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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창업가 15인 에세이 ‘나의 꿈’] 최재규 BBB 대표 

순수하게 즐거운 과정 


나는 공부를 잘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과목도 없었고, 교우 관계도 평범했다. 자랑스러운 우등생 아들이자 모범생,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중학교까지였다.

과학고등학교와 카이스트에서 보낸 시간은 ‘어중간한 존재’인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성적을 위한 수단이었던 공부를 누군가는 순수하게 좋아서 하고 있었다. 나는 낙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뒤돌아보건대 내 학창 시절은 재능을 발견하고 꿈을 좇는 멋진 인생과 거리가 멀었다. 명쾌함이 없는, 무언가 어중간한 날들이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소위 공부 엘리트들은 어중간한 내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 나와 그들이 공통으로 가진 것은 부실한 공감능력과 주변의 높은 기대, 그에 비례하여 높아져버린 부담감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 부담감이 때때로 새로운 기회 앞에서 보수적인 결정을 종용한다는 것이다. 완벽이라는 강박에 갇힌 존재로 멈춰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씁쓸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는 동기들보다 빨리, 2000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수월하고 자연스럽게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 만나는 사람들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체외진단 의료기기,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며 나는 실전이라는 필드를 즐겼다. 복잡한 생각 따위에 젖어 있을 여유가 없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일을 하며 어느덧 일의 재미는 범위와 색채를 달리하고 있다.

바로 사람과 조직에 관한 것이다. 의료기기 업계에서 일하며 연구·개발진 뿐만 아니라 기업을 움직이는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만나고 있다. 자존심이 강하나 겸손함을 갖춘 내면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 정도의 퍼포먼스는 누구라도 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공감할 수 없는 수준의 겸손함에 종종 탄식할 정도다.

2014년 창립한 BBB는 그런 인재들과 함께하는 하나의 회사이자 하나의 팀이다. 나는 그들에게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기회’라는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먼저 나의 부족함을 꺼내 들고 다가가 실패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한다. 똑똑하며 도전적인 그들은 기꺼이 그 기회를 승낙하고 함께하고 있다.

내가 그들처럼 여느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면 이런 팀워크가 가능했을까. 내 인생의 어중간함이 드디어 인재들을 팀으로 끌어들이는 기저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창립 5년 차가 된 BBB에서 여전히 중요한 나의 역할은 엘리트를 영입하고 밸런스를 갖춘 팀워크를 조직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꽤 훌륭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유니크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필요하되 뻔하지 않고, 도전적이되 합리성을 갖춘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야말로 스타트업 비비비의 동력이다.

2019년 우리는 가장 큰 프로젝트의 론칭을 앞두고 있다. 나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힘을 모으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순수하게 즐거운 과정이다.

201903호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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