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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성공 전략 

가장 한국적 방식으로 세계를 장악하다 

최근 들어 글로벌 비즈니스의 성패는 대중의 관심을 꾸준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다. 이런 능력을 보유한 기업은 시장을 장악하고, 그렇지 못하면 밀려나게 마련이다. BTS라는 메가 히트 상품을 내놓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전략도 이를 증명한다.

▎올 6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의 ‘LOVE YOURSELF:SPEAK YOURSELF’ 투어. 스타디움 주변엔 멤버들의 얼굴이 실린 광고물이 점령했다.
애플을 보라. 신제품 발표 때마다 각종 웹사이트와 게시판에 새로운 모델에 대한 추측성 글이 도배된다. 자연스럽게 ‘이슈 몰이’가 이뤄지고, 실제 제품이 출시되는 즉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다. 전기차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시중에 나온 모델은 많다. 그러나 유독 테슬라 제품만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화제에 오른다. 대중의 관심을 현금화하는 알파벳(구글)과 페이스북이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상위를 다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국적 이슈 몰이, 글로벌에 통하다


▎지난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콘서트를 앞두고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에서 상영된 팬 메시지 영상. 수많은 팬들이 몰려 BTS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대형 조직을 관리하고 대규모 자본을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노하우는 요즘 들어 더는 차별화를 주지 못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잘 굴러가는 기업을 보면 노동과 자본을 조직하기 위해 비슷한 방법들을 쓴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을 움직이는 경영기술은 여전히 개발 중이며 아직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다. 효과적인 역량을 갖춘 조직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고, 그렇지 못한 경쟁자들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대중의 관심을 움직이는 데 가장 능숙한 기업을 꼽으라면 한국의 대형 연예기획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획사의 이슈 몰이 능력이 팬덤의 토양이나 SNS·음원 플랫폼 등이 전혀 다른 해외 시장에도 과연 먹힐 수 있을까? 해답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에서 찾을 수 있다. 빅히트는 방탄소년단(BTS)이라는 신의 한 수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도 한국적 방식이 ‘통한다’는 걸 보여줬다.

빅히트는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입증된 성공 전략을 솜씨 좋게 응용해 글로벌 시장에 적용했다. 이들은 먼저 BTS를 위한 글로벌 팬덤 ‘아미’를 모집했다. 한국 팬덤의 인기 작전으로 무장한 아미는 BTS를 글로벌 시장과 미디어 환경에 알맞게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선 남들과 똑같이 하면 이미 시장에 탄탄히 자리 잡은 ‘빅3’ 기획사를 넘어서기 힘들다. 이를 알고 있던 빅히트는 경쟁자들이 아직 이슈 몰이 전략을 모르고 소비자들이 SNS 순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글로벌 시장을 노렸고, 결과적으로 날개를 달았다. 그 결과 BTS는 반짝 인기를 넘어서 케이팝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스타가 됐다.

BTS가 한국을 벗어나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대성공을 거두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의 대중음악 산업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 YG, JYP 등 대형 연예기획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이들 기획사가 신인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면, 이전까지 아무런 인지도도 없던 이들이 대중의 높은 기대를 등에 업고 즉각 인기 그룹으로 자리 잡는다. 2010년대 들어서만 이들 빅3는 EXO, 레드벨벳, NCT, 위너, 아이콘, 블랙핑크, 미스에이, 갓세븐, 트와이스, ITZY 같은 다수의 아이돌을 성공시켰다. 빅3가 배출한 아이돌 그룹은 웬만해선 시장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이는 매우 특이하면서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동시에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 빅3 기획사 수준의 꾸준한 성공률을 보여준 음악 프로듀서는 미국에도 없다. 게다가 이제 막 등장한 신인 데뷔곡이 음원 차트에서 바로 1위에 오르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 독특한 문화와 스타 만들기

최근 한국에서는 빅3 외에 중소 기획사들도 매우 높은 수준의 아티스트와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케이팝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 10년 만에 한국을 찾은 필자는 아이돌 그룹이 되기 위해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지 알고 깜짝 놀랐다. 외모와 목소리를 유전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건 물론이고, 뛰어난 춤·노래 실력에 외국어 능력, 심지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에 필요한 예능감까지 갖춰야 한다.

케이팝 산업이 성숙함에 따라 작사·작곡과 기획 인력은 이미 임계질량에 도달했다. 중소형 기획사도 킬러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는 뜻이다. 다만 차트 1위에 오르려면 뭔가 호재가 필요하다. EXID가 좋은 예다. 2014년 10월 팬이 찍은 ‘위아래’ 직캠이 유튜브에서 화제를 일으키면서 기적의 차트 역주행을 선보였고, EXID는 이를 계기로 인기 그룹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중소 기획사의 신인 그룹이라면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차트 1위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BTS의 2013년 데뷔곡 ‘노 모어 드림’도 멜론 주간 차트 88위에 올랐다가 바로 그다음 주에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케이팝 아티스트의 성공 공식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 두 가지가 있다. 대형 기획사들의 ‘스타 만들기’ 전략이 한국 사회의 독특한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BTS 성공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전략은 케이팝과 한국을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도 성공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한국 사회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케이팝 열혈 팬들은 1990년대 중반 등장한 SM의 H.O.T.와 젝스키스(현재는 YG 소속) 팬클럽이 본격적인 팬덤 문화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팬들은 천리안·하이텔·프리챌·디씨인사이드 같은 온라인 게시판과 함께 성장했다. 이들은 또 아이러브스쿨·싸이월드·페이스북·트위터로 이어진 SNS 플랫폼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30~40대가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식을 낳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여유로운 소득과 시간은 자신의 ‘최애’ 아이돌을 온·오프라인에서 전격 지원하는 데 쓰인다.

이들 팬덤의 ‘총공(총공격’의 줄임말. 아이돌 팬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벌이는 단체행동)’이 매우 가시적이고 유의미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음원 플랫폼이다. 일반 소비자의 경우 차트 상위권에 오른 음원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 음원시장에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건 매우 중요하다.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광고 등에서도 계속 차트 꼭대기에 있는 음악을 틀어준다. 한국에서 산다면 최신 히트곡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히트작이 나오면 빠르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를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한 문화적 특성도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요즘 유행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대화에 끼지 못하고 왕따가 될 수 있다.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일 경우 ‘뭘 몰라서 대화가 안 통한다’거나 심하면 ‘답답하다’는 말을 들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한국 방식 글로벌에 적용한 BTS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어워드 개막 레드카펫에서 BTS를 연호하며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
대형 기획사는 신인 아이돌을 선보일 때 이러한 한국 사회의 특성을 솜씨 좋게 이용한다. 이미 데뷔 전부터 형성된 팬덤이 의욕적으로 움직이며 신인 아티스트를 데뷔 직후 곧장 차트 1위로 올려놓는 기염을 토한다. 데뷔곡을 연속 스트리밍하는 소위 ‘스밍 돌리기’ 같은 활동들이다. 기획사는 아티스트를 전면에 내세워 다양한 음악방송은 물론 라디오, TV 예능 프로그램에 돌려가며 출연시킨다.

웬만한 한국 음악 팬은 ‘스밍 돌리기’나 ‘줄 세우기’ 같은 작전을 잘 알고 있다. 음악산업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도 대형 기획사들이 신인 그룹을 차트 1위에 올려놓는 방법에 대해 (무식한 ‘아싸’인) 필자에게 친절히 설명해줄 정도다.

중소 기획사들도 공인된 작전을 그대로 따라간다. 데뷔 전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 채널에서 팬덤 구축에 나서는 게 대표적이다. 다만 이런 작전도 한계가 있다. 모두가 똑같은 작전을 쓸 경우 갈수록 기대했던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건 경쟁전략의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이런 결론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2010년대 빅3를 제외한 중소 기획사에서 준비한 아이돌이 데뷔와 동시에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경우는 채 0.4%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대형 기획사가 기획한 신인은 계속 차트 상위에 데뷔했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계속 우위를 점하는 걸까? 이는 한국 소비자들이 음악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 음악 소비자는 팬덤 문화와 스밍, 줄 세우기 같은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 SNS에서 ‘좋아요’와 댓글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의심할 줄도 안다.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한 가수나 이미 유명한 스타가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면 믿지만, 중소 기획사 가수가 EXID의 직캠처럼 확실한 이유 없이 갑자기 1위를 하면 오히려 차가운 반응을 얻기 십상이다. 지난해 한 차트에서 가수 숀과 닐로의 순위가 갑자기 올랐을 때 소비자들은 바로 음원 사재기를 통한 순위 조작을 주장했다.

빅히트는 케이팝의 이슈 몰이 작전의 시장 역학을 천재적으로 간파했다. 중소 기획사와 신인 그룹이라면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은 온라인 소셜 랭킹과 정보에 대한 의심이 적다(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이슈 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빅히트는 한국에서 갈고닦은 이슈 몰이 기술을 글로벌 시장에 적용했다. 그 결과 ‘아미 현상’을 만들었고, 이는 BTS의 세계적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빅히트와 BTS, 아미의 노력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BTS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소셜차트 1위를 장악했고, 지금은 그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 글로벌 스타가 됐다.

빅히트 사례는 이슈 몰이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다른 업종의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이런 전략이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나 산업분야에 응용하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비자가 이슈 몰이 방법을 이미 알고 있고 SNS를 통한 정보 출처를 의심하는 곳에서는 이미 시장을 장악한 선도기업만이 해당 전략을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다.

매우 한국적인 전략을 이용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 출발점은 빅히트처럼 한국 특유의 성공 매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다.

- 추요한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

※ 추요한 교수는…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하게 정년 트랙 교수로 임용되어 5년간 재직하다 최근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으로 옮겼다. KAIST에서 물리학 학사,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에서 물리학 박사,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에서 경영 및 조직학 박사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과정 사이 2013년엔 전략 컨설턴트로 일했고, 벤처회사 2곳을 이끌었으며,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소비자 사업부를 총괄했다.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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