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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빅 4’의 미래] 4대 그룹을 위한 제언 

벤처·스타트업과 공생에 적극 나서기를 

김민수 기자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삼성·현대차·SK·LG가 모두 2~4세대 경영자로 교체됐다. 선대 창업자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면, 이들은 기존 사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이영면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양백 IGM 세계경영연구원 대표가 4대 그룹 최고경영자들의 현황과 위기,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가감 없는 대화를 나눴다.

지난 10월 15일 서울 장충동에 있는 IGM 세계경영연구원에 이영면 동국대 교수(경영학과), 양백 IGM 세계경영연구원 대표, 신현한 연세대 교수(경영대학)가 모였다. 경영학계에서 대기업 전문가로 꼽히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본지가 마련한 한국 4대 기업 최고경영자의 글로벌 리더십을 평가하는 좌담회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 사회자로 나선 이영면 교수의 질의를 토대로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좌담회에서 이들은 2~4세 최고경영자의 장단점과 리스크 등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최고경영자가 좌담회에 참여했다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독한’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그만큼 2~4세대기업 오너 경영인들이 책임지고 대비해야 할 미래가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전문가들의 냉혹한 평가와 조언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영면: LG그룹이 40세 수장을 맞이하면서 한국 4대 그룹의 2~4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일단 명칭부터 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아직 부친 곁에서 본인의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올해 회장 취임 20년을 맞은 최태원 회장과 올해 회장직을 물려받은 구광모 회장의 상황은 다릅니다.

신현한: 맞습니다. 4대 그룹 중에 가장 어려울 것 같은 곳은 LG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우연찮게 여러 문제가 최태원 회장에게 짐으로 작용했는데, 비슷한 사례가 LG에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고 구본무 회장 시절 잠재돼 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올 가능성도 있어 보이고요.

이영면: 삼성은 아직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아 정치적인 이슈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반도체 이외에 ‘큰 그림’이 아직 좀 부족합니다. LG는 어떻게 보면 엉겁결에 새로운 경영체제가 시작됐습니다. 구광모 회장이 앞으로 어떻게 조직에 본인의 생각을 반영해나갈지 주목해야 하는 단계라고 봅니다.

신현한: 정의선 부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미래 사업을 심도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SK는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영면: 현대차는 국내와 해외 모두 어려운 상황인데,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갈지가 관심사죠.

신현한: 이재용 부회장도 아직 세대교체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양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제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삼성은 2004년부터 이미 2세 경영을 준비해왔습니다. 올해 인사에서 60대 이상 임원진들이 떠나면서 세대교체가 된 것만 봐도 2세 경영 체제가 오랜 기간에 걸쳐 순조롭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현한: SK를 제외한 나머지 그룹의 문제는 지배구조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의 짐이 될 것입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배구조 안정화를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은 모호한 정책 때문에 사실상 최고경영자들이 언제든지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한계나 기회냐’ 유산 물려받은 2~4세 오너들의 숙명


▎신현한 연세대학교 교수 /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 재무관리 박사 / 전 뉴욕주립대 재무전공 교수 / 현 SK루브리컨츠 사외이사 / 전 LG이노텍 사외이사
이영면: 2~4세 경영자들의 숙제는 무엇이며, 이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까요?

양백: 삼성의 TV 사업은 퀀텀닷으로 잘못 빠지면서 이미 LG와 기술격차가 난 것 같습니다. 가전사업을 접어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올해 다시 발표한 4대 미래 성장 사업에 LED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은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를 선정했다. 올해 다시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AI ▲5G ▲바이오 ▲전장부품을 선정했다.)

신현한: 삼성은 반도체 쏠림 현상으로 사업 중심이 한곳에 몰리면서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양백: 현대차는 자동차 전문 제조기업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어요. 퀄컴이 설계한 칩을 삼성이 제조하는 파운드리 사업이나, 폭스콘이 애플 아이폰 제조 전문기업인 것처럼요. LG는 가전과 전장부품 사업의 경쟁력을 계속 키우고, 스마트폰 사업은 빨리 접을수록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최태원 회장은 20여 년 전부터 중국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신현한: 문제는, 2~4세 경영인은 창업주와 달리 사업을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선대 경영자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지만, 2~4세 창업자들은 이걸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2~4세 경영인이 새로운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기존 사업의 일부를 떼내서 위험을 분산하는 활동이 필요해요. 2~4세 경영인이 새 회사를 차려서 신규 사업에 도전해야 합니다.

양백: 최태원 회장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통해 본인이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인프라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사업의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현한: (최 회장처럼) 대기업은 이제 벤처기업과 공생해야 할 때입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투자를 실시하면서 스타트업 붐을 조성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기업 CEO들을 만나서 벤처를 비싸게 사달라고 직접 부탁했다고 하지요. 즉 벤처기업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성공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준 셈입니다. 우리나라도 4대 그룹이 앞장서서 스타트업 중에 키워볼 만한 아이디어는 베끼지 말고 제값을 주고 사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양백: 구광모 회장도 LG사이언스파크를 활용해 한국의 벤처 생태계 조성에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현한: 맞습니다. 대기업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밑에서부터 풀뿌리 기업들이 살아나면서 훨씬 더 다양한 발전 방안이 생겨날 겁니다. 대기업도 이 과정에서 신규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고요.

대규모 M&A가 어려운 척박한 환경


▎이영면 동국대학교 교수 /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산업관계학 박사(노사관계) / 전 한국윤리경영학회장 / 현 한국인사조직학회장 / 차차기 한국경영학회장
좌담회 참석자들은 그동안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과 공생하지 못한 것을 강하게 꼬집었다. 벤처기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는 것이 대기업의 혁신에도 도움을 준다고 조언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적극적인 M&A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 교수는 자본회수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면: 한국 기업들은 M&A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현한: 사실 대규모 M&A는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습니다. 대기업들이 차등의결권을 갖고 있지 못해서 M&A를 통한 성장이 상당수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M&A를 하려면 자기 경영권을 걸고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양백: 해외 기업 인수가 어려운 데는 현지 네트워크가 없는 것도 큰 이유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생태계와 네트워크가 있는데 거기에 이방인인 한국 기업이 다가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을 만들고 엑시트를 했는데, 페이팔 인맥(흔히 페이팔 마피아라고 부른다)을 유지 확장하면서 테슬라를 만들 수 있었죠.

신현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해외 기업들이 대규모 M&A를 할 수 있는 것은 차등의결권 제도 덕분입니다. 현금을 주고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주는 것이죠. 그래서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국엔 이러한 제도가 없고 주가도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M&A에 불리한 환경입니다.

이영면: 오너들은 회사의 주인이니 M&A 등 장기적 사업 관점을 가질 수 있지만 아래 임원진들은 아무래도 단기성과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도 장벽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신현한: 오너와 임직원의 마음이 같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오너는 20~30년을 내다보고 싶은데 임직원들은 당장 올 연말 인사 등 새로운 시도를 해서 성과가 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임직원들의 성과를 장기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KPI(핵심성과지표)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스톡옵션을 회사에서 퇴직한다고 해도 10년 동안 갖고 있다가 팔 수 있도록 하는 식이죠. 임직원이 장기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인센티브가 있어야 합니다.

양백: 새로운 KPI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GE가 2013년부터 이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삼성은 GE를 평생 벤치마킹해온 회사입니다. 이제 GE가 망한 것을 봤으니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죠.

신현한: 임원의 역할도 무척 중요합니다. 오너 곁에는 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 있어야 합니다. 고 최종현 SK 회장은 항상 경영학 교수 5명을 곁에 두고 내부평가를 들었다고 합니다. 최태원 회장도 이 방식을 배워서 임원역량진단을 시스템화했습니다. SK가 단기간에 하이닉스를 인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4세 오너들에 요구되는 기업가 정신은


▎양백 대표 / 뉴욕주립대학교 경영학 박사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머서코리아 부사장 / IGM 세계경영연구원 대표이사
이영면: 도요타의 경우 후임 경영자를 20~30년에 걸쳐 육성합니다. 반면 우리는 다들 아시다시피 오너 일가에서 입사 후 3~5년 만에 임원을 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경험에 비해 책임져야 하는 그룹의 규모는 너무 큽니다. 그래서 관리형·기술형 스태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구광모 회장은 변화보다 선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불안정성을 줄이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양백: 이 교수님 말씀대로 LG는 당분간 대규모 변화는 힘들 것으로 봅니다. 다만 새로운 회장 체제에서 LG 경영진과 소통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계열사 간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04년부터 승계 작업을 준비했지만, 아직까지 탄탄하다는 검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영면: 창업 1세대와 2~4세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어쩌면 선대들이 키워온 사업을 지키는 것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갖고 태어난 엄청난 권리들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좀 더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태어나보니까 ‘금수저’라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그들이 금수저가 되기까지 1960~70년대에 정부로부터 받은 특혜와 국민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좀 더 국가와 같은 노선에서 사업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봅니다.

신현한: 1세대 기업가 정신을 2~4세대가 물려받을 순 없는 겁니다. 새로운 세대에 요구되는 기업가 정신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해진 사업을 유지하는 것만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을 계속 시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죠.

이영면: 정부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정부 재정을 마음대로 집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업을 추진하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기업이 신사업을 맡아서 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게 되면 ‘윈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현한: 한국은 M&A도 하기 힘든 환경입니다. 해외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정부가 어느 정도 내부거래나 사업 다각화를 허용해줘야 할 때입니다. 본인들의 부나 재산을 증식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양백: 재벌에 대한 국내 정책과 해외 진출 지원 정책은 달라야 합니다. 재벌이 적극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밀어주고, 국내에서는 재벌들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서 상생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영면: 2~4세 오너들이 선대 때와 달리 새로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신현한: 현재 기업이 채용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노조 활동이 활발한 상태에서는 임금을 조정하기도 어렵고요. 차라리 직원들의 교육이나 미래 직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세대를 교육해서 유휴 인력을 교육생으로 바꿔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청년 실업률도 일정 부분 낮아지고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인재를 발굴해서 쓸 수 있습니다.

양백: 저도 교육사업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AI 개발에 앞서 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구글의 인력은 매년 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현한: 재벌들과 정부를 보면 사도세자와 영조가 떠오릅니다. 사도세자는 10살 이후부터 영조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세자의 관심이 영조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 4대 그룹을 사도세자처럼 만들지 말고 잘하는 것을 놔두고 지켜보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4대 그룹 2~4세 오너들이 선대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현세대에 맞게 더 발전시키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규 사업을 시도해보는 끈기와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직원들도 함께 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합당한 인센티브, 세계에 통하는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선대들이 한국 땅에서 사업을 키워 국력을 일으켰다면 2~4세 오너들에게는 세계에서 기업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 한국 4대 그룹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지, 국내에만 머물지 선택은 그들의 손에 달렸다.

- 김민수 기자 kim.minsu2@joongang.co.kr

201811호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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