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한국 기업 중 어디를 보고 배워야 하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얼마 전 회사에서 ‘차세대 리더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국 기업 중에 가장 승계가 잘된 기업을 조사했다. 의외로 100점짜리 기업이 없어서 차선으로 두 중견기업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다가 이 두 기업을 배우려 한다고 했더니, ‘그 기업들에게 배울 게 뭐가 있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한국 기업 중 어디를 보고 배워야 하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 회사가 지난 19년간 배우려 했던 기업들을 보니 한국 기업보다는 미국 기업이 더 많았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당시 잘나가던 소니와 노키아의 사업전략과 마케팅 등을 공부했는데, 이들 기업도 시장 트렌드를 놓치더니 빠르게 쇠락했다. 반도체 장비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제조사, 장비·소재 회사들을 보고 많이 배웠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주로 벤치마킹했다. 기업문화, 경영전략, 마케팅, 공급망 관리, 인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 두 기업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교재였다. 해외 기업으로는 아마존과 구글에서 많이 배웠다. 한때 아마존과 월마트를 비교하면서 배우기도 했는데, 이제 월마트는 아마존보다 매출이 3배나 많으면서도 시가 총액은 절반에 불과한 저물어가는 회사가 되어버렸다. 1994년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창업했을 때부터 아마존에서 수많은 책과 서비스, 상품을 사면서 아마존의 사업전략과 고객 집중적 비즈니스 모델, 추천엔진, 시장과의 처절한 투쟁사를 지켜보며 교훈을 얻었다.세상은 도도하게 변한다. 옛날에 100년 동안 겪은 변화가 요즘은 몇 년 안에 일어나는 것 같다. 10여 년 전에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는 엑슨모빌, GE, 시티그룹, BP 등 에너지, 금융회사들이 휩쓸었는데, 요즘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계 IT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배우려고 했던 기업들은 시대 트렌드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시대를 초월해서 모범이 되는 기업은 없었다.
다만 벤치마킹할 만한 한국 기업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서운하다. 필자가 20대였을 때는 불도저 같은 정주영, 컴퓨터 같은 이건희, 세계를 무대로 뛰는 김우중 같은 기업인들이 영웅처럼 느껴졌는데, 요즘 한국에는 그 정도로 존경받는 기업인이 별로 없는 것 같다. 21세기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주도하는 시대인데, 미국, 중국같이 큰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스타 기업인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