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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의 혁신 오피스 | 국내기업 편(1)] 아모레퍼시픽 

여백과 조화 살린 아시안 뷰티 기업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한국에도 혁신 오피스 열풍이 뜨겁다. 대기업들은 낡은 사무실을 개조하고, 공유오피스를 신설한다. 벤처기업들도 직원들의 업무 환경 만족도를 높인다. 기업문화를 탈바꿈하는 국내 혁신 오피스들을 소개한다. 신사옥 입주 1년을 맞이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용산 신사옥은 브랜드 가치를 강조하고 공공성을 부여한 건축물로 평가 받는다.

▎아모레 퍼시픽그룹 세계본사 5층 정원에 자리한 레오 빌라리얼 작품.
5800억원. 아모레퍼시픽그룹(이하 아모레퍼시픽)이 신사옥 건설에 투자한 비용이다. 회사 비전을 건물에 담을 주인공도 엄선했다. 50여 명의 후보를 제치고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를 책임졌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치퍼필드를 20여 차례 직접 만나 건물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정도로 신사옥 건립에 신경 썼다. 신사옥은 한글 자음 ‘디귿(ㄷ)’ 모양이다. 6~7개 층 높이를 비워 층마다 자연광이 닿을 수 있도록 마련했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서 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60여 년간 한 부지에서만 세 번째로 지어진 신사옥은 완공 1년여가 지난 지금, 서울에서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세계본사는 기업 성장사에 한 획을 그었다. 대한민국 광복부터 약 75년간 제품 출시, 연구소 개소, 첫 수출 등 거듭해서 최초의 신화를 써 내려간 아모레퍼시픽은 특히 중화권과 아세안 소비자를 사로잡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등단했다.

2016년 ‘쿠션’ 화장품은 누적 판매 1억 개 이상 기록으로 ‘1초에 1개씩’이란 별명이 붙었다. 글로벌 100대 뷰티 기업 7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7년 ‘사드 보복’ 직격탄을 맞으면서도 아모레퍼시픽은 마치 위기를 원년으로 삼은 듯했다. 그해 신사옥은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많은 이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가 있었다. 대지 면적 4400㎡ 오피스가 서울의 노른자 땅 중 하나인 용산에 둥지를 튼 데다, 과연 이 거대한 건물이 랜드마크로의 상징성 외에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직원 1500명이 입주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힘을 쏟은 듯하다. ‘아시안 뷰티’로 정의되는 여백, 조화, 아름다움 등이 곳곳에 녹아 있다. 백자 달항아리를 표현한 건물 외관부터 내부 공간까지 미학적, 건축적, 실용적인 모든 요소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법이다.

설립 목적부터 ‘연결성(connectivity)’을 강조했다. 이 건물은 3년 2개월간 공사를 거쳐 탄생했다. 노후 건물이 여전히 많은 용산역 주변에서 아모레퍼시픽은 새삼 이질감을 줄 수도 있었다. 이를 의식해 지상 22층, 지하 7층 규모의 신사옥은 전체적으로 묵직하게 넓고 낮게 지어졌다.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도록 너무 크지 않았으면 한다”는 서경배 회장의 생각이 반영됐다. 건물은 3층까지 시민들에게 전부 개방했다. 공공성을 강조한 건물인 만큼, 내·외부는 연결돼 있다. 지하철 역과 이어지는 연결통로도 기업의 폐쇄성을 낮추기 위함이다. 통로를 감싸는 LED 벽은 마치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듯한 풍경을 자아낸다.


▎제주 차밭을 표현한 1층 오설록 티하우스 용산파크점. / 사진:아모레 퍼시픽 제공
외부에서 보면 특이하게도 가느다란 막대기들을 도미노처럼 연결한 모양이다. 크기와 두께가 제각각인 수천 개 알루미늄 핀이다. 채광조절과 단열 역할을 한다. 울퉁불퉁 일관성 없고 불규칙한 배열은 오히려 지루하지 않은 외관을 만들었다. 밤에는 햇빛이 쏟아지는 듯한 야경을 연출한다.

내부의 첫인상은 넓은 쇼핑센터 같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양쪽으로 움직이고 중간에 안내센터가 있다. 인공지능 안내로봇도 돌아다닌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는 공용 문화공간이다. 천장의 개방감을 구현하기 위해 가운데 천장만 유리로 만들어 채광이 쏟아지게 했다. 동서남북 방향만 빙 둘러 층을 올려 여백의 미가 도드라진다. 브랜드의 동양적 가치와 맞닿는 부분이기도 하다. 뷰티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모든 안내판과 표지 등은 거울로 만들었다. 기둥은 자연스러움을 도출하기 위해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컬러감이 높은 작품들로 인테리어 포인트를 마련해 휑한 느낌은 피했다.

디자인도 브랜드와 접점을 찾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차 브랜드 ‘오설록 1979’와 ‘오설록 티하우스’ 공간 디자인을 한 이광호 작가는 전선과 나무로 만든 녹색 선을 연결해 제주 차밭을 표현했다.

층마다 마련된 벤치들은 지역 작가들 작품으로 구성했다. 예술작품이 어우러지면서 시민들도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층은 이광호 작가, 2층과 3층의 가구는 윤여범, 최형문 작가의 작품으로 제각각 분위기도 다르다.

2층엔 아모레퍼시픽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아모레 스토어가 있다. 30여 개에 달하는 전 계열사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특화 매장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에스쁘아, 아모스 등 많은 제품이 진열돼 있다. 직원들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제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확대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평소에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직원들의 애사심을 모으는 공간


▎직원들의 휴게공간인 정원은 한쪽 면을 완전히 개방했다.
근처 조경도 ‘조화’에 입각했다. 대형 공공미술품은 건물이 완공되기 몇 년 전부터 작품 선정에 공을 들였다. 회사 비전과 주변 환경을 고려했다.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오버디프닝’(2018)은 스테인리스스틸, 강철, LED 조명을 활용한 설치작품이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본사로 향하는 길에 마주하게 된다. 반원형 고리는 거울에 반사돼 얽힌 원형의 고리 형태를 완성하고, 서로 반사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U자형 빙하 계곡 이미지를 연출한다. 작가는 거울과 수반의 표면 너머로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경험을 통해 감각과 지각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다른 작품에서도 연결을 강조했다. 설치물은 직원들 만을 위한 5층 휴게공간에 있다. 레오 빌라이얼 작가의 미디어 작품은 신사옥 정원(루프가든)에 자리한 디지털 설치물이다. 미디어 캔버스를 구성하는 2만2000개 LED는 작가가 제작한 프로그램에 따라 빛의 밝기, 방향, 속도, 지속시간 등을 바꿔 생명과 에너지가 피어나는 추상적인 형상을 그려냈다. 작가의 의도는 ‘디지털 캠프파이어’다. 직원들이 함께 작품 주위에 모여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담한 산책로와 벤치를 만들어 직원들은 일하다가 언제든 내려와 쉴 수 있다. 한쪽 벽을 완전히 뚫어 스카이라인 정원의 공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17층에도 남산 전경이 보이는 방향에 똑같은 정원을 조성했다. 오피스 공간은 루프가든이 자리한 5층부터 21층까지 이어진다. 가림막은 모두 걷어냈다. 역시 소통에 중점을 뒀다. 팀별로 6인용 오픈형 데스크를 구비했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는데, 칸막이가 없어진 이후(업무 대화가 자유롭게 이뤄져서) 불필요한 공식 회의가 오히려 줄었어요.” 김미나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대리가 말했다.

공용 공간으로 활용하는 29개 회의실은 모두 투명한 유리벽으로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회의실마다 모니터를 설치해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하다. 오피스 위아래층을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내부 중앙 계단도 마련했다. 1인용 워크포커스는 양쪽 칸막이를 가진 벤치 형태로 폐쇄성은 낮추고 프라이빗한 아늑함을 강조한다. 사무실 내부엔 건물 밖에서 보이는 알루미늄 핀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채광은 과하지도 적지도 않다. 루프가든도 창밖 배경 중 하나다. 녹색 전경이 눈의 피로도를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시내의 높은 건물에서도 구현한 셈이다. 카페테리아에는 750명이 들어갈 수 있다. 식물만이 인테리어 포인트로 사용됐다. 직원들은 매일 다르게 제공되는 네 가지 점심 메뉴 중 선택할 수 있다. 조식은 1000원이다.


▎백자 달항아리처럼 단순하고 절제된 미를 표현한 건물 외관.
복지시설도 세심하게 배려했다. 어린이 9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991㎡(300여 평) 규모의 2층 사내 어린이집은 직원들에게 인기 있는 시설 중 하나다.

16층엔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내 병원을 신설했다. 또 업무 스트레스와 통증 완화를 위한 마사지 공간 ‘라온’은 평소 예약이 끊이지 않는다. 직원들은 급여에서 약 3000원 정도만 차감하면 30분간 이용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을 고용해 지역사회에도 기여했다. 오후 업무 시간인데도 피트니스센터에는 직원들이 적지 않았다. 개인마다 주 52시간 근무 시스템이 정확히 태깅돼 시설을 이용할 때 알아서 차감된다. 자연스럽게 유연 근무로 이어진다. 여성 직원을 배려한 레이디스 라운지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초기 워킹맘을 위한 수유실로 구성했다. 수유실엔 유축기와 냉장고, 소독기도 갖추었다..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매장은 공용공간뿐 아니라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5층에도 마련돼 있다. 가격은 500원이다. 텀블러를 가져가면 그마저도 할인해 공짜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세계본사는 제2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 부문 대상, 제9회 대한민국 조경문화대상 정원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제41회 한국건축가협회상 Yearly Best 7에 선정됐다.

“애사심이 더 높아졌어요.” 신사옥 입주 1년을 맞은 올해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입사 6년 차인 김미나 대리는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시설을 이용할 때마다 새삼 기분 좋은 자극을 받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전 처음이지만, 과거 이 자리 낡은 건물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졌던 선배들은 애정이 더 남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일할 때 못 느꼈던 감정들이 이젠 출퇴근길, 휴게시간에도 불쑥불쑥 느껴져요.”

“직원들의 만족감은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아모레퍼시픽그룹이 부진했던 실적을 털어내는 건 그저 시간문제인 듯싶다.


▎쇼핑몰 같은 내부 로비는 시민들에게도 완전히 개방된 공간이다.



▎U자형 빙하 계곡 이미지를 연출한 올라퍼 엘리아슨 작품.



▎혼자 일할 수 있는



▎오피스 내부에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는 중앙 계단도 만들었다.



▎채광뿐 아니라 외부 벽도 유리로 만들어 공간감을 확대한 회의실. / 사진:아모레 퍼시픽 제공


201903호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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