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조지선의 ‘리더 습관’(9) 

유혹을 대하는 자세? 비겁하게 도망쳐라! 

목표를 성취하는 사람들은 유혹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집중을 방해하는 환경의 자극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덕분에 일을 진전시키는 이로운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핸드폰과 컴퓨터의 알림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는 초연결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술은 ‘방해받지 않는 능력’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에서 제대로 된 소설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유명 작가 조너선 프랜즌은 저술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과격한 방법을 사용했다. 타임지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에서 무선 랜 카드를 제거하고 유선 랜 포트에 꽂힌 케이블을 접착제로 굳힌 다음, 머리 부분을 톱으로 잘라내는 철저함을 발휘했다. 주변 소음을 최소화하는 헤드폰까지 쓰고 써 내려간 소설이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휴가지에 들고 간 『프리덤(Freedom)』이다.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이렇게 겸손(?)하다. ‘인터넷이 빵빵 터지는데 그걸 안 보고 견딜 수 있다고? 나는 자신이 없어. 아마 글을 쓰다 말고 재미난 뭔가를 보고 있을 거야.’ 프랜즌은 아마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 목표를 성취하는 사람들은 유혹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집중을 방해하는 환경의 자극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덕분에 일을 진전시키는 이로운 습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유혹 절제력’ 과신부터 버려야

수년간 필자가 고민해온 문제는 수면 습관이었다. 자정부터 몇 시간 이어지는 고요한 스크린 타임은 오래된 ‘하루 마무리 루틴’이었다. 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달콤하고도 파괴적인 습관이다. 마지막 루틴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매일 밤 충분했다. 오늘 고생했으니까 즐기자. 오늘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네. 에이, 기분 나쁜데 영화나 봐야겠다.

10분만 더 보고 자야지. 나쁜 수면 습관의 폐해가 생활 깊숙이 침투했다. 취침 시간이 새벽 1시에서 2시로 미뤄지더니 가끔은 3시를 넘기기도 했다. 당연히 매번 대가를 치른다. 다음 날 아침, 몸이 무겁다. 마음은 말도 못 하게 무겁다.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하루를 이런 식으로 시작하다니.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들기 위해 필자가 취한 특단의 조치는 노트북을 방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아, 진즉 이랬어야 했다. 그동안 수없이 ‘오늘은 일찍 잘 거야’라고 결심했지만 결국 ‘제거’가 정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동안 노트북이 침실로 슬그머니 기어들어 온 사건이 몇 차례 발생했다. 노트북은 절대 혼자 방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늘 나쁜 습관을 데리고 나타난다.

유혹을 환경에서 제거하라. 이 조언을 외면한 까닭은 환경이 자기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유혹 앞에 건방진(?) 태도로 일관했다. 그깟 노트북 하나를 방에서 내보낸다고 크게 달라질 일이 있겠어? 결심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 정비가 아니라 정신 승리의 다짐이라고 착각한 거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심리학자 로란 노드그렌은 이런 현상을 ‘억제 편향(restraint bias)’이라고 불렀다. 충동을 억제하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그런데 자신의 통제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일수록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그깟 유혹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혹을 미리 차단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유혹에 자기를 노출시키고 결국 더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노드그렌의 연구를 보면 금연을 시도한 사람 중에서 지나친 자신감을 가진 경우 4개월 후 나타난 재흡연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환경의 유혹을 무시하고 자신의 통제력을 과신하는 것은 자기통제력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먹고 싶어서 못 참아.” 자기통제력이 높은 이들은 음식을 적게 주문하고 음식을 등지고 앉는다. 자기통제력이 낮은 허술한 사람들이 유혹과 대결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릴 때, 이들은 자기 목표를 향해 또박또박 나아간다.

유혹이 빠져나간 침실 한편을 허전하게 비워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옛 애인과 헤어진 다음 날 새 애인을 만나는 것은 동네방네 소문낼 자랑거리가 아니지만 습관의 세계에서 갈아타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잠들기 전에 영화를 보는 행동을 대체할 뭔가가 필요하다. 필자는 노트북이 나간 빈자리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고성능 스탠드를 두었다. 밤 분위기에 찰떡인 노래를 아기 숨소리처럼 나긋하게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 밑바닥 인생에서 갑자기 제법 그럴듯한 인생으로 수직 상승한 이 기분! 흠, 나쁘지 않은걸!

냉정하게 제거하거나 비겁하게 도망간다. 이것이 우리가 유혹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다. 클릭 하나로 미드의 향연이 펼쳐지는 깊은 밤 침실에서, 인터넷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작업실에서 매일 유혹에 맞서는 전투가 벌어진다. 유혹은 회피와 제거의 대상이지 싸워 이겨 먹어야 하는 상대가 아니다. 코펜하겐대학의 연구진은 한 집단에게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허용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영상 재생 버튼이 나타나도 누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 후, 두 집단에 같은 과제를 주었는데, 영상의 유혹을 참아야 했던 집단이 더 낮은 수행력을 보였다. 이처럼 유혹을 견디는 것 자체가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제다.

‘사과가 몸에 좋지만 팝콘이 더 맛있는걸!’ 이렇게 생각하는 내 앞에 팝콘과 사과가 동시에 나타나면 팝콘의 유혹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까? 강한 중독성을 뽐내는 팝콘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나 간단한 조치를 취하기만 해도 사과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저쪽으로 스윽 밀어놓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나와 음식 사이의 거리다. 채소와 과일, 초콜릿, 디저트 등 다양한 음식을 활용한 연구들의 공통적인 결론은 ‘거리’가 선호도를 이긴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그레고리 프리비테라(Gregory Privitera)와 패리스 주레캇(Faris Zuraikat)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좋아하는 고칼로리 팝콘이 눈에 보여도 가까이 놓인 저칼로리 사과를 더 많이 먹었다. 심리학자 폴 로진이 이끄는 펜실베니아대학 연구진이 제시한 거리는 25.4㎝다. 이 짧은 거리를 음식과 나 사이에 확보해 놓으면, 음식 섭취량을 8~16%가량 줄일 수 있다.

뿌리 깊은 중독의 해결 과제에서도 ‘담배 가게 피하기’와 같은 전략이 통할까? 심리학자 토마스 커크너가 이끄는 연구에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 475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매일 두 가지 정보를 수집하는 데 집중했다. “지금 담배 생각이 얼마나 간절한가요?”라고 질문하고 핸드폰 위치 정보를 통해 사람들이 하루 종일 어느 장소를 돌아다니는지 추적했다.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담배 가게는 흡연을 부르는 강력한 단서다.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유혹으로 작용할 때는 언제일까? 마침 담배 생각이 간절한데, 그 앞을 지나가게 된다면 담배 가게의 유혹이 더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배고픈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가는 격 아닌가. 연구진도 그렇게 예측했다. 그런데 틀렸다. 담배 가게를 지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때는 담배를 피울 생각이 전혀 없을 때였다. 그 앞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금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누군가 담배를 사는 모습을 보거나, 차곡차곡 쌓인 담배 상자를 보았을 때, 담배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담배에 손을 댔다.

초연결 사회에선 ‘방해받지 않는 능력’ 중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가락을 한 번 움직이면 인터넷 바다가 펼쳐진다. 종일 ‘클릭질’을 참느라 써버렸던 에너지를 아껴보자. 특정 사이트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차단해주는 고마운 프로그램들을 활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필자가 사용하는 도구는 ‘마인드풀 브라우징’이라는 확장 프로그램이다. 내 시간을 빼앗는 사이트들을 설정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적어놓으면 된다.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사이트를 클릭하는 순간 아름다운 풍경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정말 거기 갈 거야?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다고 말한 것 기억나지? 이때 ‘10분만’ 또는 ‘안 할래’를 선택할 수 있다. 산과 나무를 거울처럼 비추는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느리게 숨을 쉬다가 ‘안 할래’를 클릭하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혹을 피하는 것이다. 핸드폰과 컴퓨터의 알림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는 초연결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방해받지 않는 능력’이다.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방해 자극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주의력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만이 성공을 누릴 것이다”라고 말한 배경에는 유혹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녹아 있다. 싸우지 말고 견디지 말고 비겁하게 도망쳐라.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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