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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의 ART TALK(18)] Frieze Art Fair 

현대와 전통을 잇는 최고 아트페어, 프리즈 마스터스 

프리즈 마스터스 2003년 런던에서 영국 현대미술 작가들 위주로 열렸던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 어느덧 15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글로벌 아트페어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혹자는 프리즈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1967년 시작된 아트 시카고나 1970년 설립된 아트바젤과 비교해볼 때 프리즈가 10여 년 만에 거둔 성공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프리즈 아트페어 2018 전경, ⓒFrieze Art Fair
최근 들어 아트페어라는 말은 공공연히 ‘미술품을 사고파는 행사’라는 의미로 자리 잡았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도 크고 작은 갤러리 200여 개가 있으며, 아트페어만 해도 15개나 된다. 놀라운 일이다. 아트페어가 확대일로에 있지만 개별 행사의 서로 다른 기능과 성격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기회는 드문 편이다. 어쩌면 아트페어 활성화가 요구되는 현시점에서는 굳이 그런 시도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 아트페어의 특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나면 앞으로 방문하게 될 곳들을 더 명확히 알 수 있고, 나에게 가장 적합한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도 기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트페어는 화랑(갤러리)이 여는 행사다. 유명하고 중요한 작가들을 대표하는 블루칩 화랑부터 신진 작가들을 키워나가는 곳까지, 다양한 화랑 설립자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동료 화랑들을 평가하고 함께 미술시장의 ‘장’을 여는 것이다.


▎프리즈 마스터스 2018, 갤러리아 엘비라 곤잘레스 Galer a Elvira Gonzalez, ⓒFrieze Art Fair
프리즈 아트페어는 21세기 시작과 함께 영국에서 설립된 신진 아트페어다. 자국 작가들이 소속된 많은 영국 화랑과 딜러들은 매우 영국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아트페어 개최에 나섰다. 프리즈 아트페어는 2003년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를 필두로 한 YBAs(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을 본격적으로 시장에 소개하는 자리였다고도 볼 수 있다. 바젤의 수준 높은 유러피안 모던아트 컬렉터들의 지원으로 시작한 바젤 아트페어, 엑스포 형식의 미술전시인 미국 아모리쇼와는 확연히 다른 페어였다. 프리즈는 ‘여러 실험적인 작품이 과연 현대미술 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할까’에 대해 질문했다. 이렇게 시작한 행사는 6만 명이 넘는 관람객과 160개가 넘는 국제 갤러리가 참여(2018년 기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프리미어 아트페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역사적 미술에 초점 둔 프리즈 마스터스


▎프리즈 마스터스 컬렉션 2018, 갤러리 사르티 Galerie G. Sarti, ⓒFrieze Art Fair
프리즈 아트페어는 지난 2012년 또 다른 페어를 만드는 시도에 나섰다. 이름부터 프리미엄 느낌이 강한 ‘마스터스’ 행사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프리즈를 컨템퍼러리 아트페어라 생각한다. 프리즈 런던과 프리즈 마스터스는 개최 장소와 기간이 같아 같은 행사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들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과 내용이 있다. 바로 참여하는 갤러리의 성격과 소개되는 작품의 내용이다. 프리즈 마스터스는 프리즈 아트페어를 찾는 동시대 미술 애호가들에게 ‘역사적인 미술’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으로 설립됐다.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생각이 담겨 있다. 현재 ‘컨템퍼러리’, 즉 동시대 미술이라는 것이 앞으로 50년만 지나도 중요한 빈티지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미래적 고민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영국인의 사고방식이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행사 진화 과정을 미리 고민해 새로운 가능성을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한다는 점에서다. 그렇기에 프리즈 마스터스가 선보이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작품 가격은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 작품들도 40년 전에는 동시대 미술이었고, 그 작품들을 구입한 당시의 컬렉터들에 의해서 모던 마스터 시장이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프리즈 런던은 설립 의지처럼 매우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컨템퍼러리 아트페어다. 누군가는 프리즈 런던에 방문하면서 “마치 160개에 달하는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아트페어 자체가 마치 작가들의 부스로 만들어진, 대형 전시와도 같은 인상 때문이다. 페어에 참여하는 이들은 프리즈 마스터스보다 확실히 젊고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작가들이며, 방문객들은 이들을 통해 다양한 신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프리즈 마스터스 컬렉션 2018, AR/PAB, ⓒFrieze Art Fair
프리즈 마스터스는 다르다. 우리가 모던이라고 부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미술들로 구성해 역사적인 미술품들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리즈 마스터스의 목표는 과거의 예술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컬렉터뿐만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관객들에게 역사적인 미술을 동시대적 배경에서 보여주는 게 목표다. 그래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궁전에 살지 않아도 거장의 그림, 앤티크, 20세기 거장들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프리즈 마스터스의 건축 공간은 각 작품들이 돋보이고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미니멀하고 중립적으로 설계됐다.”

프리즈 마스터스의 디렉터 네이선 클레멘 질레스피(Nathan Clements-Gillespie)의 말이다.


▎프리즈 마스터스 컬렉션 2018, 가고시안 Gagosian, ⓒFrieze Art Fair
대부분의 국제 아트페어가 동시대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반해, 프리즈 마스터스의 구성은 20세기 모던 마스터들의 작품 60%, 역사화 및 골동품 40%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올드마스터 마켓에서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점은 공급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이 그림을 사면 살수록 시장의 작품 공급은 계속해서 줄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프리즈 마스터스는 시장성 측면에서 굉장한 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잘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수많은 딜러가 항상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며 시장을 만든다.

일부 아시아 컬렉터들은 그들이 구입하는 모던 마스터 작품들이 기존 해외 미술관이나 서구 컬렉터들이 소장하지 않고 ‘남은 작품’을 구입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끔 매우 중요하고 유명한 몇몇 작품이 시장에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역사화는 아직 덜 알려진 작품이 훨씬 많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작품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고 희귀해진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몇 년 전만 해도 피카소에 대한 관심은 큐비즘으로 대표되는 그의 초중기 작업에 치우쳐 후기작은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초기작들이 이미 모두 어딘가에 소장되어 시장에서 종적을 감추자 지금은 후기작들이 미술시장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됐다.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미술시장의 지형도가 계속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 미술시장의 전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역사화의 가격과 가치는 굉장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미술사의 한 조각을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이 프리즈 마스터스를 다른 아트페어와 차별화하는 좋은 지점일 것이다.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는 전시


▎프리즈 마스터스 2018 전경, ⓒFrieze Art Fair
프리즈 마스터스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도자기나 고대 중국 공예품, 아프리카 부족 예술품들이 르네상스 조각이나 마티스, 피카소와 같은 미술사적 작품들의 바로 옆에서 전시되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각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깊은 영감을 주지만 작품 간에 형성되는 대화도 굉장히 흥미롭다. 지난해 프리즈 마스터스에 참가한 갤러리 현대의 흥미로웠던 전시가 좋은 예다. 20세기 한국 거장의 작품과 한국 전통 미술 및 공예를 병치한 전시였다. 갤러리 현대의 컬렉션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목재 조각상과 도자기들을 소개한 기회였다. 중국 고대 청동과 세라믹 스페셜리스트인 벨기에의 지젤 코에즈 갤러리(Gisele Cores Gallery)는 올해도 중국 앤티크를 들고 돌아올 예정이다.

덧붙여 올해 부스의 특징 중 하나는 ‘컬렉션(collection)’이라는 섹션이다.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아시아관의 디렉터이자 크리스티의 아시아 전문가로서 현재 카타르 로열 컬렉션을 담당하고 있는 아민 자퍼(Amin Jaffer)와 영국 로열아카데미 전 총장인 노만 로젠탈(Noman Rosenthal)이 큐레이팅한 기획이다. 총 8개 갤러리가 참여해 인도 미술과 동서양의 전통을 병치하는 흥미로운 큐레이팅을 선보였다.


▎프리즈 조각공원 2019, 가잘레 아바자마니 Ghazaleh Avarzamani,[이상한 시간 Strange Temporalities], ⓒFrieze Art Fair
흔히 아트페어라고 하면 상업적인 행사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단순히 작품 판매만 위해 세계적인 작가들, 미술관 관장들과 큐레이터들, 미술관 보드멤버와 같은 국제 미술계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술관 관장과 큐레이터들에게는 새로운 소장품을 구입하기 위한 시장조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중요한 공공 프로그램들 때문이다. 바로 미술시장의 현재 담론과 그것이 작가들과 미술 생태계에 미치는 다양한 역할을 논의하는 강의 프로그램이다.

2019년 10월에 열릴 프리즈 마스터스는 현재 로열아카데미 총장인 팀 말러(Tim Maller)가 큐레이팅한 ‘프리즈 마스터스 토크(Frieze Masters Talk)’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 현재 가장 뜨거운 작가인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엘리자베스 페이톤(Elizabeth Peyton),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프리즈 마스터스에는 그야말로 미술사를 다시 써 가는 중요한 미술계 인사들이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매우 적극적으로 미술 담론을 공론화하고, 교육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영국 국립 아트펀드(Art fund)는 프리즈 마스터스에 중요한 클라이언트다. 아트펀드의 후원으로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내셔널 초상미술관은 국제 큐레이터 20명을 초청해 컬렉션에 대한 의견을 듣는 ‘큐레이터 데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초상화’ 컬렉션이 주제인데, 파트너 뮤지엄과 더불어 아트펀드 채널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국립 아트펀 드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미술교육을 고양하기 위한 컬렉션 구입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프리즈 마스터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그들이 구입하고 지원하는 미술관 컬렉션을 연구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하다. 그저 미술품을 사고파는 일방적이고 일시적 지원이 아닌, 지원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더욱 숨 쉬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즉 시대의 다양한 미술사가 큐레이터들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고, 미디어를 통해 대국민 미술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매년 10월 런던에서 중요한 컨템퍼러리 아트페어인


※ 이지윤은…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 박사, 미술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큐레이터다. 2014년 귀국하여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총괄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 큐레이팅 사무소 숨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북경 중앙 미술학원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201909호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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