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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혁신 이끄는 한국의 핀테크 CEO 

 

장진원 기자 jjw@jooang.co.kr
기술로 무장한 혁신기업들이 이전엔 없던 새로운 금융 플랫폼을 창조하고 있다. 포브스코리아가 국내 핀테크 산업을 선도하는 CEO 세 명을 차례로 만나 금융혁신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봤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김민정 크레파스솔루션 대표가 주인공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ICT 기술의 발전은 금융의 보완재 수준에 머물던 핀테크를 새로운 금융을 창조하는 주인공 자리에 올려놓았다.
개인 방화벽과 키보드보안, 바이러스백신은 ‘보안 3종 세트’라 불렸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배너광고에 뜬 근사한 옷 한 벌 사고 싶어 쇼핑몰에 접속하면 이내 각종 보안 프로그램 설치라는 장애물을 넘어야만 했다. 악명 높았던 액티브엑스나 공인인증서 설치는 또 어떤가. 물건 하나 사려 해도, 송금 한 번 하려 해도 수많은 단계를 통과한 이들에게만 금융거래가 허락됐다.

지난 2015년 정부는 보안 3종 세트와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규제를 폐지했다. 금융감독원이 쥐고 있던 보안성 심의제도도 사라졌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현재, 모바일 금융거래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에 내 계좌나 신용카드를 저장해두면, 비밀번호 한 번 입력만으로 모든 결제가 완료된다. 화면 터치 몇 번마저 불편한 귀차니스트라면 지문이나 홍채 인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페이’로 불리는 간편결제 시스템이 진화한 결과다. 개인 간 송금은 계좌번호를 몰라도 휴대폰 번호나 이메일 주소, 심지어 SNS에서 친구 이름만 터치하면 간편하게 해결된다.

금융혁신 보완재서 주인공 된 핀테크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제가 폐지된 이후 4년 만에 확연히 달라진 금융거래의 양상은 핀테크(Fintech)를 통한 혁신 덕분이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핀테크가 어느 날 외계에서 뚝 떨어진 개념은 아니다. 은행의 여수신 시스템은 핀테크란 용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전산화돼 있었다. 심지어 온라인 주식 거래에 특화된 증권사도 있으니, 따지고 보면 핀테크는 알게 모르게 이미 금융생활의 기반을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쉽고 편리한 금융을 위한 소프트웨어’ 정도를 뜻하던 핀테크의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거품을 통한 돈놀이가 어려워진 거대 금융사들이 수익보전을 위해 시스템 개혁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ICT의 영향력과 위상이 비약적으로 확대됐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발달은 핀테크를 ‘금융 보완재’에서 금융혁신을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탈바꿈 시켰다.

2000년대 들어 영미권을 중심으로 ICT 기술로 무장한 간편결제나 크라우드펀딩, P2P 대출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며 핀테크는 금융혁신과 동일어가 됐다. 국내에서는 2014년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을 계기로 금융규제 개혁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입고 나온 옷이 한류 바람을 타고 해외서도 인기지만, 정작 공인인증서가 없어 구매를 포기하는 사례를 질타한 내용이었다. 정부는 당장 그해 7월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간편결제 도입에 나섰다.

그로부터 4년여 후, 기술이 이끄는 생활과 금융의 변화는 실로 눈부시다. 대표적인 핀테크 서비스인 간편결제 시장의 성장은 핀테크 산업의 성장세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과 카드사, 전자금융업자 등 총 43개사가 간편결제 서비스 50종을 내놓고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전체 가입자 수는 1억7000만 명에 달한다. 이용 건수도 2016년부터 비약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말에는 23억8000만 건을 기록했다. 간편결제를 통한 결제금액은 2018년 말 80조1453억원에 달해, 2016년(20조8808억원) 대비 3배나 늘었다.

간편결제 사업자를 봐도 과거와 달라진 트렌드가 읽힌다. 네이버, 카카오페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쿠팡 같은 ‘전자금융업자’의 지난해 결제금액(30조8000억원)은 카드사(27조1000억원), 단말기제조사(삼성페이 등 20조7000억원), 은행(1조4000억원) 등 기존 강자들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국내 핀테크 기업 수를 대략 500여 개로 추산한다.

규제혁신 날개 달고 폭발적 성장


핀테크 비즈니스는 크게 간편결제 및 송금, P2P 대출을 포함한 크라우드펀딩, 블록체인 및 암호(가상)화폐 등으로 분류된다. 과거 금융전문가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되던 자산관리업은 이미 로보어드바이저가 보편화됐고 민트·크레마·뱅크샐러드 같은 핀테크 기업의 영향력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으로 커졌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의 발달로 기술적 재료로 활용하던 데이터 자체가 주요한 핀테크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격상됐다. 고객의 재무정보나 행동분석을 통해 그에 맞는 금융상품을 개발하거나 부정방지, 신용평가, 고객관리 시스템 등에 활용하는 식이다. 데이터 자체, 혹은 이를 분석하는 능력이 곧 돈이 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때마침 정부당국도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과거 어느 때보다 팔을 걷어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보다 더 전향적인 때가 없었다”고 입을 모으며 달라진 정부의 규제 혁신 기조를 반기고 있다. 지난 4월 17일 금융위가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선정한 혁신금융서비스 9건 지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이 밖에도 ‘지정대리인’ 제도 등 핀테크 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금융 테스트베드 운용에도 적극적이다. 금융위는 지난 3월 비바리퍼블리카(SC은행), 팝펀딩(IBK기업은행), 마인즈랩(현대해상), 핑거(NH중앙회), 크레파스솔루션(신한카드) 등 핀테크 기업 5곳을 지정대리인으로 선정해 최대 2년간 금융사 고유의 핵심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게 했다.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빅데이터와 AI 등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다지만, 국내 핀테크 산업은 아직 영미권이나 중국에 비해 크게 뒤처진 상태다. 한 업계 CEO는 “기술 고도화는 이미 선진국을 많이 따라잡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개발자 풀 자체가 너무 작다”고 토로했다.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당장 대학 전공 다변화나 정원 확대 등 핀테크를 이끌어갈 맨파워를 키우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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