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J. Paul Getty 

구두쇠 재벌과 예술 

2017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범죄 스릴러 영화, 'All the Money in the World'가 개봉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1973년 실제 있었던 진 폴 게티 납치사건이 배경이다. 억만장자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그가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한 게티센터는 역작으로 남았다.

▎Aerial view of the Getty Center, Photo by John Stephens ⓒ2000 J. Paul Getty Trust
영화는 진 폴 게티가 손자, 진 폴 게티 3세를 납치한 범죄 조직 마피아 그룹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는 내용이 중심이다. 납치범들은 몸값으로 17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존의 어머니는 시아버지에게 몸값을 지불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진 폴 게티는 다른 가족을 또 납치할 것이라는 변명으로 거절한다. 결국 납치범들은 손자의 귀를 잘라 내 신문에 싸서 가족에게 보내며 돈이 지불될 때까지 그의 몸을 계속 절단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시간을 끌어가며 가격을 400만 달러로 낮추었고 게티는 마침내 몸값을 지불하기로 결정하지만 100만 달러에 불과했다. 100만 달러는 세금 공제 금액으로 청구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었다.

이 영화는 미술계에서 이미 중요한 교육적·예술적 사명과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미술관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부추겼다. 실제 게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부터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쳐 모던아트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모든 분야의 예술 작품들을 수집해왔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명작의 이미지 사용의 소유권도 게티 재단이 갖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게티는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을 가슴에 안은 채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순간조차도 예술만이 위로가 됐다. 다섯 번 결혼하고 스스로 자서전에 ‘결혼은 모두 실패했다!’라고 말했던 게티는 구두쇠 억만장자이며 바람둥이였다. 그러나 그는 천재이며 예술을 극도로 찬양한 예술 애호가였다. 대중이 자신이 사랑했던 예술 작품들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광대한 미술관을 건설하는 꿈을 실현한,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진 폴 게티는 1892년 미니에폴리스Minneapolis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조지 게티의 외아들로 아버지는 석유사업의 전망을 확신했었다. 그는 이렇게 아버지의 권유로 석유사업에 첫발을 디뎠다. 1904년 오클라호마로 이주했고 2년 뒤에 가족은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미네호마 오일 회사를 경영하던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 15세에 석유 사업을 배워갔다. 당시 아버지는 아들에게 급여로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하루 3달러를 주었다. 게티는 1913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 학위를 받기 전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과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도 수학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시 석유 탐사만을 위해 1년을 고스란히 헌신할 것을 제안했다. 사실 다재다능한 게티는 작가나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동시에 아버지가 열광했던 석유 사업도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고작 23세였지만 유전을 찾는 재능이 탁월했던 게티는 연이어 성공을 거두어 이미 백만장자가 됐다. 1916년 결국 게티 오일 회사(Getty Oil Company)는 아버지-아들의 파트너십으로 통합됐다. 1930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게티는 게티오일의 회장이 된다. 1950년에는 타이드워터, 스케리, 미션 등 3개 석유회사를 매수했다


▎Visitors walking up Museum staircase, Photo by John Linden ⓒ2002 J. Paul Getty Trust
1960년대 유전 탐사에서 선적에 이르기까지 모든 석유 생산 분야를 다루는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며 호텔 등 부동산 사업과 모바일 사업, 탱커, 특수 항공기 제작 등 다른 분야에도 진출했다. 그는 사업장인 중동지역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국에서 1959년부터 거주했으며 1951년 이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지 않았다. 게티는 83세 나이에 1976년 6월 6일에 전립선 암으로 사망했고 말리부에 있는 개인 묘지에 묻혔다. 그의 사후 게티오일사는 1988년 텍사코사에 흡수됐다.

LA에 방문하면 꼭 가봐야 할 박물관들이 있다. 더브로드, LACMA, MOCA, 해머 미술관, 마르시아노 아트 재단(MAF) 등.


▎The J. Paul Getty Museum Courtyard at dusk, Photo by Alex Vertikoff ©2003 J. Paul Getty Trust
이 박물관 대부분이 개인 컬렉터들의 소장품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절세라는 혜택이 있다. 프랑스도 기업이 작품을 구입할 경우 그 작품이 5000유로 이상이며 대중에게 공개하는 장소에 설치하는 조건을 충족할 경우 기업에 절세 혜택을 준다. 그리고 개인이건 기업이건 세금 대신 작품으로 납부하는 다시옹(Dation) 제도도 애용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피카소 미술관이다. 유산으로 받은 작품들의 가치가 엄청나 상속세 대신 작품으로 기증한 것이 현재 파리 피카소 미술관이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미술시장의 역사도 유럽 작가들과 화상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터라 매우 짧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방식으로 유럽의 역사를 따라잡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절세 혜택이다. 미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예술품을 모으고 기증하고 개인 박물관을 만들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이것은 미국 현지의 대중뿐 아니라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 손꼽히는 방문지이기 때문이다.

진 폴 게티는 다가올 21세기에 예술의 중요성을 점쳤다. 유전을 찾았던 예리한 안목을 미술 쪽에서도 발휘한 것이다. 그는 다수의 그리스·로마 조각상과 폼페이 벽화, 이탈리아·프랑드르·네덜란드의 근대회화, 서아시아의 카펫, 프랑스 특히 루이 14세시대의 가구와 타피스리 등 서로 다른 세기에 제작된 여러 문명 작품들을 수집했다. 시아신트 리고(Hyacinthe Rigaud)가 1701년에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복제한 그림은 예술, 문학, 음악을 통한 절대왕정을 이룩한 루이 14세를 동경했던 게티의 마음이다.

304만m² 규모 게티센터


▎Irises, 1889, Vincent van Gogh. ©The J. Paul Getty Museum
택시를 타고 박물관에 도착하니 계단을 올라가야 트램을 타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전 세계 미술관 중에 트램을 타고 박물관 본관에 도착하는 곳이 또 있을까? 트램을 타고 언덕에 올라 박물관에 도착하니 흰색 석회암으로 조성된 304m²(92만 평)의 게티센터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 베이지색 돌, 트래버틴은 이탈리아 티볼리산으로 자그마치 1만6000톤에 이른다. 주변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은 산타모니카산 정상에 자리한다.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1997년에 개관한 게티센터는 게티가 1976년 세상을 떠나며 재단에 기부한 자산 7억 달러를 바탕으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1934)가 완성했다.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 케빈 로시(Kevin Roche),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는 백색 건물과 빛에 대한 연구로 공간과 구조 면에서 르 코르뷔지에와 흡사한 공통점을 지닌다. 1984년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며 프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Museum of Decorative Arts), 애틀랜타의 하이뮤지엄(High Museum of Art)등 유럽과 미국의 박물관 건축에 탁월함을 드러냈다. 모든 건축물마다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자연축과 주변 조건에서 대지축을 찾아 배치하는 계획에 반영하는데 게티센터는 그의 건축 이념을 그대로 수용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마이어가 게티 미술관에 쏟아부은 백색은 모든 자연색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색채다. 왜냐하면 백색 표면은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마이어의 백색 건축물은 그의 건축 개념을 명료히 하면서 낮에는 눈부시게 밝게 빛나고 밤에는 은빛으로 변한다.

뮤지엄 입구의 홀을 지나면 왼쪽 북쪽 전시관에는 회화와 조각 및 장식 예술, 필사본 등 1700년대 이전의 예술이 전시되어 있다. 같은 왼쪽의 동쪽 전시관에서는 1600~1800년대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홀 정면의 남쪽 전시관에는 1600~1800년대 회화와 장식예술 등이 전시 중이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서쪽 전시관에는 1800년대 이후의 예술품들로 채워졌다. 고흐의 작품들을 포함해 회화, 조각, 장식, 드로잉, 사진 등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이렇게 4개관으로 나뉜 건물들은 소장품의 성격을 달리한다.


▎J.Paul Getty (1892~1976) J. Paul Getty photographed by Yousuf Karsh, 1964 Research Library,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Photo by Yousuf Karsh, ©The Estate of Yousuf Karsh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는 회화 작품으로 렘브란트의 ‘웃는 자화상’, 프라고나르의 ‘사랑의 샘’, 고흐의 ‘아이리스’, 세잔의 ‘사과 정물화’, 엔소르(Ensor)의 ‘그리스도 브뤼셀 입성’, 마네의 ‘봄’, 터너의 ‘모던로마-캄포 바치노’ 등이다. 조각 예술품으로는 쟈코메티의 ‘서 있는 아네트’ 등이다.

건물 내부에 비치는 자연광은 컴퓨터로 제어되는 인공조명과 함께 부드러운 빛을 드러낸다. 전기 소모를 최대한 줄이는 시스템을 자랑하는 내부 전시 구조와 사막의 경치를 재현한 외부 정원과의 조화가 대조를 이룬다. 센트럴 가든은 단순한 랜드스케이프가 아닌 예술 작품 자체의 의미 추구한다. 첫눈에 보이는 정원은 마이어의 고전적인 모더니즘의 기하학적 형태와 대조된다. 그리고 게티센터에 미적인 감성을 통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예술가 로버트 어윈(Robert Irwin)에게 의뢰한 센트럴가든은 마이어의 건축물에 응답하는 재그재그 산책로 등 풍부하고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성을 강조한다. 로버트 어윈은 센트럴 가든을 ‘예술의 차원으로 거듭난 정원의 형태를 빌려 탄생한 조형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예술 전시 빛나는 게티빌라


▎“la Machine d’Argent” or Centerpiece for a Table 1754, François-Thomas Germain. ⓒThe J. Paul Getty Museum.
관람자들은 게티센터를 방문한 뒤 게티빌라로 발길을 돌린다. 게티센터에서 말리부까지는 차량으로 약 40분가량 소요된다. 1974년, 말리부에 있는 개인 저택에 개관한 첫 갤러리에 이어 지은 게티빌라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힌, 헤르쿨라네움에 있는 ‘빌라 데이 파피리’를 모델로 했다. 게티빌라는 1997년 7월 6일 보수 공사를 마쳤다. 게티빌라의 사명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대 예술의 전시, 보전 및 해석에 전념하는 것이다.

박물관 건물은 원래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건축가, 마차도와 실베티는 메인 입구 이동, 상단 갤러리에 채광창 설치, 7060m² 규모의 주변 구조물 추가 등을 담당했다. 또 게티보존연구소(Genty Conservation Institute)와 UCLA 코 츠젠 고고학연구소(Cotsen Institute of Archeology) 간의 협력으로 고고학에 관한 새로운 연구의 본거지가 됐다.


▎Juggling Man, about 1615, Adriaen de Vries. ⓒThe J. Paul Getty Museum.
로돌포 마차도(Rodolfo Machado)와 호르헤 실베티(Jorge Silvetti)는 1974년부터 함께 작업하고 있는 보스톤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들이다. 실베티는 American Architecture Award, Los Angeles Business Council Best Civic Architecture Award, Boston Society of Architects Honor Award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시각예술 분야의 문화 및 교육기관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게티박물관, 게티연구소, 게티빌라는 개인 수집가들에게 훌륭한 모델이다. 생전에 괴짜로 불리었던 진 폴 게티는 게티박물관과 게티빌라를 통해 예술이 미래에 보존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게티는 대중의 존경을 받는 컬렉터로 영원히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The Ascension, designed about 1410; completed about 1431, designed by lorenzo Monaco, and completed by Zanobi di Benedetto Strozzi, and Battista di Biagio Sanguini. ⓒThe J. Paul Getty Museum



▎outer Peristyle at the Getty Villa Photo by elon Schoenholz ⓒ2018 J. Paul Getty Trust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904호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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