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노르웨이/오슬로 & 오스고르스트란(Oslo & Åsgårdstrand) 

북유럽 자연 속 화가 뭉크의 소박한 보금자리 

뭉크의 대표작은 [절규]다. 이 작품에서 보듯 뭉크의 작품이라면 불안, 고독, 삶과 죽음을 담은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 위의 소녀들]처럼 오로지 밝음과 평온함이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뭉크는 작은 마을 오스고르스트란에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이것이 그대로 그의 작품에 투영되었던 것이다.

▎오스고르스트란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진 뭉크의 집. 오른쪽 집은 뭉크의 아틀리에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기념품 매장이다. / 사진:정태남
언덕에서 오슬로 항구를 내려다본다. 지중해의 태양처럼 눈부신 북유럽의 여름 태양을 가슴에 가득 안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오 솔레 미오(O sole mio)’가 ‘오슬로 미오(Oslo mio)’로 바뀌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오슬로에서는 여름 몇 달 동안은 한밤중에도 하늘이 밝아서 늦은 밤에도 삶의 환희를 노래하는 모습이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런 반면에 일 년 중 동지인 12월 22일 전후 몇 달 동안은 하루에 빛이 불과 몇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이곳에는 우울함으로 가득한 어둠의 세계가 펼쳐진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


▎뭉크에게 영감을 주었던 오스고르스트란의 해변과 바다. / 사진:정태남
인구 500만 명의 노르웨이의 위상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인물 세 명을 꼽는다면 단연 음악가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 극작가 헨릭 입센(Henrik Ibsen),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다. 화가 뭉크의 대표작이라면 단연 [절규]다. 이 그림은 색과 형태를 왜곡하여 극히 개인적인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했지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많은 현대인이 공감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절규]는 모두 4개 버전이 존재하며 판화 버전도 몇 개 있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 / 사진:정태남
사실 그의 작품을 보지 않고서 오슬로를 봤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오슬로는 뭉크와 여러모로 관련 있는 도시다. 1864년 오슬로 북쪽 뢰텐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오슬로로 이주하여 유년 시절을 보냈고, 성장해서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으며 또한 그의 생애 마지막 20년을 이곳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절규]에서 보듯 뭉크의 작품이라면 불안, 고독, 삶과 죽음을 담은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가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날인 동지를 열흘 앞둔 12월 12일에 태어났으니, 애초부터 어두움을 타고난 운명이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그가 겪었던 어두운 삶과 관련되어 있다. 즉, 1868년 그가 5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1877년 그가 14살 때는 누나 소피(Sophie)마저 결핵으로 사망했다. 또 여동생 하나는 정신병을 앓았고, 남동생은 결혼한 뒤 몇 달 만에 죽었다. 그 자신도 병약했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 이처럼 그의 삶은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처럼 어두웠던 그의 삶이 투영된 작품이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이와 완전히 다른 작품들도 눈에 띈다.


▎뭉크의 [다리 위에 선 소녀들]. 밝음과 평온함이 느껴진다. / 사진:정태남
그중 [다리 위의 소녀들]은 밝은 여름 하늘 아래 세 소녀가 다리 위에 서서 잔잔한 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뭉크 특유의 어두움과 불안함은 화면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고 ‘오 솔레 미오’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밝음과 평온함이 느껴진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려 살던 뭉크는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작은 마을 오스고르스트란


▎오스고르스트란의 선착장 다리에서 본 [다리 위에 선 소녀들] 그림과 비교한 배경 모습. / 사진:정태남
이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은 상상의 장소가 아니라 오스고르스트란(Åsgårdstrand)이라는 마을이다. 이 명작의 현장에 대한 호기심을 가눌 수 없어 마침내 오슬로에서 오스고르스트란을 향해 자동차 편으로 오슬로 협만의 서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약 100㎞쯤 갔을 때, 멀리 호수처럼 펼쳐진 잔잔한 바다가 뒤로 보이는 오스고르스트란의 모습이 나타난다. 노르웨이어로 오스(Ås)는 ‘산자락의 끝’, 고르(gård)는 ‘정원’, ‘들’, 스트란(strand)은 해변이란 뜻이니, 이곳의 지형은 지명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웬만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작은 마을이라서 길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주택가를 따라가다 보니 뭉크의 그림이 붙어 있는 우체통이 있는가 하면, 창가를 꽃과 절규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장식한 집도 보인다. ‘뭉크의 마을’답다고나 할까. 해변 거리에 들어서니 작은 배들이 정박된 해변에는 그림에서 보던 선착장의 다리가 보이고, 이 다리 위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니 [다리 위의 소녀들]의 장면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진다.


▎오스고르스트란의 선착장 다리에서 본 작은 배들과 언덕 위의 집들. / 사진:정태남
레스토랑과 관광안내소가 있는 하얀 건물 안에 들어섰다. ‘뭉크의 오스고르스트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뭉크가 그린 바다에서 달이 떠오르는 그림이 있는 관광안내 포스터가 멀리서 온 여행자를 맞이한다. 오스고르스트란은 2007년에 ‘관광 마을’로 지정되어 호텔, 은행, 화랑, 레스토랑, 카페, 와인바 등이 있다. 노르웨이에서 관광 마을이 되는 필수 조건은 연중 방문객이 현지 주민 숫자보다 많아야만 한다는 것. 이 지역의 현재 인구는 3000여 명에 이른다.

소박한 행복의 보금자리


▎뭉크의 가재도구가 보존되어 있는 오두막집 내부. / 사진:정태남
이곳은 1880년 이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목재를 네덜란드로 수출하던 작은 항구였다. 그러다가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르웨이 화가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는 6월이 되면 낮의 길이가 현격하게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이곳은 해변이라서 빛이 더욱더 풍부한 데다가 스칸디나비아반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온화하다.

뭉크는 20대 초반의 청년 시절이던 1880년대 중엽, 이곳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그는 속세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마음속 깊이 드리워져 있던 번뇌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 후 여름이 되면 이곳을 찾았고 올 때 마다 집을 빌렸다. 그러다가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수입이 많아지자 1898년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어느 가난한 어부가 살던 작은 오두막집을 구입했다. 이듬해에는 바로 옆에 작은 아틀리에도 세워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동안 파리와 베를린에서 떠돌이로 살다가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 집은 화려함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정원과 주변의 꽃과 나무, 확 트인 바다, 반짝이는 모래밭, 바다 위로 떠오르는 달,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까지 이제 그의 소유가 됐다. 이처럼 자연의 노래가 들려오는 곳에서 뭉크는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이것이 그대로 그의 작품에 투영됐다. 또 그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도 친절하고 순박한 이곳 사람들을 무척 좋아했다. 뭉크는 여름철을 이곳에서 보내고 나면 주로 외국에서 활동했는데, 오스고르스트란을 떠나 있을 때는 그들을 그리워하기도 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들에게 돈과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활동했던 파리 교외에는 루이 14세를 위한 베르사유 궁전이, 베를린 교외에는 프리트리히 대왕을 위한 상수시 궁전이 있지만, 뭉크에게는 오스고르스트란의 소박한 오두막집이야말로 왕들을 위한 화려한 궁전보다 훨씬 더 값진 행복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이곳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서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에 라일락 향기가 흩날린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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