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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CEO의 서재를 위한 비즈니스 고전’(11)] 아인 랜드 『자본주의』 

 

아인 랜드의 사상은 한국 자본주의에도 숙제를 던진다. 한국은 국가와 기업이 밀착해 성장했다. 한국 정당도 집권을 위해 국민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한다. 랜드를 비롯한 미국 보수주의 사상가들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쪽에 서 있다. 과연 우리도 이를 수용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민주주의·보수주의·진보주의·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사회자유주의···. 세상에는 많은 주의(主義·ism)가 있다. 주의들 간의 관계는 복잡하다. 특정 주의가 각국 정치 스펙트럼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다르다.

서가에 꽂힌 책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선언이자 암시다. 그래서 아무 책이나 서가에 비치하면 안 된다. 아인 랜드의 『자본주의: 미지(未知)의 이상(Capitalism: The Unknown Ideal)』(1966)은 많은 논란을 부르는 메시지가 강한 책이다. (우리말로는 『자본주의의 이상』으로 번역된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도덕적 측면을 다룬 책이다.

『자본주의』옆에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그 옆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을 배치하는 것도 좋겠다. 방문객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것이다. 예컨대 ‘흠, 만만한 친구는 아니군’, ‘나랑 대화가 좀 되겠군.’ 반면 혐오감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오늘날 아인 랜드의 『자본주의』에 왜 주목해야 할까.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상의 이합집산, 자본주의의 미래에 영감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인 랜드(1905~1982)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철학자다. 특히 『파운틴헤드(The Fountainhead)』(1943)와 『아틀라스(Atlas Shrugged)』(1957)로 유명하다. 그의 저작은 전 세계에서 수천만 부가 팔렸다. 400페이지 분량의 『아틀라스』는 비즈니스와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그의 『자본주의』는 『파운틴헤드』와 『아틀라스』의 논픽션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은 지지, 철학자는 무시


▎『자본주의』의 영문판 표지
1960~70년대에는 소설가가 아니라 강연가로서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미국 전역에 전파했다. 보수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들을 비롯한 추종자들에게 그는 컬트(cult) 지도자였다.

그의 사상은 형이상학·인식론·미학·윤리학·정치철학 등의 철학 분야에 걸쳐 있다. 대체로 학계에서는 무시당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철학자들을 능가한다. 랜드는 ‘자본주의의 니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철학자에 비하면, 사상이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영감을 주고 생각거리를 던진다. 니체는 철학자로 인정받지만, 랜드는 아니다. 그 점이 좀 아쉽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조직이나 공동체일까. 아니면 개인일까. 랜드는 개인의 능력이 인류가 이룩한 성취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존중하는 유일한 체제라고 주장한다. 또 혼합경제(mixed economy)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형의 자본주의 중에서도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개인 능력의 극대화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랜드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삶의 산물이다. 그는 190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82년 뉴욕시에서 생을 마감했다. 10대 청소년으로서 1917년 러시아혁명을 체험했다. 그가 평생 공산주의·사회주의에 반대한 이유는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1924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26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얄궂게도 그는 남녀평등을 표방한 러시아혁명 덕분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대본을 쓰다가 만난 프랭크 오코너와 1929년 결혼했다. 남편은 1979년 사망했고 랜드는 1931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랜드는 미국의 보수주의와 자유지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사상은 별도의 범주가 필요할 정도로 독특했다. 미국의 우파 그리스도교는 보수주의의 한 축을 이룬다. 반면 랜드는 신앙과 종교에 반대했다. 그에게 지식의 원천은 논리와 이성이었다. 신(神)의 계시가 아니었다.

이기주의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나와 있다. 이기주의는 뭔가 나쁜, 바람직하지 않은 주의 같다. 랜드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뒤집는다. 그에게 이기주의는 선(善), 이타주의는 악(惡)이었다. 랜드는 사익(私益)은 믿어도 ‘공익(公益, the common good)’은 믿지 않았다.

랜드의 주장을 적용한다면, 사회봉사 또한 이타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남을 돕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내 마음이 편하고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며 편하니까 하는 것이다. 봉사나 기부가 불편하면 안 해도 된다. 봉사나 기부를 하고 말고는 개인의 권리다.

이러한 랜드의 주장은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을 뒤집는다. 그는 개인의 연약함에서 유래한 이타주의가 세상의 부정직과 고통의 원인이라고 봤다. 낙태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랜드는 낙태 권리를 옹호했다. 그가 미국 제40대 대통령(1981~1989)인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도 낙태 문제 때문이었다. 랜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낙태 권리를 부정하기 때문에 그 어떤 다른 권리의 옹호자도 될 수 없다.”

낙태 권리 옹호한 보수주의자


▎독일 화가 구스타프 바우에른파인트 (1848~1904)가 그린 ‘야파의 시장’(1887) / 사진:소더비
랜드의 사상은 한국 자본주의에도 숙제를 던진다. 특히 자본주의를 둘러싼 개인과 공동체, 특히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다.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이기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는다.

우리나라는 독재와 기업, 국가주의와 기업이 밀착한 가운데 고속 성장을 해왔다. 일종의 ‘정략결혼(marriage of convenience)’이었다. 국가와 기업의 밀착을 뚫고 개인주의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경제가 잘못되면, 특히 일자리 문제가 생기면 정부를 욕하는 경향이 있다. 자업자득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집권을 위해 국민·유권자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한다. 상대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은 욕받이 대상이 아니다. 과연 일자리 문제는 정부의 책임일까? 기업이나 개인의 책임은 아닐까. 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권리 보호 말고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인랜드를 비롯한 미국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지론이다. 그게 보수주의의 영혼이요 정신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그러한 미국 보수주의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에 나오는 랜드의 발언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의 철학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 철학의 정수(精髓)는 인간은 영웅적인 존재라는 개념이다. 영웅적 인간에게는 그 자신의 행복이 인생의 도덕적 목표다. 생산적인 성취가 그에게 가장 고귀한 활동이며, 그에게 유일하게 절대적인 것은 이성이다.(My philosophy, in essence, is the concept of man as a heroic being, with his own happiness as the moral purpose of his life, with productive achievement as his noblest activity and reason as his only absolute.)

자본주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상 자본주의만큼 그 가치를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인류에게 큰 이득을 준 정치·경제 체제는 없다. 또 자본주의만큼 악랄하고 맹목적인 공격을 받은 체제도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잘못된 정보, 와전(訛傳), 왜곡, 노골적인 거짓말의 홍수가 극에 달해,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실제 본질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들은 그 어떤 견해도 발견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No political-economic system in history has ever proved its value so eloquently or has benefited mankind so greatly as capitalism-and none has ever been attacked, viciously, and blindly. The flood of misinformation, misrepresentation, distortion, and outright falsehood about capitalism is such that the young people of today have no idea (and virtually no way of discovering any idea) of its actual nature.)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가.

그들이 발견해야 할 것, 자본주의의 적들이 노력을 총동원해 광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단지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유일한 도덕적 체제라는 사실이다.(What they have to discover, what all the efforts of capitalism’s enemies are frantically aimed at hiding, is the fact that capitalism is not merely the ‘practical’, but the only moral system in history.)

당신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면.

나는 일차적으로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의 지지자다. 또 나는 일차적으로 이기주의의 지지자가 아니라 이성의 지지자다. 이성의 최고성(最高性)을 인지하고 이성을 일관되게 적용하면 이기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나머지가 결론으로 도출된다.(I am not primarily an advocate of capitalism, but of egoism; and I am not primarily an advocate of egoism, but of reason. If one recognizes the supremacy of reason and applies it consistently, all the rest follows.)

당신의 객관주의 철학에 대해 논란이 많다. 한마디로 객관주의자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객관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위한 급진주의자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결여된 철학적 기초를 위해 싸운다. 철학적 기초가 없는 자본주의는 소멸될 운명이다.(Objectivists are not conservatives. We are radicals for capitalism; we are fighting for that philosophical base which capitalism did not have and without which it is doomed to perish.)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핵심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관계는 자발적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각자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 신념, 이익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협력하거나 협력하지 않고 거래하거나 거래하지 않는다.(In a capitalist society, all human relationships are voluntary. Men are free to cooperate or not, to deal with one another or not, as their own individual judgments, convictions and interests dictate.)

폭력적인 공산주의와 민주적인 사회주의는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르지 않다. 단지 동일한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다를 뿐이다. 공산주의는 힘으로, 사회주의는 투표로 인간을 노예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살인과 자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communism and socialism, except in the means of achieving the same ultimate end: communism proposes to enslave men by force, socialism-by vote. It is merely the difference between murder and suicide.)

모든 사회에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집단(minority)이 있다.

지구에서 가장 힘없는 소수집단은 개인이라는 것을 또한 기억하라. 개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수집단의 옹호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Remember also that the smallest minority on earth is the individual. Those who deny individual rights, cannot claim to be defenders of minorities.)

국가주의의 전통이 강한 나라가 많다. 또 국가주의는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구실을 하는 경우도 많다.

국가주의는 폭력과 항구적인 내전의 제도화된 체제다. 국가주의는 사람들에게 정치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싸움 외에는 다른 선택을 남기지 않는다. 도둑질하거나 도둑질을 당하거나,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국가주의는 약탈로 살아남는다. 자유로운 나라는 생산으로 살아남는다.(Statism is a system of institutionalized violence and perpetual civil war. It leaves men no choice but to fight to seize political power to rob or be robbed, to kill or be killed. … Statism survives by looting; a free country survives by production.)


※ 김환영은… 중앙일보플러스 대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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