛 공간이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되는 과정은 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버려졌던 공간들이 도시의 핵심 지역이 되고,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일이 온라인에서 일어나지만 여전히 오프라인에서만 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곳으로 존재한다. OTD도 이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가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누군가는 답을 찾아야 한다.많은 도시의 변천사를 체험한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서울로 향했다. 맛집 큐레이션에 이어 주목한 트렌드는 ‘마켓’이다. 최근 ‘띵굴마님’이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 블로그 ‘그곳에 그집’을 운영하며 마켓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혜선씨와 손잡은 이유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파워블로거로 대표되는 인플루언서들이 SNS를 통해 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광고 위주의 대기업 마케팅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손 대표의 또 다른 도전은 서울을 대표하는 ‘서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보다 더 위대한 서점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디스트릭트C에 ‘아크앤북’을 열었다. 디스트릭트C는 서점과 라이프스타일 숍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유형의 도심형 복합문화공간이다. 손 대표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획일화된 서점이 아닌 ‘위대한’ 서점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는 꽤나 진지하다. ‘위대한 도시에 위대한 서점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까지 만들었으니 말이다.손 대표의 최종 목표는 식문화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리테일 공간 플랫폼 1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OTD는 머지 않은 시기에 기업공개(IPO)를 실시해 미국, 홍콩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김민수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