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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52인의 신년 에세이(8) 안영환·우영미·류영준·김대영·박은경 

 

안영환 슈마커 대표 | 느긋한 여행


신발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지 30년이 지났다. 그 세월 중 반은 신발을 수출하는 일을 했고, 나머지 반은 내수로 판매하는 회사를 이끌고 있다. 내 뜻이었다기보단 시장 흐름이 변한 이유가 크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신발 생산기지에서 벗어나 거대 소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대신 중국, 미얀마 등 저임금 국가가 신발 생산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렇게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의 브랜드를 단 신발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내 보폭도 그만큼 커졌다. 한국에서 신발을 생산해 수출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발주하고 동남아에서 생산해 미주 시장에 달려가는 식이니 말이다. 지구 반 바퀴쯤은 우습게 돈다고 봐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어느 해는 넉 달 넘게 해외 출장만 다녔다. 그간 쌓인 항공 마일리지가 200만 마일이 족히 넘으니 정말 바지런히 다닌 셈이다.

전 세계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박람회·전시회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바이어를 앞에 두고 상담하느라 끼니를 거른 건 예사였다. 그래서일까. 내 버킷 리스트에 가장 먼저 느긋한 여행을 적고 싶었다. 해외 어느 나라의 한 지역이나 도시를 천천히 둘러보며 여유를 느껴본 적이 없다. 이탈리아 밀라노에는 20여 차례 가봤는데 밀라노에서 유명한 게 뭔지 아직 모른다. 20번 넘게 내 여권에 찍힌 이탈리아 세관 스탬프만 남았을 뿐 밀라노성당, 두오모 성당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숱하게 스쳐 지났던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 내 눈, 코, 입 등 오감을 총동원해 그곳을 느끼고 싶다. 이탈리아뿐이 아니다. 중국은 또 어떤가. 먼지바람을 뚫고 끝없이 펼쳐진 도로를 달렸던 중국 심양은 이제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가 됐단다. 바이어를 만나러 떠났던 미국 LA, 샌디에이고로 가는 405 프리웨이를 달려갔을 뿐, 태평양을 따라 서부 해안에 펼쳐진 남쪽 끝자락엔 가보지 못했다. 태평양 너머로 지는 뜨고 태양을 보고, 나파밸리 와인도 현지에서 맛보고 싶다.

여행이 젊은 날 분투했던 내 모습에 새삼 덧칠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

우영미 솔리드 대표 | 또 하나의 목표


한 해가 시작되면 항상 장단기 목표를 머릿속에 꼼꼼히 그려보곤 한다. 그런 시뮬레이션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나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2000년 초반부터 추진해온 장기적인 목표는 우리 패션하우스의 두 브랜드 ‘WOOYOUNGMI’와 ‘Solid Homme’의 해외시장 진출과 확장이었다. 나를 비롯해 모든 직원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덕분에 이제는 어느새 확고한 정착과 꾸준한 성장세라는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이러한 장기적인 플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내가 꿈꾸는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는 우영미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우영미재단은 한국 패션과 예술의 교집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이를 통해 평생을 디자이너로서 패션 산업에 몸바쳐온 나의 경험과 성과들을 재능 있는 젊은이들과 공유하고, 든든한 후원자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삶의 목표를 정한 지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어릴 적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아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내게 삶의 방향이 정해진 것은 닷컴버블이 터진 즈음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쏟아진 IT업계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비이성적인 기업가치를 만들어내며 버블을 키웠고, 곧 버블 붕괴와 함께 많은 회사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서 변화의 기회들을 목도한 내겐 ‘IT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아 인생의 목표가 됐다.

큰 변화의 주기는 10년 단위로 일어난다고 한다. 닷컴버블 이후 변화는 모바일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개발 커리어를 모바일 분야로 바꾸고, 변화의 흐름을 주도할 준비를 해나갔다. 실제로 2009년, 아이폰이 출시되며 모바일 시대가 열렸다. 이듬해 등장한 카카오톡은 내게 미래의 플랫폼이 무엇인지 그려주기 충분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카카오에 합류했다. 그리고 첫 프로젝트로 보이스톡을 개발했다. 통신사 요금제가 무료통화 시간을 기준으로 책정되던 때였다. 데이터를 통해 국내외 음성통화를 모두 무료로 제공하는 보이스톡은 혁신, 그 자체였다.

하지만 보이스톡의 성공은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현실’도 깨닫게 했다. 사용자들에게는 혁신이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이해관계자들과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불씨일 수도 있었다. 수많은 소통 노력 덕분에 상황은 대립이 아닌 공생으로 나아갔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데이터 기반 요금제가 일반화됐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경험은 커리어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사업적 능력도 필요하다고 체감했고, 개발에서 사업으로 직군을 바꾸는 도전을 했다.

그때 눈에 띈 분야가 금융이다. 특히 모바일 커머스 결제 과정에 주목했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온라인에서 결제를 하려면 18개 화면에 수많은 정보를 입력해야만 했다. 불편한 과정만큼 결제 실패율도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커머스 거래액은 매달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술자이자 사업가의 눈으로 보았을 때, 모바일 결제의 혁신은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면서 커머스 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훌륭한 기회라고 판단했다.

바로 간편결제 시스템 개발을 시작했고, 몇 개월 되지 않아 공인인증서 없이 6자리 비밀번호로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상용화 단계에서 간편결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높은 벽에 부딪혔다. 이 벽을 넘기 위해 매일 금융사와 감독 당국을 찾아 설득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약 1년 반 후 사업 허가 승인을 받았다. 2014년 9월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간편결제 카카오페이는 대한민국에 핀테크 열풍을 가져왔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혁신과 금융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곳곳에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카카오페이로 시작된 지불결제의 혁신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산업 전반으로 퍼져서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영역에서 10년 전과 비슷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결제하기 위해 플라스틱 카드와 멤버십 앱을 번갈아 내밀고, 종이영수증을 받은 후 소비 내역은 따로 정리한다. 금융 상품에 투자해보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은 많고, PB센터의 문은 높다.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청구하고 수령하기까지의 절차는 복잡하다.

그래서 더 설렌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다. 올해 버킷 리스트는 기술로 더 나은 금융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욱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카카오페이는 IT 기술로 새로운 금융을 만들어가는 ‘테크핀(TechFin)’ 기업이다. 그리고 올해는 카카오페이가 자회사로 출범한지 3주년이 되는 해다. 금융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했고, 이를 연결해 사용자 가치를 높이는 밑작업을 마쳤다.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을 바탕으로 금융의 허들을 하나씩 없애며 일상을 바꿔보려고 한다. 2020년 연말에는 금융을 통해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졌기를 소망하며.

김대영 슈피겐코리아 대표 | ‘Something you want’를 전하라


슈피겐코리아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020년에도 혁신 DNA를 바탕으로 더 넓은 무대로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달려나갈 것이다.

슈피겐코리아에 2019년은 인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해였다. 2020년은 인도 시장에서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성의 동반성장 구조를 마련하고 브랜드 파워를 확대해나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구수를 보유한 시장이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의 경우, 전 세계 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을 만큼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발맞춰 슈피겐코리아는 아마존을 비롯한 플립카트 등 현지 온라인 오픈마켓을 중심으로 인도 시장 전략폰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모든 스마트폰 모델에 대한 제품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슈피겐코리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나라별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인도 시장에서도 지역문화와 생활방식을 먼저 파악하고, 무조건적인 대량생산이 아닌 소비자 트렌드에 맞는 제품 론칭과 시리즈별 소량생산으로 고객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이 외에도 어떻게 하면 고객의 마음속에 슈피겐코리아가 매력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객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브랜드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새로운 시장 개척에 앞장서고, 그 안에서 ‘Something you want’라는 슈피겐코리아만의 가치를 널리 전파하는 것. 올해, 더 나아가 앞으로도 가장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다.

박은경 세코닉스 대표 | 장인정신과 적자생존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눈부시다. 2000년 초 카메라를 장착한 휴대전화에 사람들이 놀랐지만 2019년 지금 우리는 보안장비, 냉장고, 드론, 자동차 등 수많은 기기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기능을 높여가는 것을 보고 있다. 카메라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과제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주행 자동차,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 분야에서 사람의 눈을 대신하며 점점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광전자부품 기업인 세코닉스는 이런 새로운 세상의 중심에 있다. 2003년 입사 후 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고, 기술개발을 거듭하며, 국내외 해외 유수 업체와 신제품 개발 등 경험을 두루 쌓았다. 급진전하는 새로운 세상과 우리 기업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왜 그 기회를 놓쳤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모든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고,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이런 많은 노력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말이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 말은 지금 세코닉스의 화두이기도 하다. 휴대폰, 자동차, AR, VR 등 부품사업과 특수 광학필름사업을 아우르며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타고 시대에 발맞춰 가는 동안 세코닉스는 고군분투하며 적자생존을 증명해왔다. 우리는 운이나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응용기술 분야에서 언제라도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도록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흔히들 ‘장인정신’은 4차 산업혁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인정신이란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고자 노력하는 정신을 뜻한다. 세코닉스는 광전자부품업계의 장인이라 자부한다. 광학이라는 기본 기술에 통달하고 이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핵심기술의 내재화, 설비 육성, 검증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했고, 선행기술이라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시장의 도래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용설란’은 10년에 한 번 꽃이 피고 나면 모든 잎을 떨어뜨리고,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10년을 준비한다. 꽃을 피우기 위한 10년은 분명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 시간 없이는 꽃을 피울 수 없다. 사람은 기나긴 세월 속에서 갈고닦은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빛낸다. 나와 세코닉스의 반짝이는 핵심 인재들은 맡은 일에 정통하고자 하는 철저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계를 뛰어넘어 세코닉스를 적자생존의 훌륭한 사례로 증명해나갈 것이다. 이것이 나의 2020년 버킷리스트다.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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