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조지선의 ‘리더 습관’(6) 

역사상 가장 위대한 창작가들처럼 일하라! 

뛰어난 창작가들에게 루틴한 일상은 작업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들은 일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대신 창작활동에 집중했다. 또 일상에서 자유시간을 확보했다. 메이슨 커리가 위대한 창작가 161명을 조사해보니 ‘산책’이 그들의 창작공장이었다.

살아남는 조직을 만들려면 리더가 창의적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어쩌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건 장사꾼들의 세상에서 진리다. 지금은 비즈니스가 예쁘게 굴러가도 언제까지 우려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걸 어떻게 개선할까? 아니야, 판을 새로 짜야겠어!” 파고를 넘어 살아남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리더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매달린다.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뛰어난 창작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창작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특성은 대충 이렇다.

남의 손에 자신의 하루를 맡기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다.
결정권과 유연성이 보장될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낸다.
별명은 자유로운 영혼. 자유를 빼면 그들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써놓고 보니 조직 리더의 모습과 제법 겹친다. 시공간의 제약을 경계하고 남들의 결정을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결정한다. 지시와 참견이 배제된, 자유가 보장된 조건에서 펄펄 난다. 리더의 모습 아닌가!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가? 얼마 전 승진한 기업 임원에게서 하소연을 들었다. “숨도 못 쉬겠네요. 제 캘린더가 남의 캘린더가 됐어요. 마구 스케줄을 집어넣어요.”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었던 인물들은 어떻게 일했을까? 그들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때 참고할 만한 책은 『리추얼: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이다. 저널리스트 메이슨 커리가 지난 4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창작가들로 손꼽히는 161명의 일상을 정리했다. 제목부터 맘에 든다. 창의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벌써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아, 그들은 방해로부터 자신을 지켰구나!

습관은 작업 효율성 극대화하는 장치

그런데 거저 얻은 공통점은 여기까지. 창작가들의 습관은 그들 인생과 작품의 굴곡만큼 갖가지 모양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모닝 미라클을 실천했다? 창조적 생산성은 엄격한 시간관리의 산물이었다? 이런 식의 공통점은 없었다.

창의적인 인물을 보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모범형도 있지만 “저렇게 살아도 된다는 말인가!” 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탈형 지성도 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약물에 절어 살았다. 코리드란(1971년에 독극물로 지정된 약물)이라는 흥분제를 권장량의 10배씩 매일 복용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아침을 사랑했다. 5시 30분에 어김없이 일어나 글을 써 내려갔으며, 자만하지 않으려고 그날 쓴 단어의 수를 기록해두었다.

창작가들이 일하는 방식은 그들의 작품만큼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관통하는 두 가지 특징만큼은 상당히 반복적으로 관찰됐다.

첫째, 지루하고 단조로운 루틴으로 채워진 하루, 이로 인해 얻은 역설적 자유! 그들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았다. 일을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루를 보내는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창작물과 달리, 예술가의 일상은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예측 가능했다.

시인이자 크리에이티브 코치(창작가들이 예술적 야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인 마크 맥기네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가들은 루틴을 반복하며 살아야 가장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대 뇌과학이 밝힌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안 것이죠.”

찰스 디킨스의 일상은 창작가 루틴의 결정체다. 리추얼에 소개된 그의 하루는 다음과 같다. 7시~8시 아침 식사, 9시~2시 글쓰기(짧은 점심 식사 포함), 2시~5시 산책하며 소설 줄거리 구상, 5시~12시 저녁 식사 및 휴식.

다작가인 디킨스는 매일 많은 단어를 쏟아냈지만, 가끔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도 디킨스는 예외 없이 서재에 혼자 머물렀다. 창밖을 보며 시간을 보낼지언정. “시청 공무원도 아버지보다 규칙적이지 않았어요. 상상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기계처럼 규칙적으로 행동하셨죠.” 디킨스의 아들은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했다고 전해진다.

이쯤 되면 족쇄가 아닌가. 창작가들은 습관의 노예였을까? 가장 자유로운 영혼들이 스스로 선택한 건조한 루틴. 아마 누군가 그걸 요구했다면 천 리 밖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디킨스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생산한 자유로운 결과물은 그들이 자유를 만끽했다는 방증이다. 껍데기는 속박처럼 보이나 습관이 예술가들에게 더 큰 자유를 선물한 건 아닐까?

“습관은 정신적 자유와 유연성을 선물합니다. 잡다한 일상적 활동들을 자동조종장치에 실어버리면 당신의 뇌는 중요한 일에 만 집중할 수 있죠.” 뇌과학자인 조 치엔에게 습관은 자유다.

습관 덕분에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다음 네 가지다. 의식하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는다. 결정하지 않는다. 힘쓰지 않는다. 그러면 이 분량만큼의 에너지가 여유분으로 남게 된다.

습관은 기억, 뇌에 새겨진 단서와 행동의 연합이다. 그러니까 ‘자동’이라는 얘기다. 디킨스의 습관은 ‘9시라는 시간 단서’와 ‘서재로 들어가는 행동’ 사이에 생긴 신경생물학적인 연결이다. 9시가 되면 이 ‘연결’이 활성화되고 디킨스는 자동적으로 서재로 들어간다.

뛰어난 창작가들에게 일상 루틴은 작업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루틴은 일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습관은 활발한 뇌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행동 대안들을 떠올릴 틈을 주지 않으니 유혹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쪼금 내어주고 어마하게 받은 것이다.

창작가들의 두 번째 특징은 오전과 오후가 확연히 구분된 일상이다. ‘오전 작업’과 ‘오후 산책’. 꽉 찬 오전과 헐렁한 오후. 밤낮을 거꾸로 산 사람도 있었지만 절대 다수는 핵심 작업을 아침 8~9시부터 오후 2~3시경까지 진행했다. 오후엔 걷고 또 걸었다. 메이슨 커리가 조사한 창작가 161명을 대상으로 취미 동아리를 만든다면 단연 산책 클럽이 1위다.

심리학자 칼 융은 아침 시간에는 집필에 몰두했고 오후에는 주변 언덕을 오랫동안 산책했다. 차이콥스키는 정확히 정오에 작곡을 멈추고 오후 2시간 산책을 미신처럼 철저하게 지켰다. 중간에 악상이 떠오르면 지체 없이 기록해두었다. 베토벤은 새벽에 일어나 잠시도 낭비하지 않고 작업에 돌입했는데 항상 커피콩 60개로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오후 2~3시까지 일한 후, 남은 오후의 대부분을 산책에 할애했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일찍 일어나 오전에 글쓰기에 집중했고, 오후엔 두 시간가량 산책했으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발사를 찾아 수염을 다듬었다.

하루 24시간 동안 내 몸은 리듬을 탄다. 해가 뜨고 높이 올랐다 질 때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 움직임, 생각, 느낌도 장단을 맞추어 뜨고 진다. 그래서 일해야 할 때가, 누워야 할 시간이 있다. 먼 산을 올려다보며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있고 깨알 같은 글자들을 헤집어야 할 때가 있다.

심리학자 마릴리 오페조는 이렇게 조언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나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한 주제를 고르세요. 그리고 산책에 나서세요.” 그는 실험참가자들에게 4분 동안 일상용품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라고 주문했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혹은 러닝머신에서 걸으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두 조건이 있었는데 4분간 걷기의 힘은 놀라웠다. 앉은 조건의 참가자들이 유효한 아이디어 22개를 낸 반면 걷는 조건의 참가자들은 50%가 더 많은 33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혁신을 꿈꾸는 리더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까? 메이슨 커리의 소감을 들어보자. “위대한 창작가들도 자신의 성장을 확신하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내어 작업을 완성해냈다. 특별한 일탈에서 영감을 얻기보다는 더 깊이 자신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은 무엇인가? 작가에겐 집필, 음악가에겐 작곡, 학자에겐 연구가 있다. 나는 일을 위해 일상을 파고드는가?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나만의 루틴은 무엇인가? 나의 하루에는 시간과 마음의 공간이 있는가?

창작가들은 오전에 집중하고 수렴했다면 오후엔(혹은 그 반대) 잠시라도 내려놓고 흩어버렸다. 그들은 작업 속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알았다. 내 캘린더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공간을 만들어 산책을 나가면 어떨까? 많은 일을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창의성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도 계속 걸어 다녔다. 그의 혁신이 산책에서 태어난 것은 아닐까?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201909호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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