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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바이오리더스 회장 

美 트럼프월드 올렸던 샐러리맨, 자궁경부암 정복에 나서다 

박영철 바이오리더스 회장은 2009년 체외진단 의료기기 업체를 창업하며 바이오업계에 발을 들였다. 자궁경부암 진단에 성과를 내자 자연스레 치료약에 눈이 갔다. 2017년 바이오리더스를 인수하고 내친김에 세상에 없던 약을 내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 10월 21일 바이오리더스는 폴리감마글루탐산의 자궁경부상피이형증 치료용도에 관한 미국 특허권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박영철 바이오리더스 회장은 “폴리감마글루탐산을 유효성분으로 함유하는 자궁경부상피이형증 치료와 예방용 의약 조성물에 관한 것”이라며 “글로벌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과 기술의 사업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수년간 한국 증시는 바이오에 열광했다. 2015년 11월 한미약품이 프랑스계 다국적 제약사인 사노피에 당뇨병 치료 신약후보 물질에 대한 콴툼(quantum) 프로젝트에 성공하면서부터다. 그러다 올해 신라젠이 글로벌 임상3상에 실패하면서 ‘버블’ 논란에 휩싸였다. 불과 4년 만에 바이오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신에서 역적으로 전락했고, 증시도 요동쳤다. 2000년대 초 불었던 IT 닷컴 버블과 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썰’전이 난무한 세상.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다. 왜 바이오 분야에 왜 투자하는지 말이다.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해서 치료하겠다는 메커니즘이 의학·바이오 역할이 아니던가. 벤처캐피털, 주가 조작 작전세력, 이들과 연계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CEO들의 ‘게이트성 사건’이 터질까 봐 멀리해야 하는 분야도 아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반도체, 5G 통신, 인공지능(AI), 바이오 등을 4대 성장 사업으로 선정하고 180조원을 쏟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때일수록 우직한 고집이 필요하다. 2009년 체외진단 의료기기 업체 TCM생명과학을 창업한 박영철(51) 바이오리더스 회장은 2017년 신약 개발기업 바이오리더스를, 지난해 건강기능식품 전문업체 넥스트BT 지분을 사들이며 보폭을 넓혔다. 특히 2017년 세계 최초로 자궁경부암 자가진단키트 ‘가인패드’를 내놨고, 치료약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꾼’이 ‘꾼’을 알아보는 법이다. 기관들이 먼저 박 회장의 ‘고집’을 알아봤다.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급성장 10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기업으로는 셀트리온, 메디톡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해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글로벌 강소기업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2019년 국가생산성대상’에서 4차 산업혁명 선도 기업으로 선정됐다. 가인패드는 국내 최고 권위 기술상인 ‘장영실상’도 수상했다.

박 회장의 독특한 이력도 화제다. 대우그룹 회장 직속 부서에서 해외사업을 담당했고, 이후 외국계기업의 한국 대표를 지냈다. 박 회장은 1997년 대우그룹에서 일할 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대우건설이 뉴욕에 지은 초고층 빌딩인 ‘트럼프월드’ 건설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로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 부도 위기에서 벗어났고, 워크아웃 상태였던 대우건설은 상당수 채권을 갚을 수 있었다.

그의 이런 독특한 이력 덕인지 증시에선 바이오리더스가 제2의 셀트리온이란 얘기까지 나돈다. 지난 10월 14일 용인 수지바이오리더스 본사에서 박 회장을 만나 바이오 시장 얘길 들어봤다.

유수 기관에서 바이오리더스가 인정받았다.

어깨가 무겁다. 홍보에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선정된 것도 뒤늦게 알았다. 특히 201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건 나중에 지인을 통해서야 알았다.

최근 바이오업계가 흉흉하다.

알고 있다. 신약 개발은 어렵다는 말로 핑계 대고 싶진 않다. 분명 문제가 있다. 서두른다고, 멋들어진 청사진이 있다고 해서 신약이 뚝딱 나오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과 달리 신약 개발엔 최소 10년이 걸릴 수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회사가 글로벌 임상부터 추진한다는 얘기도 단기간 기업가치를 확 띄우려는 의도일 수 있다. 솔직히 무리다.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임상 디자인을 하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든다. 임상에 성공하려면 임상 디자인을 하는 역량과 통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바이오업계는 이제 시작 단계다. 그래서 우린 일단 국내 임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이오와 인연이 없다고 들었는데 .

시간이 참 빠르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부동산 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도널드 트럼프를 만나러 미국 뉴욕 맨해튼을 발이 닳도록 누빈 게 엊그제 같다. 대우그룹에서 해외사업 담당으로 일하며 전 세계를 누볐다. 대우에서 나온 후에도 글로벌 회사에 있었다. 시장조사를 하는 게 일이다 보니 유망 사업 찾기는 늘상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바이오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이오 업체를 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주위에서 다 말렸다. 2009년 8월 자본금 1억원으로 한국TCM(현 TCM생명과학)을 차린다고 했을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이듬해라 반대가 더 심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멀티플렉싱’ 기술을 가진 연구진을 만나고 나선 확신이 섰다. 창업 후 신종플루와 조류인플루엔자, 계절성 독감을 6시간 만에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했다. 마침 그해 신종플루가 유행(2009년 5월)했다. 그런데 6시간 만에 진단 결과를 내릴 수 있는 곳은 우리뿐이었다. 검사 의뢰가 밀려들었다. 48시간 안에 타미플루를 먹어야 하는데 검사 결과가 그보다 더 걸리는 일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검사해달라는 청탁(?)까지 들어왔다. 신종플루에 항상 노출돼 있다 보니 애들에게 옮을까 봐 몇 주간 집에 못 들어가기도 했다.

진단업체로서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덕분에 TCM생명과학은 유명해졌고, 돈도 벌었다. 다른 영역을 개척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다 자궁경부암 환자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전체 암 중 네 번째로 많이 발병하는 암인데 다들 잘 몰랐다. 말이 네 번째지 여성 발생암으로 따지면 1위였고, 세계 여성암 사망률로도 2위에 오를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예나 지금이나 출산 외에 산부인과 가기를 꺼리기에 사망률이 유독 높았던 것이다. 한국보다 의료 시스템이 후진적이거나 문화가 보수적인 나라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뒤늦게 병을 발견해도 자궁을 절제하는 것 말고는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세계 최초 패드형 자가진단키트 시판


가인패드가 탄생한 배경인가.

맞다. 진단하는 법도 문제가 많았다. 일단 산부인과를 찾는 건 차치하고,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같은 바이러스성 성병의 경우 소변검사 등으로 진단이 어려웠다. 생식기 부위 검진이 필요한데 질 분비물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2차 감염이 생기기도 했다. 일단 진단이라도 정확하게, 거부감 없이 할 수 있어야 했다. 연구진과 머리를 맞댄 끝에 자궁경부암을 타깃으로 삼았다. 수년간 연구 끝에 2017년 세계 최초로 패드형 자궁경부암 자가진단키트 ‘가인패드’를 개발했다. 착용하던 패드를 회사로 보내기만 하면 결과를 알 수 있다. 정확도도 97.9%에 달한다. 올해부터 본격 시판했고,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다.

의료계가 환영했겠다.

반대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데모까지 했다. 산부인과학회 회장부터 산부인과 의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밥그릇 싸움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오해였다. 편의점에서 사도 검사 결과는 지정 병원으로 전송해 의사와 상담할 수 있게 했다. 누구나 쉽고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하면서 제대로 치료하는 것. 의사와 바이오 기업이 가진 공통된 숙명이었다. 이런 논리로 의사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종교, 문화적 특성상 산부인과 진료를 자체를 꺼리는 나라일수록 반응이 더 좋았다. 이들도 전문 의료기관에선 자궁경부암이 심각한 질환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슬렘 국가에서 반겼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달라그룹이 12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인도네시아 칼베그룹과 말레이시아 국립암센터에서도 가인패드가 채택됐다. 중국 10대 제약기업인 푸싱 파마와는 1200만 달러(약 140억원) 상당의 공급판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진단 분야만 해도 잘나가지 않았겠나.

‘치료’란 숙제가 남았다. 자궁경부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로 90% 이상 완치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이다. 자궁경부암 진단 기술을 연구하면서 쌓은 지식을 치료약으로 풀면 어떨까 싶었다. 역시 주위 반대가 심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국에 자궁경부암 치료제 개발을 이어가는 회사가 있어 2017년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그게 바로 바이오리더스다.

성과는 어떤가.

인수를 결정하기 1년 전부터 바이오리더스는 성과를 내고 있었다. 2016년 자궁경부 상피이형증 치료제(BLS-H01)의 임상2상을 마무리한 상태였고, 인수 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3상 IND(시험계획서) 승인을 받았고, 임상3상을 준비 중이다. 자궁경부전암 치료제 ‘후파백(BLS-M07)’도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상당히 빠른 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5년 넘게 끈 자궁경부암 백신 임상 1상이 12월쯤 돼야 끝난다. 한국에서 글로벌 제약사 MSD, GSK가 내놓은 예방 백신이 전부인데, 우린 먹는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다르다.

독자적인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 아닌가.

그렇다. 앞서 말한 두 치료제가 주요 파이프라인이다. 유전자를 재조합한 유산균을 활용해 먹어도 안전하다. 후파백의 경우 전국 대학병원에서 진행한 임상2(a)상에서 환자의 75%가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보였다. 유럽 소재 동물의약품 회사에 폴리감마글루탐산 원료물질 이전도 마쳤다. 우리가 보유한 파이프라인 중 자궁경부상피이형증 치료제의 핵심 물질인 폴리감마글루탐산은 면역증강·항바이러스 물질이다. 한미약품처럼 내년쯤엔 글로벌 기업으로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도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다. 해외 기술도입(라이선스인)도 언제나 열려 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와도 손을 잡았다.

쉽지 않았다. 전 세계 의약품 판매 1위인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 테바의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코팍손 등이 와이즈만연구소 작품이다. 이런 연구소와 손잡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들의 기술 검토를 통과하지 못하면 추가 투자도 무산될 위기였다. 거의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나름 빠른 편이다. 와이즈만연구소가 보유한 암 억제 유전자 p53 기술지원은 이스라엘 정부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었기에 훨씬 더 까다로웠다. 최근에야 승인이 났고, 와이즈만연구소와 합작법인 퀸트리젠도 설립했다. p53 기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바르다 로터, 모셔 오렌 박사도 합류했다.

차세대 항암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신약 개발에만 매달리는 기업이 단 한 번이라도 임상에 실패하면 망한다. 남는 게 없다. 바이오 기업이 연구개발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린 지난해 연결 매출액 861억원을 기록했다. 중국 최대 의약그룹 시노팜과 바이오리더스의 화장품 ‘닥터스 피지에이’의 수출 계약도 맺었다. 넋 놓고 있으면 임상을 지속할 수 없다. 돈도 벌고, 번 돈을 주주와 나누고 그 주주는 또다시 신약 개발에 나선 기업에 투자하고, 글로벌 연구소와 손잡고 기술사용권도 나눠야 한다. 일종의 선순환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영철 바이오리더스 회장에게 바이오업계 종사자로서 ‘한국’은 어떤 곳인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가 외국 어떤 정부보다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바이오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모두가 잘 알고 있죠. 한국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인재도 포진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어느 정도 안전성이 확보된 신약 후보물질의 경우 시장에서 빠르게 평가받을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911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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