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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마케팅에서 배운다] 이지윤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공공 스포츠시설 흑자행진 이끌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스포츠 빅 이벤트는 짧고 화려한 축제 끝에 대형 경기장 등 ‘골칫덩어리’를 남긴다. 관리비만 수십억원이 들어가지만 활용도는 극히 낮다. 그러나 이지윤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공공 스포츠시설 운영을 흑자로 전환했다.

▎이지윤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고척돔 완공,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등을 이끌었다. / 사진:서울시설공단
세금 먹는 하마, 잔치 뒤에 남은 흉물, 화이트 엘리펀트(White Elephant)….

전국 도시 곳곳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향한 가시 돋친 말이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맞춰 지은 경기장과 관련 시설물을 겨냥한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 한·일 월드컵을 거쳐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짧고 화려했던 축제가 끝나면 메인스타디움·축구장·실내체육관·스키장·빙상장·썰매경기장 등은 대부분 ‘골칫덩어리’로 전락한다. 공공 스포츠시설은 매년 수억∼수십억원의 관리비가 들어가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수입이 나올 만한 구석이 없다. 지역 프로 스포츠 팀의 홈 경기장으로 쓰이거나 주민들의 생활체육시설로 활용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월드컵경기장·고척스카이돔·장충체육관을 모두 흑자로 돌려놓은 모범사례가 있다. 이 시설들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이 그 주역이다. ‘공공 스포츠시설도 흑자를 낼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준 이지윤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서강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홍보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한 이 이사장은 2013년 서울시설공단 문화체육본부장에 임용돼 고척돔 완공,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등을 이끌었다. 공단 경영전략본부장을 거쳐 2016년 3월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올해 건축비 모두 회수


▎홈플러스와 메가박스 등이 입점한 서울월드컵경기장, 콘서트 공연의 성지가 되고 있는 고척 스카이돔, 리모델링 후 주변 상권을 살리고 있는 장충체육관.(왼쪽부터) / 사진:서울시설공단
서울시설공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서울시장이 지정한 시설물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해 시민의 복리 증진을 꾀하는 기관이다. 서울시내 자동차 전용도로 관리, 장애인 콜택시와 공공자전거 ‘따릉이’ 운영, 강남역·잠실·고속터미널 등 25개 지하상가 관리 등을 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고척돔·장충체육관·어린이대공원·청계천 등도 관할이다.

인력과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직원이 3400여 명이고 올해 예산은 3729억원이다. 지출은 사업비 비중이 가장 높고, 수입은 25개 지하상가 임대료가 가장 크다. 2018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수입 191억원에 지출 138억원으로 53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고척돔은 61억원, 장충체육관도 7억원 흑자를 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흑자 얘기부터 해 보자.

2002 월드컵이 끝난 뒤 월드컵의 유산인 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이 많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유산을 말하며 스포츠 외에 사회·도시·환경·경제 요인을 중시한다. 우리도 월드컵의 상징성을 살리되 지역 주민이 필요로 하는 시설물을 유치해 활용도와 경제성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당시 상암동 일대에 대형 쇼핑몰이 없었다.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이 매우 넓은 데 착안해 쇼핑몰(처음엔 까르푸, 현재는 홈플러스)을 넣었고, 쇼핑 전후 즐길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영화관(메가박스), 사우나,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등을 들여놓았다. 올해까지만 잘 운영하면 토지비용을 뺀 경기장 건축비를 다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04년부터 프로축구단 FC서울이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데.

FC서울의 성적에 따라 월드컵경기장을 찾는 손님 숫자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 작년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출발이 좋다. 최용수 감독님을 뵙고 ‘잘 부탁드린다’고 읍소를 해야 할 판이다(웃음). 월드컵경기장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리는 곳은 홈플러스다. 이제는 공공체육시설이 과연 수익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하는 건가 고민을 하고 있다.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다른 지역에서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것 같은데.

경기장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살리면서 사람들이 와서 보고, 여기 왔다는 경험을 공유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맨유의 홈 경기장인 올드 트래퍼드, LA다저스의 다저스타디움 같은 곳은 경기가 없어도 꾸준히 투어 관광객이 오지 않나. 우리도 2002 월드컵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경기장 내에 ‘풋볼 팬타지움’을 입점시켰다. 2002 월드컵 영광을 보여주는 전시물과 히딩크 감독, 홍명보·박지성 선수 등의 사진을 전시하고, 온·오프라인 체험 코너도 마련했다. 이곳은 2002년 당시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중국이 경기를 했던 곳이라 중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고척돔 이야기로 넘어갔다. 2015년 건립된 국내 최초의 돔 구장 고척스카이돔은 입지·설계 등을 놓고 몇 차례나 계획이 바뀌는 진통을 겪었다. 홈구장으로 쓰기로 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현재는 키움 히어로즈)와도 계약 조건을 놓고 파국 직전까지 갔다. 현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천후 야구장으로서, 비시즌에는 콘서트장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고척돔 개장 초기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해줬다. 야구 비수기인 겨울에 콘서트가 예상보다 많이 열렸다. 콘서트 때는 근무 강도도 높아지고 퇴근 시간도 늦어지지만 직원들이 불만 없이 자기 역할을 잘 해줬다. 그라운드에 의자를 놓으면 3만 명, 관중석만 채우면 1만7000명 정도 수용한다. 최근에도 마룬파이브·워너원 등이 성공적으로 콘서트를 치렀다.

콘서트를 하면 야구 할 때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던데.

캐리어를 끌고 오는 팬이 많다. 입장할 때 캐리어를 맡기고, 공연 끝나면 캐리어를 찾아서 KTX 역이나 인천공항으로 간다. 지방이나 외국에서 온 열혈 팬들이다. 입장권을 못 구하고도 굿즈(스타 관련 물품)를 사러 오는 팬도 많다. 야구장으로 지은 돔 경기장이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되는, 재미있고 새로운 현상을 보게 된다. 돔 특성상 청중의 집중이 잘되고, 음향 장비 설치하는 데도 우천·바람·먼지 등의 영향이 없어 만족도가 높다.

장충체육관 손님 차니 족발집도 호황


2015년에 장충체육관을 인수해 흑자로 돌려놨다.

장충은 복싱·레슬링·씨름·농구 등 우리나라 체육사의 명장면들이 펼쳐진 ‘스포츠 성지’다. 그런데 당시 서울시의 위탁을 받은 민간기업이 수익 위주의 경영에 치중하다 보니 의류 땡처리 행사가 열리는 싸구려 공간으로 전락해버렸다. 매년 5억∼6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서울시에서 메워줬다. 우리는 리모델링한 장충체육관의 위탁권을 확보한 뒤 좋은 스포츠구단이 들어오면 장충을 살릴 수 있다고 봤다. 당시 인기가 올라가던 프로배구의 남자(우리카드), 여자(GS칼텍스) 구단을 유치했다. 이번 시즌 두 팀이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경기장이 꽉꽉 찬다. 소규모 콘서트와 국제 콘퍼런스도 자주 열린다. 지하 다목적공간은 시민들의 무용·합창·연극 연습장으로 인기다. 장충동 족발집들도 덩달아 호황이다. 우리가 바라는 그림대로 가고 있다.

이 시설들의 지속적인 흑자 운영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우리 어릴 때는 ‘스포츠는 전문인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편하고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경험한다. 그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경험의 가치를 세련되게 제공하면 된다. 사람들은 내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쓰기를 바란다. 이 트렌드를 잡아채면 된다.

전국 곳곳에 ‘하얀 코끼리’들이 많은데.

매우 조심스럽다. 우리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각 시설의 운영 방향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관과 시민, 경기 단체와 건설사 등이 자주 모여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방향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

이지윤 이사장은 PR 전문가다. 그는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부드러운 여성 리더십으로 공단 직원들의 마음을 샀다. 이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존중하는 마음으로 경어를 쓰고, 지적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 더불어 민간에서의 경험을 살려 민관협력, 이해관계자의 소통을 통한 협치에 주력하면서 지금의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201904호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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