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조지선의 ‘리더 습관’(8) 

당신의 그릿(GRIT, 열정적 끈기)은 무엇입니까  

육군사관학교 죽음의 훈련에서 살아남는 생도, 문제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 꾸준하게 높은 판매 성과를 올리는 영업사원. 그들은 남들과 무엇이 다를까? 성과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인은 IQ도, 신체적 건강도 사회적 지능도 아닌 그릿(grit)이었다. 적은 에너지로 일을 지속하게 도와주는 습관 안전망이다.

“아, 집에 가기 싫다. 하던 일 계속하고 싶은데,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려?”

직원들이 이런 말을 밥 먹듯 한다면, 조만간 우리 회사가 대박사건을 낼 것이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즐겁게 상상해본다. 누군가 비타민처럼 복용할 수 있는 특효약을 개발했다. 사람의 마음에 열정을 심어주는 신통한 효험을 지닌 ‘동기 충전 비타민’이다. 다른 거 필요 없다. 패배감이 몰려올 때, 특히 우울한 일요일 저녁에 한 알 삼키면 매직이 시작된다.

성취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히 동기(motivation)다. 마음이 동(動)해 일하는 자를 누가 막으랴.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오랜 진리에 ‘즐기기만 하면 뭐가 되냐’는 식으로 딴죽 걸면 안 된다. 즐기는 것은 ‘동기가 부여된 상태(motivated)’를 말한다.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서 성공하고자 하는 강한 소망이 특징이다. 이 상태가 유지되면 노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자동성은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 동기 메커니즘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학자들이 이 분야에 코를 박고 열심히 연구한다. 그런데 동기 박사가 돼도 뾰족한 수가 없다. 내 마음을 항상 뜨겁게 달궈줄 동기 비책 같은 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그놈의 변덕이다. 동기 수준이 높을 때는 국토대장정, 아니 지구대장정도 가능하다. 몸에 내장된 동기 엔진이 힘차게 돌아가는데 뭔들 못하랴.

그런데 이 녀석은 믿을 만한 작자가 못 된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다가 급작스럽고 허망하게 돌변한 연인보다 더 믿을 게 못된다. 어떤 이는 동기의 출렁임을 밀물과 썰물에 비유한다. 그런데 이 비유는 밀물과 썰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들은 그래도 물때에 맞춰 하루에 2번, 예고하고 들고 난다. 그렇지 않으면 연안을 항해하는 배들이 위험해진다.

아무 때나 불쑥 들어왔다가 휑하니 나가는 동기 때문에 내 계획은 늘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동(動)하는 마음이 사라진 자리를 의지력(willpower)이 대신한다. 동기만큼 중요한 성취의 필수 요소다. 방해가 되는 행동을 억제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촉진하는 자기통제력을 발휘하는 것, 노력하는 자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동기는 믿을 게 못 되고, 의지력에 기대는 것은 가능할까? 광고에서 본 힘센 건전지처럼 의지력 배터리가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동기 못지않게 변덕스럽다. 심리적, 신체적 상태에 따라 출렁인다. 유혹을 단숨에 제압하는 전사가 된 듯싶다가도 날이 바뀌면 초라한 패자가 된다. 결정적인 단점은 의지력 잔고가 쉽게 바닥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에 따르면 의지력은 아껴 써야 하는 매우 제한된 자원이다.

오늘도 나는 일 처리 방식을 고민하느라, 튀어 오르는 잡념과 마음의 갈등을 제어하느라, 언제 공부할지 무엇을 먹을지 운동을 할지 말지 결정하느라 상당한 분량의 의지력을 쓴다. 사소한 일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이코노미 클래스 주머니에서, 중요한 일에 투입되는 에너지는 퍼스트 클래스 주머니에서 나오면 좋으련만 의지력 주머니는 한 통이다. 일상의 작은 일들에 생각 없이 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에 쓸 의지력이 모자란다.

동기와 의지력의 변덕. 목표 달성의 최대 방해꾼이다. 이 둘에 의존할 수 없다면 어떻게 성취를 이룰 것인가? 답은 이 글 맨 위에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 습관! 오늘도 어김없이 습관 타령을 할 것인데, 그 전에 잠시 동기와 의지력의 환상 조합 아이콘, 무라카미 하루키 얘기를 해보자. 자전적 에세이『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 하고 생각을 굴릴 때 정말로 행복합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한 경험은 없습니다.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그는 매일 수영과 달리기를 한다. 왜?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력을 20회 이상 가지고 있는 그의 하루 일상이다.

“소설을 쓸 때는 4시에 일어납니다. 대여섯 시간을 일한 후, 오후에 10㎞를 뛰거나 1500m 수영을 하는데, 둘 다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고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죠. 취침 시간은 9시입니다. 나는 매일 이 루틴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지킵니다. 반복, 그 자체가 중요해져요. 일종의 최면 상태인데, 더 깊은 마음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루틴을 6개월 내지 1년 동안 유지하려면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서바이벌 훈련입니다. 체력은 예술적 예민성만큼이나 필수적이죠.”

성공을 위한 동기와 의지력의 환상 조합.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릿(grit)이다. 그릿은 한마디로 ‘열정적 끈기’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심리학자 안젤라 더크워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일관성 있는 열정이 있고 장기적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끈기가 있으면 그릿이 있는 사람이다.

열정은 ‘강도’ 아닌 시간을 관통하는 ‘일관성’

컨설팅회사 맥킨지를 그만두고 뉴욕의 중학교 수학 교사가 된 더크워스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과 나쁜 학생들의 차이점을 설명해줄 수 있는, 지능보다 훨씬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IQ가 높은 모든 아이가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우등생 모두가 높은 IQ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육군사관학교 죽음의 훈련에서 살아남는 생도, 문제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 꾸준하게 높은 판매 성과를 올리는 영업사원. 그들은 남들과 무엇이 다를까? 성과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인은 IQ도, 신체적 건강도, 사회적 지능도 아닌 그릿이었다.

그릿은 습관에서 나온다. 그가 심리학자 브라이언 갈라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그릿이 있는 사람은 결국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이 사람은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편안해 보인다. 역설적으로 의지력을 덜 쓰면서 목표를 이룬다. 고민하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이 자동성은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릿이 있는 사람은 동기가 출렁여도, 몸이 아프고 마음이 혼란스러워도 장기적 목표를 향해 묵묵히 간다. 습관 안전망이 그를 든든하게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릿이 없는 사람은 한 가지 일에 흥미를 느끼다가도 이내 지겨워하거나 어려워하며 포기한다. 초기의 동기가 사라지면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나선다. 어떤 과제든 쉽고 재미있는 단계가 끝나면 고비가 오는데, 이때 의지력 고갈을 쉽게 경험한다. 적은 에너지로 일을 지속하게 도와주는 습관 안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체질적으로 나와는 다른 부류, 동기와 의지력의 화신이 아니다. 그의 열정적 끈기는 습관의 부산물이다. “애당초 높은 수준의 동기와 의지력이 있으니까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었겠지.”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동기와 의지력이 제로 상태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좀 읽어볼까?” 미약하나마 동기가 있어야 습관의 씨앗 행동이 ‘시작’된다. 동기가 약할 때는 의지력이 도와준다. TV를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책한 페이지를 읽게 해준다.

이렇듯 작은 행동 하나를 시작할 만큼의 동기와 의지력이면 충분하다. 행동이 반복되면 작은 습관이 되고 묵직한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 습관에 동기와 의지력은 인생 초기에 필요한 엄마 아빠와 같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듯, 반복된 행동이 안정적인 습관이 되면 동기나 의지력으로부터 독립한다. 성취를 이루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처럼 높은 동기와 거대한 산 같은 의지력이 아니다.

더크워스는 강조한다. “그릿은 워커홀릭처럼 기를 쓰고 일하는 게 아닙니다.” 열정은 강도(intensity)가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일관성(consistency)이다. 격정적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고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충실하게 곁에 머무는 오래된 사랑이며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헌신과 집념이다.

얼마 전, 뉴욕의 글로벌 금융 회사에서 일하면서 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필자의 딸이 졸업 후 재무 영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터라 조언을 구했다. 그는 간결한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따님에게 그릿이 있나요?” 앗! 목격한 적이 없는 모습인데 이를 어쩌나. 이렇게 물어야겠다. “네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 작은 습관 하나를 만든다면 그게 뭘까?” 엄마가 하는 얘기라고 귓등으로 듣지 않으면 좋겠다.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201911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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