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보다 더 무서운 ‘로또의 저주’얘기가 나온 김에 대체 세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부터 따져보자.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내년부터 상속·증여세를 계산할 때 비주거용 부동산부터 평가 기준을 기준시가에서 감정평가한 가격, 즉 시가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보통 비주거용 부동산의 실거래 가격을 100이라 치면 기준시가는 50~70% 정도 되는데, 감정평가를 반영하면 70~90% 값으로 뛴다. 과표구간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기준시가 24억원짜리로 평가받는 실거래가 40억원짜리 빌딩이 36억원짜리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상업용 빌딩이 ‘부의 대물림’으로 지목된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가 또 있다. 비주거용 부동산은 아파트와 달리 위치나 모양 등에 따라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률적인 시가를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도로 인접 여부나 임차 수입에 따라 건물값이 두세 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규제상 보충적 평가방법, 즉 통상 기준시가에 따라 재산평가를 해왔다. 토지는 개별공시지가, 주택은 국토부의 개별주택공시가격과 공동주택공시가격, 오피스텔과 상업용 건물 등은 국세청 산정·고시가격을 적용했다.이게 바뀐다. 올해 초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비주거용 부동산을 감정평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정부도 내년 예산에 국세청의 감정평가 비용으로 24억원을 책정한 상황이다. 어차피 증여할 생각이 있다면 올해 증여하는 게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다.하지만 부동산은 단순히 증여계약을 한 후 등기를 넘겨줬다고 끝이 아니다. 미래 상속인들 간 관계, 수증자가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지, 대출이 필요하다면 얼마나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민해야 한다.더 큰 문제는 재산관리 문제다. 절세하겠다고 너무 어리거나 관리 능력이 없는 자녀에게 무턱대고 재산을 증여했다간 독이 된다. 최악의 경우 사회초년생 자녀에게 갑자기 규모가 큰 부동산을 물려준다면 관리를 못해 지킬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른바 ‘로또의 저주’다. 생각지도 않았던 관리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염려해 증여 후 재산관리 수단으로 신탁을 활용하려는 자산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상담했던 두 가지 사례를 보자.
빌딩을 아들에게 증여하려는 어머니김선미(가명·70)씨는 서울 소재 주택과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 부동산 가격이 뛰자 증여를 고민 중이다. 증여를 하자니 몇 가지 고민에 빠졌다. 수증자로 생각하고 있는 아들이 직장인이라 증여세 부담 능력이 버겁다 보니 증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절세하려고 증여해도 아들이 부동산을 잘 지켜낼 수 있겠느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부쩍 직장생활이 고달프다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오피스텔 명의를 손자 앞으로 해주고 싶은 할머니김사랑(가명·78)씨는 3남매를 모두 잘 키우고 홀로 살고 있다. 두 자녀가 해외에서 살다 보니 손자를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나마 자주 얼굴 볼 수 있는 친손자가 그 아쉬움을 달래준다. 그런데 아들도 손자 교육비가 만만치 않게 드는 모양이다. 손자가 평소 유학 가고 싶단 말을 자주 해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손자 명의로 작은 오피스텔 하나를 증여하고자 한다. 혹시나 처분하게 돼도 손자 교육비로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아들 내외가 이사 다니며 목돈이 필요할 때 오피스텔을 처분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결론부터 말하면 두 사람 모두 신탁으로 재산관리 문제를 해결했다. 먼저 사업하겠다는 아들에게 증여를 고민했던 김선미씨는 자녀 앞으로 부동산을 증여하면서 신탁계약을 전제했다. 자녀가 임의로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담보를 제공해 재산을 날릴 일은 사전에 막을 수 있게 됐다. 손자에게 오피스텔을 증여하고자 했던 김사랑씨도 신탁을 활용했다. 친권자인 부모가 맘대로 오피스텔을 처분하지 못하게 됐다. 물론 증여한 재산이 손자가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변함없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