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였던 1980년대까지 유엔에서는 에스페란토어가 사용됐다. 물론 지금은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언어에 대한 관심이 남들보다 많았다. 단어가 가진 의미가 시대에 따라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보았고 수년 전부터 ‘하나도 없다’가 ‘1도 없다’로 바뀌어 쓰이는 것도 목격했다. 냉전시대였던 1980년대까지 유엔에서는 에스페란토어가 사용됐다. 물론 지금은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공어이기도 하지만 영어가 확산된 탓이 크다. 사실상 에스페란토어는 죽었다. 20년 전까지는 미디어가 언어의 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 선진국을 따라가는 시대였기에 해외에서 들어오는 용어를 번역해 소개했다. 때로는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생경한 용어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사회가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블루오션’이나 ‘넛지’ 같은 용어가 생활 속 단어로 스며드는 데 미디어의 역할은 매우 컸다.지금은 스마트폰의 발달로 언어의 진화가 과거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즉 과거에는 기존 언어에 새로운 용어나 단어가 뛰어들어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감정 변화나 문자의 변형을 통해 언어의 구조나 용태가 바뀌고 있다. 사고가 글로벌화되면서 영어나 일본어와 결합된 신조어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시대가 됐다. 언어유희로 의미는 유지하면서 단어가 바뀐 사례로 ‘당근’이 있다. 정확히 언제 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당연하지’란 말이 ‘당근이지’로 불리면서 ‘당근’은 ‘말밥’으로까지 진화했다. 영어가 결합된 ‘프로 불참러’도 이제는 일상적으로 쓰인다. 줄임말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갑분싸’는 기본이고 SNS에서 자음으로만 감정을 표현하는 ‘ㅋㅋ’도 널리 사용된다.
최근 ‘저건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 일이 있었다. 미디어에서 별다른 생각 없이 쓰는 ‘마(魔)의 ~돌파’와 같은 말이다. ‘마(魔)’라는 단어는 악마나 귀신을 뜻한다. 지난해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300조원을 돌파하자 어느 신문에서 ‘마의 300조원 돌파’라는 표현을 했다. 어려운 걸 해냈다는 뜻으로 ‘마’를 붙였겠지만 삼성전자에는 아주 좋은 일인데 여기에 ‘마’라는 단어를 구태여 쓸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우리가 쓰는 한자 중에는 수천 년이 된 것도 있다. 당연히 시대도 바뀌고 과학은 발달했다. 잘 따져보면 이젠 완전히 필요 없어진 한자 단어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한번 솎아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어의 진화에는 시대가 반영된다. 그리고 문화적 DNA도 한몫을 한다. K팝을 접한 외국인들은 노래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 한다. ‘오빠’라는 단어는 글로벌 단어가 됐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언어는 끝없이 진화한다-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