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집방’, 공간, 건축가 

 

이제 3차원적 예술에서도 10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 인류의 시각이 개화하는 흐름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10만 시간, 또는 10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나온 말인데 어느 분야에서나 전문가가 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전문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알게 모르게 대부분 인류는 이 법칙 속에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좋은 영화와 감독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인류가 비디오와 DVD를 통해 다양한 영화를 맘껏 보게 되면서부터다. 1980년대 말 우리나라는 14인치 브라운관 TV 시대였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자영업이 비디오대여점이었다.

비디오대여점은 이후 DVD대여점으로 바뀌며 인류의 영화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었다. 지금은 이 역할을 넷플릭스나 유료 방송채널이 담당한다. 비디오와 DVD 시대를 거치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각지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품질이 갑자기 좋아졌다. 한국에서 [공동경비구역 JSA](2000), [올드보이](2003) 등이 나왔고 [해리포터] 시리즈(2001)와 [매트릭스](1999)도 그 시기에 등장했다. DVD의 역할을 지금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담당한다. 2007년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인류의 사진 촬영 기술이 현재까지도 계속 진보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영화나 사진은 2차원적 예술에 속한다. 면적에 비친 그림과 철학을 통해 인류의 감각을 열고 감동시킨다. 예술분야에서 가장 보편성을 높이기 어려운 분야는 3차원적 공간예술이다. 면적에 높이까지 더한 공간예술에는 자동차의 외형 디자인부터 복잡한 건축물의 디자인까지 포함된다. 단위가 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제 3차원적 예술에서도 10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 인류의 시각이 개화하는 흐름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로 ‘집방’(집에 관한 프로그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집을 구해주고 소개해주는 집방은 최근 [구해줘 홈즈]가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며 터줏대감이 되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독특한 공간을 가진 건축물이 쏟아져 나오며 집방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집방은 인류의 공간에 대한 인식과 현실감각을 높여준다. 사람들은 집방을 통해 가격대와 땅의 위치에 따라 건축물과 공간의 구성이 달라진다는 걸 느낀다. 집방은 색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도까지 높여준다. 세계 방송계에서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먹방(Mukbang)’은 인류의 미각을 한 단계 진화시켰다. 이제는 집방의 시대다. 집방을 보고 자란 세대가 10년 뒤에는 걸출한 건축가로 세계를 누비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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